지난 주 받은 책은 이제 다 읽었고, 오늘 새 책들을 받았다.

 

 

 

 

 

이번 주는 그림 주간이다. <클림트, 황금빛 유혹>을 보고 나니 에곤 실레가 보고 싶고, 또 고야의 거인도 생각난다. 그런데 <고야, 영혼의 거울>에는 거인 시리즈가 안 나온다. 이런..

최민식의 사진집은, 어느 분의 리뷰를 때문에 골랐다. 좋은 리뷰란 그 책을 보고 싶게 한다.

그림책들 가운데 유일한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자몽상자님이 올리신, 박민규의 글을 보고 마지막에 끼워넣었다. 거침없는 언변이라니. 큭, 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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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제 밤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벌써 십수년 전 내게 책을 선물했던 교생 선생님. 이제 그의 얼굴도 이름도 모두 잊었지만 그가 준 책은 아직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기억은 이상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걸 떠올리다보니 책에 관한 여러가지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래서, 기억이 닿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소설 전집 광고를 신문에서 보고 아버지를 조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계집애가 무슨 추리소설이야' 하시며 반대했지만 결국 주문해주셨다. 책과 함께 탐정 배지며 수첩 같은 게 왔는데, 한동안 그것들을 대단히 아꼈다.

초등학교 5학년, 학교에 도서실이 있었지만 명목상일 뿐, 원칙적으로 학생 출입 불가 구역이었다. 그런데 사서가 담임 선생님 동생이었고, 나는 반장이었으므로, 도서실을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구했다. 점심 시간이든 방과 후든, 사서가 도서실에 있는 한은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빌려가는 것도 가능했다. 책상과 의자도 있었건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곤 했는데, 그 때도 역시 추리소설을 탐독했다. 얼굴인지 몸인지에 V자가 7개 있는 탐정 샘 스페이드가 등장하는 <말타의 매>가 아직 생각나는 걸 보면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중학교 1학년, 도(道)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경진 대회인지 뭔지에 낸다며 전교생에게 독후감을 제출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책에는 제한이 없었는데, 내가 고른 것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과제 이전에 이미 읽은 책이었다. 그 때까지 내게 책을 골라주거나 추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과 제제에게 빠져서, 리처드 바크와 바스콘셀러스의 책은 구할 수 있는 한 모조리 읽었다.

중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레몽 장의 <벨라 B의 환상> 같은 소설을 읽어주셨던 국어 선생님 덕분에 단편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때마침 학교 건너편에 시립 도서관이 새로 문을 열었고, 거기서 이문열, 이청준, 전상국, 문순태, 김원일 등 한국 작가들의 중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국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도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빌리려고 했더니, 평소 안면이 있던 사서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면서, 이건 네가 볼만한 게 아닌데. 하는거다. 사근사근하지 못한 나는 퉁명스럽게 왜요?라고 물었고, 결국 사서는 카드에 내 이름을 적어넣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도대체 사서가 무슨 생각으로 볼만한 게 아니라고 말한건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서른 세 권인지 서른 여섯 권인지 되는, 한국 작가 선집을 장만했다. 친구 엄마가 출판사에 다니고 있던 덕에, 엄마는 거의 어쩔 수 없이 사 준 거였지만, 내게는 횡재였다. 임철우, 홍성원, 박완서, 양귀자, 조성기, 이문구 등등 홍성원의 작품에 나온 한 구절, 당시 무척 좋아해서 일기에도 적고 다른 책의 겉장에도 적었던 구절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전집은 고향 집에 있는데, 좀 큰 책장을 장만하게 되면 몽땅 가지고 올 생각이다. 어느 날 운동장 조회 시간에 갑자기 무슨 상을 준다며 내 이름을 호명했다. 뭔지도 모르고 상장과 부상인 옥편을 받았는데, 받고 보니 이름하여 다독상이었다. 시립 도서관에서 책 대여 많이 했다고 책의 날인지 뭔지를 기념해 주는 상이란다. 내가 받은 것 중 가장 황당한 상이었다. 옥편은 아직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러시아 작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도스또예프스끼, 똘스또이, 고리끼,뿌쉬낀 등. 이 때 읽은 <죄와 벌> <까마라조프가의 형제들> <어머니> 등은 대학 진학할 때 학과 선택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도스또예프스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우리 반에 온 교생과 가까워졌다. 교생 실습이 끝나갈 무렵 함께 하교하다가 내게 책을 사주겠다고 해서 서점엘 갔다. 내가 고른 것은 <구토>. 그런데 교생은 어려운 책 말고 쉬운 걸로 고르라고 시켰고, 내가 찾지 못하자 <빠빠라기>를 직접 골라주었다. 원주민 추장이 백인 사회를 보고 쓴 책이었는데, 사실 재미없었다. 그 때 예전의 도서관 사서가 기억났고, 도대체 그 사람들이 내게 읽기를 원하는 책은 무엇인지, 좀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구토>는 결국 내가 샀다. 여름. 자주 가던 서점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았다. 첫눈에 반해버렸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가 내게 선물했다. 한동안 그 책은 내 손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서점 주인이 책 내용을 알았더라면 역시 안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고등학교 3학년, 봄. 같은 반에 운동권 삼촌을 둔 친구가 있었다. 그가 생일 선물로 김지하의 시집을 주었다. 그에게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빌려 읽었고,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내가 샀다. 대학에 진학해서 선배들과 얘기하다가, 그 책들 다 읽었다고 했더니, 그들이 좀 신기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여름 방학 동안 고은의 <화엄경>,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 <숨은꽃>,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등을 읽었다. 이인화와 박일문이 당시 화제였다는 건,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 겨울. 대입 시험을 끝내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까지 <삼국지> <영웅문>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써놓고 보니, 상당히 길어졌다. 이런 것들이 잊혀지지 않고 여전히 내 머리 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대학 이후로 읽은 책들은, 언제 읽었는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중고교 시절 보았던 책들 중 상당수는, 대학 가서 다시 보았다. 확실히 나이에 따라 읽는 내용이 달라지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리기 때문에 보면 안되는 책,이 있는 걸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받아들이는 게 있을테고, 그것조차 없다면 나중에 다시 보면 될 것을.

 

동생들 중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럼 내 경험을 알려주고, 함께 책을 읽고, 얘기를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내 동생들은 모두 책과는 담을 쌓았다. 심지어 만화책도 안 보는 놈들이라니. 나중에, 애가 생기면, 그 애랑 해야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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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는 한 달이면 두어 번씩 서점에 나가서 책 맛을 본 후에야 그 책을 읽을지 말지, 살지 빌려볼지를 결정하곤 했다. 신간이나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도 서가를 누비며 이 책 저 책 손대다 보면 마음에 꼭 맞는 책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책들을 통해 작가의 다음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밀란 쿤데라, 파트리크 쥐스킨트, 폴 오스터, 이탈로 칼비노, 슈테판 츠바이크 등이 그렇게 만난 작가들이고, 그들 대부분을 여전히 사랑한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서점에 나가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칠 정도다. 인터넷 서점에서의 책 소개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언론 매체의 서평, 독자 리뷰, 작가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책을 고르는 기준은 인터넷 서점 담당자의 소개글과 독자들의 리뷰이다. 그러나 역시 취향이란 차이가 있는 탓에 정작 받아 들었을 때 내 책이 아니다 싶은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다 보니 읽고 싶다 생각한 책이라도 당장 끌리지 않으면 보관함으로 들어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언젠가 마음이 동하거나 다음 번 서점에 나가 확인하게 될 때까지.

오르한 파묵은, 보관함에 오래 머물다 결국 삭제된 작가이다. 그의 <하얀성>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바로 보관함에 담았지만, 장바구니를 채울 때면 자꾸 건너 뛰었다. 알라딘에서는 Editor's Choice를 붙여주었고, 다른 곳에서도 뛰어난 작가라느니 훌륭한 작품이라느니 하는 글을 여러 번 봤지만, 어쩐 일인지 영 손이 가지 않더라는 말이다. 파묵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게다가 이번에는 각종 상을 휩쓴 작품이라기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주문했다.

<내 이름은 빨강>은 흥미로운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의 외양에, 12년 간 이어진 로맨스, 예술과 신성(神性)에 관한 대담, 두 세계의 문화적 충돌, 그리고 장(章)마다 바뀌는 화자까지. 그런데, 이상하다. 영 읽히지 않는다. 길지 않은 한 장(章)을 읽는데 한참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잠시 숨을 고른 후에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아예 읽는 재미가 없었다면, 그대로 덮어버렸을 터이다. 책을 읽다가 중간에 덮는 것이 책에 대한, 그것을 고른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버렸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결국 매일 조금씩 읽기를 계속하여 2주 만에야 끝냈다.

이 소설이 훌륭한 작품인가? 그렇다, 라고 답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16세기 터키, 유럽의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고픈 욕구와 그것이 신에 대한 모독이라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세밀화가들의 고뇌가 세세하게 드러난다. 현재의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원근법과 사람이 주제가 되는 초상화가, 신의 섭리를 그림에 드러내야 하는 당시의 화가들에게는 불경이자 금기였다는 것, 그리하여 새로이 유입된 문화의 충격이 필경 살인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의 솜씨는 작가가 소설에서 묘사하는 세밀화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세밀화가의 작업을 따르고 있기에, 소설은 생기가 없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의 외양을 갖추고 있긴 하나,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그다지 느낄 수 없다. 누가 범인이냐고? 읽으면서 등장 인물 중 범인을 추측하긴 했으되, 누가 범인이든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살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살인자를 범행으로 이끈 동기, 즉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킨 문화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럼 12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셰큐레에 대한 카라의 사랑 이야기는 어떠한가? 셰큐레 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사랑한 듯 보이는 카라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셰큐레 사이에 진정한 사랑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 역시 세밀화처럼 평면적이다.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는 것은 분명 재미를 주고 있으나, 마치 모든 인물이 동일한 크기로 그려지는 세밀화마냥 주의를 산만하게 흩뜨려 놓는다. 결국 작가는,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세밀화로 이루어진 책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파묵이 훌륭한 작가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묘사하는 대상과 동일한 방법으로 자신의 작업을 만들 수 있는 작가가 흔치는 않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야기 자체가 입체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를 탓할 이유는 아니다. 내가 세밀화보다는 현대의 그림에 더 익숙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터.

어쨌거나 이번의 독서 경험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해 주었다. 어째서 그의 전작에 그토록 손이 가지 않았는지. 취향의 문제이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해도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에 대한 소개글을 통해 이미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단 한 권으로 작별을 고한 몇몇 작가들이 있다. 오르한 파묵도 그 중 한 명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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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를 위해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창가에서 시 한 수 읽어주실 분은 안 계신가요?


 

 

 

 

 

 

 

 

 

여러 권 주문한 책들 중에서 <어제>를 먼저 읽고, 다음으로 <지하철>을 보았다. 순서가 바뀌지 않은 건, 그야말로 '다행'이다. 크리스토프의 글로 참담해진 내 마음은 지미의 그림으로 다소나마 위안을 받는다. 지미의 그림과 글 역시 아주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지하철은 다소 황량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은 냉정하거나 무심하다. 그러나 환상과 애정어린 시선과, 그래도 세상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섞여있어 안심할 수 있다.

 

 

퇴근 길에 서점에 들렀다. 아주 오랫만에 시집 코너 앞에서 이리 저리 낯선 이름과 제목들을 훑어보다가, 문득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선배의 시집이 나온 것을, 나는 몰랐다. 하기사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고, 모임이나 있어야 가끔 만나는 처지이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 선배는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대학원을 진학했기에 다른 여자 선배들과는 달리 좀 더 오래 보게 되었다. 큰 키에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 나는 선배가 꽤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들의 예상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 애 엄마가 되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등단을 했다고도 들었다. 어쩐지 지나치게 순탄한 삶을 사는 듯한 모습. 물론, 속사정은 알 수 없다. 평탄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선배의 시는, 학교 다니는 동안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선배에게서 느꼈던 안정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듯 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고, 다만 느낌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역시 겉모습과는 다른가 보다.

한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뿌연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런 공상으로 뭔가를 견디곤 했다. 만약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다음에 만나서 '언니 시집 읽었어요.'라고 말하면 '응'하고 대꾸하며 특유의 웃음을 보이겠지. 어쩐지 서로 쑥스러울 것 같은 느낌.

선배의 시집을 손에 들고 보니, 문득 그 시절의 사람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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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1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편씩 꺼내어본다 했죠?
제 서재 방명록 18번 대사인데...
정말 제목처럼 마음을 다독이는 그림이네요.
시는 글쎄...잘 모르겠네요.^^;;
 

    

    시간이 갈라진다. 유년의 빈 공백은 어디서 다시 찾을 것인가? 어두운 공간에 갇힌 일그러진 태양은? 허공에서 전복된 길은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계절들은 의미를 잃었다. 내일, 어제, 그런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가 있을 뿐. 어떤 때는 눈이 온다. 또다른 때는 비가 온다. 그리고 나서 해가 나고, 바람이 분다. 이 모든 것은 현재이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었고, 미래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동시에. 왜냐하면 사물들은 내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이다.

  어제, 나는 호숫가로 갔다. 지금 물은 너무 시커멓고, 너무 암담하다. 저녁마다, 잊혀진 나날이 물결에 실린다. 그것들은 마치 바로 항해를 떠나는 것처럼 지평선을 향해 멀어져갔다. 그러나 바다는 여기서 너무 멀다. 모든 것이 너무 멀다.

  나는 곧 치료될 것이다. 무언가가 나의 내부나 공간 어딘가에서 부서질 것이다. 나는 미지의 깊은 곳을 향해 떠날 것이다. 대지 위에서는 수확과 참을 수 없는 기다림과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있을 뿐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이 사람은 독자를 못내 힘겨웁게 만든다. 그가 그저 덤덤히 던져주는 삶의 무게가 '희망 없음'으로 귀결될까 두려워질 정도다. 이 세계는 너무 시커멓고, 너무 암담한걸까?

오늘도 쉽게 잠들기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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