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현대성: 발터 벤야민의 도시인상학


1. 파리, 보들레르와 벤야민

완성되지 않았기에 전설이 되는 저서들이 있다.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Das Passagen-Werk]가 그러한 책 중의 하나이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말년까지 몰두했지만 죽음 때문에 완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1950년 아도르노의 벤야민 평전 [발터 벤야민의 특성Charakteristik Walter Benjamins]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이후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무성한 소문과 추측이 나돌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미완성 유고가 1982년 벤야민의 [전집Gesammelte Schriften] 제 5권으로 출판되어 세상에 나타났지만,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신비감은 종식되기는커녕 강화되었다. 출간된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체계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메모와 단상의 형태로 벤야민이 남긴 기록을 모은 덩어리뿐이었기 때문이다.


벤야민을 이해하기 위해서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저작이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몰두했던 연구 주제와 동의어이다. [전집]의 편집자가 지적하듯 벤야민은 1927년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구상한 이후 그가 사망하던 1940년까지 정열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몰두했다. 벤야민이 1927년에서 1940년 사이에 작성한 주요 논문들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 시기의 논문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모두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벤야민의 거대 계획의 완성을 향한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결과물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저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건물을 짓기 위해 벤야민이 모아놓은 재료들만이 남아있다. 우리는 그 재료들이 조합되면 어떠한 외양을 지닐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마 벤야민 또한 자신이 짓고 있는 건물의 모습을 미리 예측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도 모아둔 재료들 더미 앞에서 한숨을 쉬면서, 이 재료들을 어떻게 가공하여 건물을 완성할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재료들만을 모아놓고 사망했다. 벤야민이 모아 놓은 건축재료로 집을 짓는 것은 해석자의 몫이다. 미완성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한편으로 해석의 괴로움을 남겨주지만, 동시에 해석이 생산이 되는 기쁨을 맛보게 하도록 해주는 미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해석적 창작은 벤야민의 프로젝트 기획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해석적 창작을 위해 벤야민이 모아둔 재료 덩어리를 통해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 건물이 벤야민의 원래 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건축물이 되기 위해서는 벤야민의 청사진을 파악해야 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건축을 위한 청사진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1927년에서 1940년 사이의 벤야민의 저작 사이의 긴밀한 내적 연관성을 해독할 때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출간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한정시켜 보면, 우리는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파리에 관한 인상학적 연구로 기획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추측은 절반만 타당하다. 파리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무대임은 확실하지만, 프로젝트를 통해 벤야민이 추적하는 바는 파리에 관한 인상기가 아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연구계획서에서 채택한 제목, "19세기의 세계수도로서의 파리Paris, die Hauptstadt des XIX. Jahrhunderts"는 그가 아케이드의 인상학Physiognomie적 독해를 통해 무엇을 파악하려고 했었는지를 잘 표현해준다. 벤야민은 파리를 통해서 19세기의 현대성을 규명하려 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학적 분석을 넘어서, 19세기라는 역사적 시간 속의 현대성 형성에 관한 연구서이다.

벤야민은 도시풍경을 인상학적으로 분석하여 부르주아 사회의 알레고리를 해독하려는 충동을 보들레르Baudelaire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런 측면에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보들레르의 연장이다. 보들레르의 중요성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묶음 J로 분류되어 있는 보들레르 연구의 양적 비중에서도 확인된다. 벤야민은 보들레르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모델로 삼았다. 따라서 벤야민의 보들레르 연구 논문인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제2제정기의 파리Das Paris des Second Emire bei Baudelaire>와 <보들레르에 관한 몇 가지 모티브Ueber einige Motive bei Baudelaire>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독해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에서 대도시를 서정적 산문으로 변환시키고 싶은 유혹을 이렇게 노래했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조그만 고백하나를 해야겠소 … 아주 묘하게도 회화적인 옛날 생활의 그림에 그가 적용시킨 방법을 현대 생활의, 아니 차라리 더욱 추상적인 현대의 어떤 생활의 묘사에 적응시켜 보자는 의도 말입니다. 우리들 중 누가 한창 야심만만한 시절, 이 같은 꿈을 꾸어보지 않은 자가 있겠습니까? 리듬과 각운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움직임과 상념의 물결침과 의식의 경련에 걸맞을 만큼 충분히 유연하면서 동시에 거친 어떤 시적 산문의 기적의 꿈을 말이요. 이 같이 집요한 이상이 태어난 것은 특히 대도시들을 자주 드나들며 이들 도시의 무수한 관계에 부딪치면서부터입니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 당신 자신도 째지는 듯한 유리 장수의 소리를 샹송으로 번역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었나요? 이 소리가 거리의 가장 높은 안개를 가로질러 다락방에까지 보내는 모든 서글픈 암시들을 서정적 산문으로 표현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았던가요?"

보들레르가 대도시를 서정적 산문으로 번역하려 하였다면, 벤야민은 아케이드를 현대성 이론으로 번역하려 한다. 벤야민에게 도시는 19세기의 소우주이며, 아케이드는 19세의 소우주인 도시의 모나드이다. 도시는 현대적 사회·경제구조의 특성을 포괄하는 공간이다. 대도시는 인간이 행위 하는 무대이며, 이 무대 위에 인간은 흔적을 남긴다. 도시의 인상학자 벤야민은 도시라는 공간 속에 숨어 있는 현대성의 원사Urgeschichte의 흔적을 찾아내는 고고학자이자 탐정이다.

도시 인상학자이자 탐정인 벤야민은 아케이드라는 파리의 모나드 속에서 현대성의 알레고리Allegorie를 발견하려 한다. 보들레르도 [악의 꽃 Les fleures du mal]을 통해 파리의 풍경에서 알레고리를 발견하려 한다. "파리는 변해요! 한데 울적한 내 마음속에서는 움직인 게 하나도 없군요! 새 궁전들도, 비계들도, 돌덩이들도, 낡은 변두리들도, 모두가 내게는 알레고리로 바뀌나, 그리운 옛 생각들이 바위보다도 더 무겁군요." 파리를 바라보는 보들레르의 우울한 응시는 벤야민의 [독일비극의 기원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을 관통하는 바로크적 세계관의 핵심을 구성하는 멜랑콜리Melancholie의 시선과 동일하다.

벤야민은 알레고리에 대한 통찰은 "사물들의 무상성Vergaenglichkeit"에 대한 통찰이며, 이들을 영원으로 구원하려는 욕망이다"라고 말했다. 알레고리적 통찰은 영원함에서 무상성을 발견하며, 무상함이 역설적이게도 영원히 반복됨을 인식한다. 즉 알레고리는 영원함과 무상성이라는 대립적인 힘들이 빚어내는 구도Konstellation의 형상이다. 알레고리는 아름다움이 풍기는 영원함의 가상을 파괴하려는 해체의 시도이자 동시에 무상성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벤야민에게 알레고리는 절대화에 대한 도전의 표현이다. 알레고리는 개념의 추구가 아닌 상상력의 자유를 즐긴다. 왜냐하면 알레고리는 동일성이 아닌 양의성과 다의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알레고리는 의미의 동요를 추구한다. 그래서 벤야민은 독일비극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의미의 순수성과 통일성에 대한 저항"인 알레고리야말로 바로크의 긍지라 했다. "알레고리는 건설과 파괴, 희망과 슬픔, 미몽과 각성, 실재와 허구간의 긴장을 분절해낸다."

[독일비극의 기원]에서 출발한 무상성에 대한 통찰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까지 이어진다. 벤야민은 19세기의 아케이드를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알레고리로 파악하고, 이 알레고리를 해독하려 한다. 알레고리를 해독하기 위해 벤야민은 보들레르가 [현대적 삶의 화가]에서 주장했던 보들레르의 현대성 개념을 받아들인다. 보들레르는 무상성과 영원성의 결합을 현대성이라 불렀다. "현대성이란 일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 우연한 것으로 예술의 반을 이루고, 나머지 반은 영원한 것, 불변의 것이다." 보들레르에게 현대성은 화해할 수 없는 반립들의 구도이다. 벤야민은 19세의 수도 파리에서 무상성과 영원성 사이의 반립의 흔적을 찾아낸다. 그에게 아케이드는 반립으로 구성된 19세기의 부르주아 사회의 알레고리이다. 19세기의 현대성은 반립적 힘들의 구도로 등장하며, 알레고리 형상으로 현대성이 형성되는 아케이드는 따라서 역사를 지속적인 발전과 진보로 파악하려는 '역사주의'의 역사철학이 해체되는 현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