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에서 친구를 만나 오봉뺑에서 빵에 담긴 따끈한 스프와 샌드위치와 진한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친구가 좋아한다는 그 집 빵은, 정말 맛있다!
인사동까지 걸어 <이철수 판화전>이 열리는 인사아트센터에 갔다. 이번 주는 일이 대박(!)이라며 소박하고 단순한 걸 보고싶다는 친구의 바람과도 일치하는 전시회다. (저녁 먹고 회사로 다시 들어간데다 오늘 내일 모두 야근이라니, 그럴 만 하다. 흠. 좀, 아니 많이 안 됐다.) 작품을 보는 중 이철수 선생이 오셨다. 안내 데스크에서 도록과 판화집을 구경하는데, 이철수 선생의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준다. 사인받는게 어색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5,000원짜리 간단 도록에 정작 내가 마음에 들어한 작품들이 실리지 않아 패스.
쌈지길을 구경갔다. 1층부터 나선형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가게 안의 이런 저런 제품들을 구경하며 올라가게 되어 있다. 여러모로 잘 지은 건물. 다만 거기서 파는 물건들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뭔가를 사지는 못하겠다는 점이 흠. 1층의 마당에서는 마침 무슨 전통 무술 시범인가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재미는 없었다. 녹차라떼를 사 들고 옥상의 테이블에서 따스한 햇볕을 쪼이며 잠시 휴식.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찍느라 여념이 없다. 지하에 떡과 전통차를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던데 들르지 못했다. 맛있어 보이던데 다음에 가봐야지.
날은 좋고 저녁 먹기에는 시간이 이르고 하여 경복궁에 놀러 갈까 했으나 너무 멀다. 가까운 운현궁으로 코스를 잡았다. 안국동 사거리 쪽으로 올라갔더니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행렬이 서 있다. 무슨 일인가 잠시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기만 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쪽으로 그렇게 지나다녔으면서도 바로 거기에 운현궁이 있다는 걸 몰랐다. 조용히 앉았다 갈 생각이었는데 웬걸, 운현궁에서는 고종의 왕비 간택 재현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마당에 모인 꽤 많은 인파. 앉아서 쉴 만한 데도 없다. 안국동에 서 있던 그 행렬은 고종의 행차로, 원래는 창덕궁에서 왕비를 데리러 오는 행차라고 했다. 고종의 행렬이 도착하기 전 막간 행사로 정동극장 고전무용팀의 화간무가 있었다. 아, 무용수 중 한명이 소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나보다. 팔을 들어올릴 때마다 소매 자락이 주르르 흘러내려 허연 팔이 팔꿈치 위까지 드러난다. 너풀거리는 소매 자락이 아니라 팔이 드러나니 춤의 느낌 자체가 달라진다는 걸 처음 알았다. 보기 흉하다. 본인은 자신의 실수 때문에 속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와서 다시 인사동으로 밥 먹으러 갔다. 오늘의 메뉴는 한방밥. 반찬은 채식으로만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데 밥도 반찬도 정갈하니 맛나다. 좋은 재료에 조미료 없이 요리하니 확실히 깔끔하다. 배불러 배불러 하면서도 평소보다 더 많이 먹어버렸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이번에는 인사동 거리에 가락국 왕의 서울 행차가 들어서 있다. 가락국 왕이 서울에 무슨 일이야, 하면서 킥킥거렸다. 인도 무희로 분한 여자들은 반팔에 배꼽이 드러나는 짧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미 저녁 때가 되어 꽤 쌀쌀했으니, 무지 추웠을 것이다. 행사 자체보다 그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
일하러 돌아가는 친구와 헤어져 만원 지하철로 귀가. 간만에 많이 걸어 다리 아프고 피곤하지만 재미있는 하루. 오늘처럼 날씨가 좋을 땐 나가서 햇볕과 바람에 몸을 말려줘야 한다.
내일은 종일 집에서 뒹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