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저를 위해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창가에서 시 한 수 읽어주실 분은 안 계신가요?


 

 

 

 

 

 

 

 

 

여러 권 주문한 책들 중에서 <어제>를 먼저 읽고, 다음으로 <지하철>을 보았다. 순서가 바뀌지 않은 건, 그야말로 '다행'이다. 크리스토프의 글로 참담해진 내 마음은 지미의 그림으로 다소나마 위안을 받는다. 지미의 그림과 글 역시 아주 따뜻하기만 한 건 아니다. 그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지하철은 다소 황량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은 냉정하거나 무심하다. 그러나 환상과 애정어린 시선과, 그래도 세상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섞여있어 안심할 수 있다.

 

 

퇴근 길에 서점에 들렀다. 아주 오랫만에 시집 코너 앞에서 이리 저리 낯선 이름과 제목들을 훑어보다가, 문득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선배의 시집이 나온 것을, 나는 몰랐다. 하기사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연락을 하지 않고, 모임이나 있어야 가끔 만나는 처지이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 선배는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대학원을 진학했기에 다른 여자 선배들과는 달리 좀 더 오래 보게 되었다. 큰 키에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 나는 선배가 꽤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들의 예상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 애 엄마가 되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등단을 했다고도 들었다. 어쩐지 지나치게 순탄한 삶을 사는 듯한 모습. 물론, 속사정은 알 수 없다. 평탄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선배의 시는, 학교 다니는 동안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선배에게서 느꼈던 안정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듯 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고, 다만 느낌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역시 겉모습과는 다른가 보다.

한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 투명인간이었다. 선일여자고등학교 복도에서 뿌연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이런 공상으로 뭔가를 견디곤 했다. 만약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내가 사라지는 곳으로부터 더 멀리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길을 잃어버리고 싶었다.

다음에 만나서 '언니 시집 읽었어요.'라고 말하면 '응'하고 대꾸하며 특유의 웃음을 보이겠지. 어쩐지 서로 쑥스러울 것 같은 느낌.

선배의 시집을 손에 들고 보니, 문득 그 시절의 사람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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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1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한 편씩 꺼내어본다 했죠?
제 서재 방명록 18번 대사인데...
정말 제목처럼 마음을 다독이는 그림이네요.
시는 글쎄...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