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아버지는 누룽지를 무척 좋아하셨다. 엄마는 아버지 때문에 항상 냄비에 밥을 하셨고, 일부러 조금 더 눌려서 구수한 누룽지를 한 그릇 끓여내곤 하셨다. 물론 누룽지는 언제나 아버지 차지. 동생이나 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누룽지에 밥을 좀 더 말아서 조금씩 나눠 주셨다.
몇 년 전 제법 비싼 밥솥을 집에 보냈다. 각종 밥 종류는 물론 죽까지 만들 수 있는 최신 모델로. 그러나 그 밥솥은 보온 이외의 다른 기능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냄비에 밥을 하셨고, 누룽지를 만드셨다. 아버지는 아마 하루 한끼는 누룽지로 드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언젠가 집에 내려갔을 때 부엌 싱크대를 뒤지다가 제법 큰 비닐백 안에 가득 담긴 누릉지를 발견했다. 언제든 끓일 수 있게 매일매일 조금씩 모아 놓은 건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잊혀졌던 거다. 엄마한테 '이거 나 가져가도 돼?'라고 물었더니 당연히 그러라신다. 눈독 들이는 올케에게도 나눠주었다.
그 이후로 엄마는 아버지가 아니라 딸래미 먹이려고 누룽지를 만드신다. 한번씩 집에 가면 비닐백 가득 누룽지를 가져오고, 그 놈은 내가 밥 먹기 싫을 때나 밤에 출출할 때 훌륭한 먹거리가 된다.
좀 전에 한 그릇 끓여먹었다. 점심으로 먹은 김밥이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저녁을 먹지 않았더니 12시가 다 되어서야 배가 고픈거다. 이 시간에 밥 먹기도 그렇고, 라면 같은 것도 먹기 싫고. 누룽지가 딱이다. 냄비에 팔팔 끓여서, 총각 김치랑 깻잎 꺼내놓고, 계란 후라이 한장 부쳐 같이 먹으니 든든하다. 부러 물을 좀 많이 넣고 끓여 구수하게 숭늉도 마셨다.
엄마,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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