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 밤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벌써 십수년 전 내게 책을 선물했던 교생 선생님. 이제 그의 얼굴도 이름도 모두 잊었지만 그가 준 책은 아직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기억은 이상한 것으로 남아 있다. 그걸 떠올리다보니 책에 관한 여러가지 기억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래서, 기억이 닿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소설 전집 광고를 신문에서 보고 아버지를 조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계집애가 무슨 추리소설이야' 하시며 반대했지만 결국 주문해주셨다. 책과 함께 탐정 배지며 수첩 같은 게 왔는데, 한동안 그것들을 대단히 아꼈다.
초등학교 5학년, 학교에 도서실이 있었지만 명목상일 뿐, 원칙적으로 학생 출입 불가 구역이었다. 그런데 사서가 담임 선생님 동생이었고, 나는 반장이었으므로, 도서실을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구했다. 점심 시간이든 방과 후든, 사서가 도서실에 있는 한은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빌려가는 것도 가능했다. 책상과 의자도 있었건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곤 했는데, 그 때도 역시 추리소설을 탐독했다. 얼굴인지 몸인지에 V자가 7개 있는 탐정 샘 스페이드가 등장하는 <말타의 매>가 아직 생각나는 걸 보면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중학교 1학년, 도(道)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경진 대회인지 뭔지에 낸다며 전교생에게 독후감을 제출하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책에는 제한이 없었는데, 내가 고른 것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였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과제 이전에 이미 읽은 책이었다. 그 때까지 내게 책을 골라주거나 추천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과 제제에게 빠져서, 리처드 바크와 바스콘셀러스의 책은 구할 수 있는 한 모조리 읽었다.
중학교 2학년, 수업 시간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레몽 장의 <벨라 B의 환상> 같은 소설을 읽어주셨던 국어 선생님 덕분에 단편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때마침 학교 건너편에 시립 도서관이 새로 문을 열었고, 거기서 이문열, 이청준, 전상국, 문순태, 김원일 등 한국 작가들의 중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국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도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빌리려고 했더니, 평소 안면이 있던 사서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면서, ‘이건 네가 볼만한 게 아닌데.’ 하는거다. 사근사근하지 못한 나는 퉁명스럽게 ‘왜요?’라고 물었고, 결국 사서는 카드에 내 이름을 적어넣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도대체 사서가 무슨 생각으로 볼만한 게 아니라고 말한건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서른 세 권인지 서른 여섯 권인지 되는, 한국 작가 선집을 장만했다. 친구 엄마가 출판사에 다니고 있던 덕에, 엄마는 거의 어쩔 수 없이 사 준 거였지만, 내게는 횡재였다. 임철우, 홍성원, 박완서, 양귀자, 조성기, 이문구 등등… 홍성원의 작품에 나온 한 구절, 당시 무척 좋아해서 일기에도 적고 다른 책의 겉장에도 적었던 구절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전집은 고향 집에 있는데, 좀 큰 책장을 장만하게 되면 몽땅 가지고 올 생각이다. 어느 날 운동장 조회 시간에 갑자기 무슨 상을 준다며 내 이름을 호명했다. 뭔지도 모르고 상장과 부상인 옥편을 받았는데, 받고 보니 이름하여 ‘다독상’이었다. 시립 도서관에서 책 대여 많이 했다고 책의 날인지 뭔지를 기념해 주는 상이란다. 내가 받은 것 중 가장 황당한 상이었다. 옥편은 아직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러시아 작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도스또예프스끼, 똘스또이, 고리끼,뿌쉬낀 등. 이 때 읽은 <죄와 벌> <까마라조프가의 형제들> <어머니> 등은 대학 진학할 때 학과 선택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도스또예프스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우리 반에 온 교생과 가까워졌다. 교생 실습이 끝나갈 무렵 함께 하교하다가 내게 책을 사주겠다고 해서 서점엘 갔다. 내가 고른 것은 <구토>. 그런데 교생은 어려운 책 말고 쉬운 걸로 고르라고 시켰고, 내가 찾지 못하자 <빠빠라기>를 직접 골라주었다. 원주민 추장이 백인 사회를 보고 쓴 책이었는데, 사실 재미없었다. 그 때 예전의 도서관 사서가 기억났고, 도대체 그 사람들이 내게 읽기를 원하는 책은 무엇인지, 좀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구토>는 결국 내가 샀다. 여름. 자주 가던 서점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았다. 첫눈에 반해버렸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가 내게 선물했다. 한동안 그 책은 내 손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서점 주인이 책 내용을 알았더라면 역시 안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고등학교 3학년, 봄. 같은 반에 운동권 삼촌을 둔 친구가 있었다. 그가 생일 선물로 김지하의 시집을 주었다. 그에게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빌려 읽었고,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내가 샀다. 대학에 진학해서 선배들과 얘기하다가, 그 책들 다 읽었다고 했더니, 그들이 좀 신기하게 바라봤던 것 같다. 여름 방학 동안 고은의 <화엄경>,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 <숨은꽃>,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등을 읽었다. 이인화와 박일문이 당시 화제였다는 건,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 겨울. 대입 시험을 끝내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까지 <삼국지> <영웅문> 등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써놓고 보니, 상당히 길어졌다. 이런 것들이 잊혀지지 않고 여전히 내 머리 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대학 이후로 읽은 책들은, 언제 읽었는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중고교 시절 보았던 책들 중 상당수는, 대학 가서 다시 보았다. 확실히 나이에 따라 읽는 내용이 달라지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도, 어리기 때문에 보면 안되는 책,이 있는 걸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받아들이는 게 있을테고, 그것조차 없다면 나중에 다시 보면 될 것을.
동생들 중에 책 읽기를 좋아하는 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럼 내 경험을 알려주고, 함께 책을 읽고, 얘기를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내 동생들은 모두 책과는 담을 쌓았다. 심지어 만화책도 안 보는 놈들이라니. 나중에, 애가 생기면, 그 애랑 해야지,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