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북한체제 붕괴 노리는 북한인권법

 

 

북한체제 붕괴 노리는 북한인권법
대량 정치망명 유도… 정작 인권문제에 관심없어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지난 9월 28일 미상원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북한 체제에 반대하는 대량 정치 망명을 유도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표면화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의도대로라면 이른바 ‘탈북자’ 문제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탈북자 문제를 취재해온 필자는 미국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조중 국경을 넘어선 북조선 사람들을 과연 ‘정치적 망명객’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조차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 활동 중인 각종 NGO나 선교단체, 그리고 탈북 브로커들의 실체를 조명해봤다. 이들은 탈북자를 양산하겠다는 미국의 이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을 통해 미국의 재정적 수혜를 입게 될 대상도, 다름 아닌 이들 탈북지원 단체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탈북 문제가 인권개선의 의도가 아닌 다분히 ‘정치적 기회주의’의 소산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조천현 비디오 저널리스트 vjcho@hotmail.com


탈북자 문제가 외교적인 현안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1월, 중국 연길에서 생활하던 탈북자 7명이 중국 흑룡강성 밀산을 거쳐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갔다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된 사건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 7명은 모스크바의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결국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이후 국내 몇몇 NGO 단체들이 나서 ‘북한 인권과 난민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탈북자 문제를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유엔 등 국제기구의 의제로 다룰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정작 EU(유럽연합)가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보이자, 이들 NGO 단체들은 북한으로 송환된 7명 중 1명이 중국으로 탈출했다는 정보를 흘렸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해, 이 사건은 NGO와 탈북자가 꾸민 연극에 불과했다.

가짜 김운철’이 탈북자 문제를 키웠다

김운철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북으로 송환된 후, 지하 고문실에서 쇠줄이나 가죽벨트, 각종 전기봉 등으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고, 국내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는 “북으로 송환당할 때 48Kg이었던 몸무게가 병보석으로 나올 때는 28kg으로 줄었다”며 자필수기를 『월간 조선』에 건네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한국과 일본 NGO 단체들의 도움으로 태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김씨는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으로 송환된 후 혓바닥으로 변기를 핥고 팔과 성기에 담뱃불로 지짐을 당했다”고 밝히는 등 충격적인 폭로를 했다.

한국정부는 2001년 6월 26일 김씨를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같은 날 장길수군 일가족 7명은 치밀한 준비를 마친 한국과 일본 NGO 단체의 도움으로 중국 베이징 주재 유엔 고등판무관실에 진입했다. 다음날 27일 프랑스의 대표적 일간지 『르몽드』는 장길수군 사건과 함께 김씨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강제수용소의 집단 처형과 굶주림'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김씨가 한국으로 들어오기 3일 전에 이루어진 인터뷰 기사였다.

김씨는 “1000명의 처형을 목격했으며 그 중 15차례는 교수형이었고 2차례는 산채로 화형하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희생자의 95%는 죄가 없었으며, 처형장에서 개들이 인육을 먹고 해골을 굴리는 것을 봤다”는 엽기적 잔혹행위를 증언했다.

그러나 정작 김운철은 가짜였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박충일’이라는 사람이 한국에 가기위해 ‘가짜 김운철’ 행세를 한 것이었다. 한국에 데려가 준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탈북자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탈북관련 NGO의 비도덕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EU(유럽연합)와 UN 인권위원회에 보고된 ‘가짜 김운철’의 증언은 수정조차 되지 않았다. 때마침 장길수군 가족 망명 사건이 터지고 여론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리자 ‘가짜 김운철’과 그를 연출했던 NGO관계자들은 기사회생한 듯 숨을 죽이고 어떤 공식논평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박충일이 자신이라고 주장한 김운철씨는 러시아에서 체포되었을 당시, 국내신문과 방송에 얼굴과 이름이 보도되었기에 누구나 얼굴을 분간할 수 있었다.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후 국제 여론을 등에 업은 NGO단체들은 EU(유럽연합)가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정식으로 북한 결의안을 채택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인권문제를 매우 정치적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이들 NGO들은 ‘인권단체’라기 보다 차라리 ‘정치단체’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그 서막은 2002년 3월 14일,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탈북자 33명을 진입시킨 사건이었다. 당시 스페인이 유럽연합의 의장국이었기 때문에 진입장소를 스페인 대사관으로 택했다. 유럽연합 회의일정은 2002년 3월 14일부터 15일까지였다. 그들의 의도는 적중하는 듯 보였다.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33명을 계기로 유럽연합은 3월 16일에 북한 결의안을 채택하려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독일인 활동가 폴러첸의 적절치 못한 행동 때문에 중국 당국은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을 27시간 만에 제3국으로 추방시켰고, 결국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은 채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공안 당국에서는 탈북자 검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와는 별도로 스페인 대사관 사건 이후 탈북자들은 각국 대사관에 진입만 하면 무난히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이때부터 브로커들의 금기시해왔던 대사관 진입 사건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브로커들은 그 대가로 탈북자 1인당 3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10여 차례의 대사관 진입사건이 더 있었지만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협상을 통해, 각국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을 조용히 제 3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탈북자 문제는 더 이상 부각되지 않았다.

“NGO, 그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여론이 잠잠해지자 NGO들은 탈북자 문제를 다시 이슈화하기 위해 이른바 ‘엔타이항 사건’을 기획하였다. 이 사건은 2003년 1월 20일, 탈북자 80여명이 중국 산동성 엔타이 항에서 보트를 타고 한국과 일본으로 건너가려다 실패한 사건이었다. 기획망명이란 성공하든 실패하든 국제이슈화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도 정치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기획망명을 밀어 붙일 수 있다는 ‘주먹구구식’의 결정판이 이 ‘엔타이항 사건’이었다. 국내외 7개 NGO 단체가 연합해 계획을 했다는데 처음부터 계획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계획을 주도한 단체 관계자는 현장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현지 사업가인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가 일을 진행했고 한국인 프리랜서 사진작가 한 명이 동행했다. 한국에서는 전화로만 지시를 내렸을 뿐이고, 불과 5명이 나서서 얼굴도 모르는 80여명의 탈북자들을 모집하고 인솔했다.

필자는 이 사건 10여일 후 엔타이항에서 밀입국 하려다 피신한 2명을 중국 연길에서 만났다. 한국에 보내준다는 조선족 모집책의 말만 믿고 따라 나섰던 이춘성(37세, 함북 청진, 가명)씨는 “모집책이 한국 사람을 소개시켜 주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나섰다”고 밝혔다.

이씨는 한국 여권을 만들어서 데려가니까 무사하다는 모집책의 말을 믿었고, 모집책에게 한국 입국에 성공하면 정착금 3700만원을 건네주기로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모집책은 함께 동행할 한국인에게는 “정착금을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씨는 연길에서 한국인 2명과 함께 기차를 탔지만 아무도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함께 동행한 한국인 프리랜서 작가는 이씨를 비디오로 촬영만 했다. 별 의심이 없었던 이씨는 대사관으로 들어가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갈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대련에 도착하자 여객선으로 갈아타고 엔타이 항으로 향했다. 또 다른 탈북자 10여명이 합세해 놀란 이씨를 보고 한국인은 “이제 엔타이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며 “죽을 각오까지 했냐”고 물었다.

그 배안에는 80살 된 노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장애인도 있었다. 새벽 3시 엔타이에 도착하자 함께 동행했던 한국인 중 한 사람이 1인당 10원씩 내고 타고 온 배안에서 아침 6시까지 잠을 자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씨는 미심쩍어 함께 동행 한 탈북자와 함께 여관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배에서 내렸다.

한국인 한명도 내렸다. 한국인 프리랜서 사진작가만 탈북자들과 함께 배에 남았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배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이씨는 정말 운 좋게 사건의 현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기획망명을 허술하게 주도했던 NGO 단체들은 그 어떤 ‘사과성명’이나 ‘반성’도 표명하지 않았다. 실패한 기획망명은 실패한대로 국제 문제화하기에 골몰했을 따름이다.

기획망명의 그늘, 브로커와 선교단체

이처럼 기획망명의 주최자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이벤트성’ 기획능력은 뛰어나지만 탈북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 또한 기획망명에 조직적인 브로커까지 결합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일부 NGO선교 단체들은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언론에 의존하는 편협성마저 드러내고 있다. 다음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일가족 3명과 함께 기획망명에 참가하려다 체포되어 강제송한당한 후 재탈북한 김진주(38세, 함북회령, 가명)씨는 애초에는 조선족 남편과 생활하면서 형편이 나아지면 북한에 가 살 생각이었고 한국에는 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한국으로 떠나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인 모집책이 “탈북자가 열 명 정도만 더 모이게 되면 3일 안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할 수 있다”고 권유해와 일가족 3명과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모집책에게 선금으로 3,000위안을 건네주고, 한국에 도착하면 정착금 일부도 떼 주기로 약속했다

모집책은 김씨 일행을 북경에 있는 한 민박집으로 안내했다. 민박집에 들어서자 또 다른 탈북자들도 있었다. 그 곳에서 한 민간단체 소속이라고 말한 탈북자 안내인은 ‘난민 신청서’ 작성 요령을 알려주었다. 난민 신청서를 쓴 후 외국인 기자와 기자회견도 했다. 기자회견 후 안내인은 독일학교 담을 넘으라며 담을 넘기 위한 의자도 준비해 주었다.

다음날 모집책은 2대의 택시를 잡아주면서 안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기자들이 뒤따라가면서 카메라로 찍기 때문에 만약에 붙잡히게 되면 더 좋다고 하면서 언론에 공개하면 16일 안에 풀려날 수 있다고도 했다.

택시가 독일학교 담장에 다가서자 중국공안이 나타나 자신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소리치던 탈북자 안내인과 외국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김씨는 체포되어 강제 송환되는 순간까지도 외국인이 개입된 기획망명이라 그들이 도와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종교단체가 관련된 부작용도 있다. 지난 7월 25일,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10여 명이 외교통상부를 항의 방문한 사건이 있었다.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지난 5월 북한을 빠져나온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기획망명을 추진하고 있는 ‘두리하나’라는 이름의 선교단체를 찾았었다. 외몽고 국경선 철조망 아래까지 직접 바래다 준다는 말을 믿고 가족 1인당 200-300만 원씩의 비용까지 지불했다. 이들이 부탁한 가족은 총 18명이었다.

‘두리하나’측은 탈북자 출신 간사 1명을 중국에 보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간사는 중국 내몽고 국경 도시로 가 한국말도 모르는 중국인 운전수에게 탈북자 가족들을 외몽고 국경선까지 데려다 줄 것을 부탁하고 그냥 한국으로 입국했다. 하지만 운전수는 탈북자 18명을 국경선 철조망 아래에 내려주지 않고 국경선이 보이지 않는 중국인 목장의 철조망 옆에 내려주고 사라졌다. 탈북자 18명은 국경선인 줄 알고 철조망을 넘어 중국인 목장으로 들어갔다. 이를 수상히 여긴 목장 주인의 신고로 이들은 곧바로 체포되어 1달 가까이 중국 변방의 구류소에 수감되었다.

‘두리하나’측은 수감된 가족들이 북으로 강제 송환될 때까지 한달이 넘도록 이 소식을 한국의 가족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가족들의 강력한 항의에 ‘두리하나’측은 기획망명 입국비용으로 받은 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사건을 일단락시켰다. 피해자 가족 김인수(40세, 가명)씨는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울분을 토로했다.

“우리처럼 나서지 않았다면 이런 사건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400명도 넘게 데려왔다고 큰소리 뻥뻥치고, 그 뒤에는 소리없이 붙잡혀 죽어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브로커한테 당했다면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NGO 선교단체에 당해서 격분한단 말입니다.”

한국행을 원하지 않는 탈북자들?

탈북자들의 유형을 보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국행 희망형, 중국 정착형, 북조선 귀환형이다. 일반적으로 한국행을 원하는 사람들의 일부분만 NGO 단체들에 의해 크게 부각돼, 이들이 마치 ‘탈북자들의 전부’인 듯한 여론이 형성되었다.

필자는 지난 2년간 장기체류 탈북자 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바 있다. 이들 탈북자들이 원하는 최종 정착지가 어디일까라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였다. 설문조사 결과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가 41%, 북조선 귀환을 원하는 탈북자가 34%, 중국에 정착하기를 바라는 탈북자가 21%였다.

여기에서 한국행을 바라지 않는 탈북자가 절반이 넘는 55%에 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획망명의 여파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부류가 이들 중국 정착형과 북조선 귀환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머무르고 있거나, 북한의 개방을 기다리고 언젠가는 북으로 가 잘 살아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정치에도 인권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부류가 많았다. 이들은 이미 중국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거나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정치적인 난민이 아니라 불법체류자인 셈인 것이다.

기획망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다 자녀와 생이별하고, 일자리를 구해 일하다 중국공안에 체포된다. 중국공안의 눈에는 모든 탈북자들이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나보았던 중국 정착형과 북조선 귀환형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기획망명을 주도한 한국인과 이에 동조한 탈북자들을 크게 원망하고 있었다.

한편,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 또한 대부분 중국공안의 단속을 피해 한국에서 안전하게 국적을 얻어 돈을 벌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들을 유혹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는 방법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은데다가 기획망명을 하는 모집책이나 탈북 브로커 등의 권유, ‘후불제’라는 말에 한국행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북조선에서 관대하게 처벌 없이 받아준다면 다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58%가 귀향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이유는 “고향, 조국, 자식과 가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국 정부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9월 27일, 중국 상하이 국제학교에 진입했던 탈북자 9명이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중국공안으로 넘겨졌던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탈북자의 인권보호는 물론, 미국망명까지 허용하겠다고 나선 미국이 자국시설에 진입한 탈북자들을 문전박대하여 중국공안으로 인계했다는 사실은 탈북자 모두가 난민이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2002년 5월 중국 선양 주재 미국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3명도 당초 미국행 의사를 밝혔지만, 영사관측이 미국행을 주장할 경우 중국 공안에 인계하겠다는 입장을 취해 결국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행선지를 바꾼 바 있었다. 미국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다.

이처럼 미국은 앞으로도 일반 탈북자의 인권보호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가치가 높은 탈북자에게만 망명을 허용할 뿐, 일반 탈북자들은 한국정부가 떠안아야 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결국, ‘북한인권법’의 최대 수혜자는 탈북자들이 아닌, 탈북 문제를 이슈화하기에만 급급한 탈북지원 NGO단체일 뿐이다. 그들은 브로커들과 함께 북조선에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기획탈북 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해 열을 올릴 것이다. 물론 그 뒷감당은 한국 정부가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탈북자들의 인권문제 보다는 탈북자 자체를 양산하기에 여념 없는 미국과 탈북 브로커의 꼬리는 자르지 못한 채 애꿎은 탈북자들만 잡아가두기에 바쁜 중국 당국의 합작은 ‘불법 체류자’들만 무더기로 양산할 따름이다.

 

2004년 11월 15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