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 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혁명가인가?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이 책은, 체 게바라 시집이라고 나왔지만, 사실 게바라의 일기와 편지를 발췌해서 엮은 것이다. 이틀 동안 이 책을 잡고 있으면서, 때때로 가슴이 아렸다. 다른 누군가의 글이었다면, 어쩌면 감상(感傷)이라고 혹은 공허한 관념이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온 몸으로 현실을 살아낸 체 게바라의 글이므로, 그의 삶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온전히 느끼고 감동할 수 있다. 의사이기에 앞서 인간이고 혁명가였던 체. 그의 이름 앞에, 여전히,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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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4-11-1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영화도 보고 싶어요. 책꽂이에 몇 년 째 꽂혀있는 체 게바라 평전도 읽어야 할 터인데...흠~

urblue 2004-11-1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말에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보러 갑니다. ^^

바람구두 2004-11-1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을 온몸으로 밀고 살아온 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들의 신념을 증거해보이죠. 추천 하나는 전데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겁나서 차마 못 보겠습니다. 요새 모터 사이클이 무척이나 사고 싶어졌거든요. 흐흐.

파란여우 2004-11-1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엽이 지고 난 아침에 아름다운 혁명가의 글을 읽습니다. 저는 그저 그의 용기있는 선택에 기가 죽을 뿐입니다. 모터사이클이라...이 글과 상통하는 님의 멋진 댓글입니다.^^

chika 2004-11-1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도 댓글 달기가 힘드네요..

엄청난 갈등없이 선뜻 구급상자만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 언제 올까요..?

urblue 2004-11-1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모터사이클 타기에는 연세가 좀..그렇지 않나요?



파란여우님,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님께서 기가 죽는다 하시면, 저는 어찌 살라고..흑.



치카님, 구급상자만 필요한 세상, 아니 그 구급상자조차 필요없는 세상, 언제 올까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하얀마녀 2004-11-1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맛이 나는 글이군요. 체 게바라 평전에서도 읽었던 것 같은데요. 그 땐 왜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urblue 2004-11-1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저도 체 게바라 평전 읽은게 몇 년 전이라 기억이 잘 안납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