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케이드와 현대성의 신화

벤야민은 파리라는 도시를 사실주의적으로 지각하지 않는다. 벤야민에게 파리는 초현실주의적 세계이다. 벤야민은 [파리의 촌뜨기Le Paysan de Paris]에 나오는 오페라 가에 대한 아라공Aragon식 묘사에 의존하여 아케이드를 다루어보려는 충동을 느낀다. 파리는 물질적 도시가 아니라, 환각이 공간화된 도시이다. "황제와 장관들은 파리를 프랑스의 수도로 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도로 만들기를 원했다." 소비의 수도이자 백화점이며, 특히 쇼핑 상가이기도 한 파리는 환각의 구체화이다. "파리는 자본주의의 전성기에 등장한 바빌론의 재림으로서, 현대의 바빌론으로서 소비와 사치의 천국이다." 19세기의 수도 파리는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종말을 고하지 않았다. 19세기의 수도 파리는 확장된다. 환각의 공간으로 19세기 세계 수도 파리는 아케이드가 소멸한 20세기에도 계속된다.


아케이드는 시각적 경험의 장소이다. 도시는 인간의 감각기관 중에서도 시각을 자극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공간이다. 보들레르는 콩스탕탱 기에게 바치는 [파리의 꿈]이라는 시에서 파리를 이렇게 노래했다. "인간은 일찍이 본 일도 없는, 그 무서운 경치의, 어렴풋하고 먼 이미지가, 오늘 아침에도 나를 홀린다 … 계단들과 아케이드들의 바벨탑, 그것은 광 없거나 광나는 금속으로 떨어지는 분수와 폭포들로 가득 찬, 하나의 끝없는 궁전이었으니 … 또 그 움직이며 바뀌는 불가사의들 위엔 영원한 고요가 감돌고 있었으니 (무시무시한 새로움! 모두가 눈요기! 귀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구나"(http://www.aladin.co.kr/blog/mypaper/462906 - nowave)


대도시는 대도시의 군중에게 끊임없는 시각적 자극을 제공하고, 시선을 잡아당기는 유혹을 제공한다. 시각적 자극은 대도시 내에서는 일상화된 자극이 된다. 벤야민은 [일방통행로Einbahnstrasse]에서 서술의 형식으로 실험했던 사유-이미지Denkbilder의 방법을 '아케이드 프로젝트'에도 적용하고자 하였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그를 괴롭혔던 문제는 도시의 인상학에 적당한 문학형식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도시에 관한 인상학적 분석의 서술이 도시의 모습을 닮기를 바랬다. 도시경험의 특성을 벤야민은 시각성의 전면배치에서 찾는다. 아케이드는 시지각이 전면에 배치되는 대표적 공간이다. 시각적 공간에서 펼쳐진 것들을 다시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 벤야민은 아라공의 초현실주의적 방법에 기댄다. 그는 "시각-공간Visionsraum에서 구름과 같은 분위기, 구름처럼 변하는 사물"들 속에서 현대성을 발견하려 한다. 따라서 그가 선택했던 방법은 인상학의 몽타주였다.

아케이드는 초현실주의적 꿈으로 산책자를 이끄는 시각-공간이다. 아케이드에서는 새로운 상품의 유혹들이 펼쳐진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에서 제기하는 아우라 상실테제는 도시경험에 걸 맞는 서술형식을 찾으려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난제와 연결된다. 아우라의 상실은 예술작품을 둘러싼 담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아우라 상실로 인한 새로운 지각방식이 도시경험의 핵심이다. "역사의 거대한 여러 시대들 내부에서는 인간집단의 모든 존재방식과 더불어 의미를 지각Sinneswahrnehmung하는 방법도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의미 지각이 조직화되는 종류와 방법, 지각이 이루어지는 매체는 자연적으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성격이 규정된다."


아우라 상실 테제는 미학적 담론을 넘어서 현대 사회의 출현에 의한 사회적 변동과 이에 따른 도시인들의 지각구조의 변화에 대한 주목을 내포하고 있다. "지각의 매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아우라의 붕괴Verfall der Aura로 파악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붕괴현상의 사회적 조건들을 제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실체적 특성이 아니다. 아우라는 지각의 주체와 지각 대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험에 대한 지칭일 뿐이다. 즉 아우라는 특정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맺는 사물과의 모든 관계에서 경험되는 현상이다. 아우라에 관한 벤야민의 예외적인 정의인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아우라는 한 지각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대상을 지각하는 인간의 경험을 지칭한다. 벤야민이 예로 들고 있는 자연적 대상에서 발생하는 아우라는 자연을 지각하는 주체에게 발생하는 숭고의 경험에 대한 표현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 있는 자에게 그림자를 던지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이 순간 이 산, 이 나뭇가지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가 숨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우라를 예술작품의 실체적 특성으로 해석할 경우, 아우라 소멸 테제는 기술복제의 환경에서 예술작품의 지위와 속성들의 변천을 지적하는 테제로 한정적으로 해석되지만, 우리가 아우라를 지각의 주체와 지각 대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론의 문제로 볼 경우, 아우라 소멸 테제는 예술작품의 성격변화에 관한 담론을 넘어서서 현대성이 관철되고 있는 사회에 대한 해석 테제로 확장될 수 있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우라의 소멸을 발생시키는 두 가지 사회적 조건을 제시한다.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보다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오고자 하는 것은 현대의 군중이 바라 마지않는 열렬한 욕구이다. 또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군중은 복제를 통하여 모든 사물의 일회적 성격을 극복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가까이 있다고 느껴지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으로 사물을 아우라적으로 경험하던 지각방식은 사물을 가까이에 두고, 가까이 두는 것을 통해 일회성을 극복하려는 현대적 군중의 탈 아우라적 지각에 의해 대체된다.


도시는 기술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현대적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환경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뿐만 아니라, 도시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인간이 도시적 풍경(지각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의 문제는 바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연결시켜주는 핵심적 모티브로 작동한다. 충격이 일상화되고 아우라가 소멸되면, 소멸된 아우라 위에 재등장하는 컬트적 가치는 스펙타클을 완성한다. 도시의 건축물, 도시의 상점들이 제공하는 물건들은 꿈의 실현에 대한 약속이다. 산책자는 아케이드의 시각적 공간에서 환각 경험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자기를 상실하고 산책자의 주체는 환각 속에서 해소된다. 아케이드를 환각으로 시각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아케이드는 이미지의 공간으로 변환된다. 이미지의 공간 아케이드는 '창문 없는 모나'로 변환된다. 모나드인 아케이드는 세계와 동일하다. "아케이드는 모나드의 이미지이며, 도시의 이미지이자 동시에 작은 것 속의 세계이다."


상품들은 새로움에 대한 신화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신화는 반복동일성의 다른 측면일 뿐이다. 새로운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것에 의해 교체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의 무한 운동으로 보이는 상품의 순환은 동일성의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 그것은 현대성이 만들어내는 새로움의 신화 속에 되풀이되는 반복동일성이다. 19세기의 아케이드의 산책자들은 상품을 구경하기 위해 나섰다. 아케이드의 산책자는 상품의 홍수에 직면하며, 그것들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 속에서 아케이드를 거닌다. 산책자는 자신은 단지 상품을 구경하는 구경꾼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상품을 구경하는 동안 스스로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아케이드의 가장 훌륭한 상품은 산책자가 구경하는 상품이 아니라 바로 산책자였다. "보들레르는 작가의 진정한 상황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산책자가 되어 시장에 간다. 그는 관찰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벌써 구매자를 찾고 있다."


상품의 세계인 도시는 꿈의 풍경을 연출한다. 도시는 집합적 꿈이 실현된 장소이다. 도시의 건축물, 도시의 상점들이 제공하는 물건들은 꿈의 실현이며, 꿈에 대한 약속이다. 도시풍경은 꿈의 풍경이다. "도시에 들어온 자는 자신이 꿈의 그물망 안에, 아득히 먼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오늘 발생한 사건에 병합하는 꿈의 그물망에 들어온 것처럼 느낀다."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시각은 꿈의 시각이어야 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꿈의 시선에 의한 아라공의 초현실주의적 파리 인상기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아라공으로부터 거리를 두려한다. "아라공이 꿈의 영역만을 고집하는 반면 이 연구([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각성의 구도들이 발견되어야 한다. 아라공은 인상주의적 요소 즉 신화에만 머물러 있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적 공간 속에서 신화의 해소이다. 신화의 해소는 있어왔지만 의식하지는 못했던 것을 일깨우는 것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아케이드의 꿈에 머물러 있는 아라공과 달리 벤야민은 19세기에 대한 기억작업을 통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 즉 현대의 신화를 해소하는 구원의 희망을 펼쳐낸다. 영락한 19세기의 아케이드 속에서 벤야민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우는 방법"을 통해 20세기에 꿈에 취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