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이 책은, 체 게바라 시집이라고 나왔지만, 사실 게바라의 일기와 편지를 발췌해서 엮은 것이다. 이틀 동안 이 책을 잡고 있으면서, 때때로 가슴이 아렸다. 다른 누군가의 글이었다면, 어쩌면 감상(感傷)이라고 혹은 공허한 관념이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온 몸으로 현실을 살아낸 체 게바라의 글이므로, 그의 삶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온전히 느끼고 감동할 수 있다. 의사이기에 앞서 인간이고 혁명가였던 체. 그의 이름 앞에, 여전히,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