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현대성의 자기 파괴 - 꿈에서 깨어나기
새로움은 현대의 영웅이다. 영웅을 기다리듯 사람들은 새로움을 기다린다. 19세기 아케이드의 산책자는 새로움의 구원을 기다린다. 20세기의 파리는 19세기의 아케이드를 공동화시키고 낡은 것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벤야민은 19세기로의 이동을 통해 20세기가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아케이드는 새로움에 대한 신화로 가득 찬 공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벤야민은 새로움에 대한 신화가 초래하는 꿈에서 깨어난다. 새로움에 대한 신화가 바로 현대의 신화를 구성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꿈에서 깨어난다. "새로움, 새로움에의 의지, 새로움은 결국에는 어떤 음식보다도 더 필수적인 것이 될 자극적인 독 중의 하나이다. 일단 그 독소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 되게 그 양을 늘려야 한다. 사물들의 무상함, 즉 정확히 말해 사물들이 지니는 새롭다는 특징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이 이상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깨어남의 기술을 위한 시도"이다. "프루스트가 삶의 이야기들을 깨어남을 계기로 시작하는 것처럼, 역사 또한 깨어남과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사실 역사는 그것 이외의 다른 것을 다루지 않는다. 역사는 19세기로부터의 깨어남을 다룬다."
19세기의 부르주아의 기념물 아케이드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아케이드의 폐허화는 19세기 부르주아의 신화의 해소이다. 해소된 신화는 새로움과 진보에 대한 광신이다. 19세기 부르주아 시대의 유물로 거기 남아 있는 공동화된 아케이드는 자기 파괴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다. 아케이드를 가득 채운 것은 새로움에 대한 신화이다. 바로 아케이드는 자신이 품고 있는 새로움에 대한 신화에 의해 폐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폐허가 된 아케이드는 새로움에 대한 현대적 신화의 자기 파괴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새로움에 대한 신화적 갈망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대의 신화가 해소될 때 현대의 소진점이 발견된다. 소진점의 발견은 "역사가 일단 상품 생산 사회에 이르면 더 이상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이룩할 수 없고 유행처럼 겉모습이 변한다고 해도 늘 똑같이 열악한 세계 상태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경험에 기반을 둔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두 번째 연구계획서를 불어로 재작성하면서, 벤야민은 독일어 판에는 없었던 결론을 추가했다. 그 결론은 블랑키Blanqui의 [천체를 통한 영원]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19세기 사람들이여, 우리의 환영들이 출몰하는 시간은 영원히 고정되고, 항상 똑같은 상태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네." [천체를 통한 영원]에서 블랑키는 역사 자체의 환영이란 다름 아닌 진보의 이미지였다는 것을 추적한다. 진보의 이미지는 사실 반복에 대한 알리바이이다. "우주는 무한대로 스스로를 반복하며 제자리에서 발만 긁어댄다. 무한은 동일한 틀에 박힌 것을 한치 빈틈없이 무한히 반복한다." 벤야민은 블랑키의 모습 속에서 보들레르의 <일곱 노인>이 예고하고 있는 현대성으로 돌입하고 있는 우주 전체를 발견한다. 보들레르는 "도깨비가 대낮에도 행인을 잡아끄는, 북적거리는 도시, 꿈들로 가득 찬 도시!"에서 일곱 노인을 발견한다. "난데없이 한 노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비 머금은 하늘 빛깔을 닮은 누런 누더기에, 그 눈에 번득이는 심술만 없어도, 동냥을 빗발치게 했을지도 모를 그런 몰골로" 초라한 노인의 모습 속에서 보들레르는 '영원함'을 발견한다. "나와 똑같은 소름이 끼치지 않는 사람은 잘 생각해 보라. 그 흉측스러운 일곱 괴물이 비록 그토록 늙어빠지긴 했어도 뭔가 영원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초라한 노인의 모습에서 영원함을 발견한 보들레르처럼 벤야민은 19세기의 유물 아케이드에서 영원함을 발견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후기 단계에서 현대성의 신화학은 꿈꾸는 집합체가 아니라, 반복 물화와 진보의 개념이 빚어내는 새로운 구도에 의해 구체화된다. 도시 인상학의 초점 이동 - 집합적 꿈과 꿈에서 깨어남에 내재한 신비주의적 요소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후반에 와서 보다 계급적이고 물질적인 개념틀로 바뀐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도시 인상학에 고무되어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후기에 와서 벤야민의 도시 인상학은 초현실주의자들의 기획에서 점차 멀어져, 대도시의 야만을 벗겨내는 정치학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대도시의 야만을 벗겨내는 정치학은 그의 마지막 논문인 <역사의 개념에 관한 테제>에서도 드러나듯이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실천과 거리를 둔다. <역사의 개념에 관한 테제>는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역사유물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역사주의'와 역사유물론은 진보를 신뢰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벤야민이 보기에 진보에 대한 신뢰와 현대성의 신화는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신화를 다시 탈신화하려는 벤야민의 도시 인상학의 종착점은 메시아적 구제에 대한 믿음이다. 메시아적 순간은 진보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는 반복 동일적 시간에 의해 구성된 역사적 시간에 종말을 가져온다. 따라서 도시 인상학의 정치학은 파리의 바리케이드전에서 시계탑을 공격했던 군중처럼 도시에서 반복동일성에 의해 지배받는 시간의 축적에 빚어내는 신화를 공격하며, 신화적 시간을 종식시킬 메시아적 순간을 향한다. "투쟁의 첫날밤에 파리의 여러 곳에서 상호간에 아무런 관련도 없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시계탑에 총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마 시의 압운에 힘입어 그의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생각되는 이 사건의 어느 증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누가 믿을 것인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든 시계탑 밑에 서 있던 새로운 여호수아가 마치 시간이 못마땅하기라도 하듯이 시계판에 총을 쏘아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그 순간은 언제 오는가? 그 순간을 누가 오게 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을 벤야민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우리가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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