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하여 수필집이나 산문집은 보지 않는다. 아마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읽었을 <무소유>를 끝으로 수필집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하루끼와 에코를 엄청 좋아할 당시에도 그들의 산문집과 여행기는 전혀 읽지 않았다.
소설은,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든 상관없이 독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의 생각은 이야기 안에 녹아 들어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추출해 내느냐 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글이 출판되어 독자의 손으로 넘어간 순간, 그 글은 작가와는 무관하게 스스로의 생명을 가지게 되고, 주도권은 독자에게 넘어온다. 같은 소설을 읽고도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 놓고,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인문학 서적은 하나의 이론으로 독자를 찾아온다. 글쓴이의 개인적인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을 그 책은, 그것에 대한 고민과 연구, 구체화 과정과 검증을 거친 후 이론으로 체계화되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그러면 독자는 줄기를 따라가면서 수긍하거나 어느 대목에서 반론을 제기할 수 있고, 토론이 이루어진다. 그 이론을 바탕으로 다른 것을 받아들이거나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반면 산문집은 글쓴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배설하는 차원의 글이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꼈으니까 그걸 받아들이든 말든 알아서 해라, 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수동적인 역할만이 독자에게 주어진다. 논쟁 같은 건 의미가 없다. 내 생각이라니까, 라는 한마디에 모든 소통이 차단되어 버린다. 그런 수동성이 나는 싫다.
<포스트잇>은, 지난 주 <삼국유사>를 힘겹게 읽고 난 후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아 골라 든 책이다. 어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여 절반 가량 읽었다. 때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생각 중에는 제법 유쾌한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대부분의 글이 내겐 심드렁하다. 요구르트 아줌마가 어쩌고 디카로 무얼 찍고 하는 것들에 전혀 관심이 가질 않는다.
차라리 서재인들이 쓰는 글이라면, 반갑게 읽었을 테다.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김영하라는 개인의 생각을 활자화 된 책이라는 매체로 보는 것은 재미없다. 그는, 내게서 너무 먼 사람이다. 그런 멀리 있는 사람에게까지 관심을 돌릴 여유가 내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