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9 매일 시읽기 42일 

서울의 달 
- 김건모 작곡 / 최준영 작사  
 
오늘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텅 빈 방안에 누워 이 생각 저런 생각에
​기나긴 한숨 담배연기 또 하루가 지나고
​하나 되는 게 없고 사랑도 떠나가 버리고
​술잔에 미친 저 하늘에 달과
​한 잔 주거니 받거니 이 밤이 가는구나
​​​오늘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가끔 비가 내리면 구름에 니 모습이 가려
​어두운 거리 더 쓸쓸해지네
​텅 빈 이 거리 오늘도 혼자서 걸어가네
​오늘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슬픈 추억 안고 사는구나
​텅 빈 가슴 안고....


김건모의 ‘서울의 달‘은 2005년 6월 발매된 10집 앨범 <Be Like...>의 타이틀곡이다. 김건모 본인이 작곡하고 김건모의 오랜 음악동료인 작곡가 최준영이 작사를 했다. 앨범 정보에는 이런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3,40대의 상실감을 소재로 한 ‘서울의 달.‘˝

달에게 마음이 있을 리 없다. 처량한 것은 달이 아니라 화자의 ˝텅 빈 가슴˝이다. 화자는 까만 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왠지 쓸쓸해 보이고, 왠지 허전해 보이는 달을 빌어 자신의 헛헛함을, 외로움을 토로하는 것이다. 오늘 우연찮게 내 핸폰에 저장된 이 노래를 듣게됐는데,
반복되는 ˝텅빈 가슴 안고˝라는 가사에 어제 만난 후배가 떠올랐다.

이럴 리 없는 나와 내가 그렇지 뭐, 사이. 

후배 모친상으로 장례식장에 갔다 거의 이십 년 만에 한 후배를 만났다. 대학 시절 곧잘 나를 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도 잘 치던 사이였다. 사회에 발을 디딘 후론, 대부분의 관계가 그러하듯 각자의 생활에 충실했고 만남은 끊어졌다. 대부분의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이제는 장례식장에서나 본다.

누구나처럼 그 후배도 꿈이 많았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교우 관계도 좋았기에 앞날이 밝아 보였다. 목표한 꿈을 좇아 산 지 20년이 흘렀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자신이 바랐던 만큼의 사람이 되어 있지 않았다(나도 그렇다). 술도 한 잔 걸치지 않았는데, 술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를 후배는 제삼자처럼 말했다.

˝누나,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면 깜짝깜짝 놀래. 이럴 리 없어. 내가 50이나 먹었단 말이야. 이럴 리 없어. 아무것도 못 이뤘는데. 어쩌라고~~~~~. 그러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밤이 되잖아. 그럼 이렇게 자조하게 돼. 니가 그렇지 뭐.˝

˝니가 그렇지 뭐˝라는 말에서 우리 둘은 소리 내어 웃었다. 맞아. 우리가 그렇지 뭐. 

김건모의 ‘서울의 달‘은 이럴 리 없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노래다. 나이가 든다는 건 가슴에 구멍 하나 가지고 사는 거라고 얼마 전 썼더랬는데, 벌써 중년이 돼버린(말도 안 돼) 후배 녀석도 가슴에 생긴 구멍으로 스산한 바람이 드나드니 삶도 스산한 모양이었다. 나도 그렇다. 구멍은 생겨버렸고, 바람을 불어대쌌고, 세월은 재깍재깍 가고, 피부는 축축축 처지고, 흰머리는 우후죽순 돋고. 그러나 뭘 어쩌겠는가. 허니 노래나 듣자. 덧붙여 기시 마사히코의 글이나 또 되새겨 보자.

˝되풀이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누구나 자기실현의 가능성이 있다든가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적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오히려 우리 인생은 몇 번이나 기술한 것처럼,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단지 시간만 흘러가는 듯한, 그런 인생이다. 우리 대다수는 배신당한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태반이 ‘이럴 리 없었던‘ 자신이다.˝(<<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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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매일 시읽기 41일 

그때는 미처 몰랐제 
- 박제영 

젊었응께 어렸응께 
정말로 그때는 미처 몰랐제 
서른둘에 이장이 되어서 내가 처음 한 게 
나무를 벤 기라 
마을 어귀 삼백 년 된 늙은 느티나무를 베어낸 기라 
길을 내야 했거든 
봐라 저 휑한 길을, 저 흉한 걸 내가 만든 기라 
어르신들 반대를 무릅쓰고 
공약을 지킨 거 그땐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었는데 
젊었응께 어렸응께 
저 신작로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날 줄 몰랐제 
이리 될 줄은 이리 텅 빌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네 

내가 사람을 벤 기라 
나무를 벤 기 아니라 사람들을 벤 기라 


박제영 시인의 <<식구>>를 한 번 더 펼친다. 발문을 쓴 정제영 시인은 박제영 시인의 시가 ˝혈연을 넘어선 공동체, 더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로 확장된다˝고 썼다. 그의 시가 내 식구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건 시집을 읽으면 저절로 느껴진다.

‘그때는 미처 몰랐제‘는 꾸밈없는 사투리 입담 덕에 발랄함이 풍기건만, 이장 경력을 가진 화자의 마지막 말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젊어서, 어려서, 뭘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이 어디 한둘일까. 때론 인생이 아쉬움과 후회로 점철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함께 좋자고, 더불어 잘살자고 한 일이 너나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 돼버렸을 땐, 그 일을 도모한 내 손을 베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내 경우엔, 나의 말이 혹 누군가를 베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져주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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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 번역을 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사는 날들
이상원 지음 / 황소자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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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관심 있는 입문자들에게 유용할 책. 나처럼 번역 괸련 서적을 몇권 읽어본 이들에겐 비추. 번역이 연애와 같다고 제목을 달았지만 저자도 시인하듯, 번역은 골 빠지는 노가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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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7  매일 시읽기 40일 

There‘s a Certain Slant of Light 
- Emily Dickinson 

There‘s a certain Slant of light, 
Winter Afternoon ㅡ
That Oppresses, like the Heft 
Of Cathedral Tunes ㅡ

Heavenly Hurt, it gives us ㅡ
We can find no scar, 
But internal difference, 
Where the Meaning, are ㅡ

None may teach it ㅡ Any ㅡ
‘Tis the Seal Despair ㅡ
An imperial affliction 
Sent us of the Air ㅡ

When it comes, the Landscape listens ㅡ
Shadows ㅡ hold their breath ㅡ 
When it goes, ‘tis like the Distance 
On the look of Death ㅡ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 에밀리 디킨슨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내려, 
겨울 오후에 ㅡ
성당의 장중한 음악처럼
무겁게 짓누르며 ㅡ

천부(天賦)의 상처를 주네, 그 빛은 ㅡ
우린 상흔을 찾을 수 없어, 
그러나 내면은 다르다네,
바로 거기에, 의미가 있어 ㅡ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ㅡ 아무도 ㅡ
그것은 봉인된 절망이라 ㅡ
하늘이 우리에게 보낸
장엄한 고뇌라 ㅡ

빛이 찾아들면, 풍경은 귀를 기울여 ㅡ
그림자들은 ㅡ 숨을 죽여 ㅡ
빛이 떠나가면, 죽음의 얼굴을 한 
거리처럼 아득하여라 ㅡ 

올해 이사온 집은 1층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고, 층간 소음 걱정 없고, 아이들이 마음껏 쿵쿵거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집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다. 아쉬운 것을 딱 하나 들자면, 햇빛이다.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집안에 들이치는 햇빛에 눈이 자꾸 간다. 베란다를 살짝 넘긴 지점까지만 햇살이 뻗는다. 아들방은 북향이라 빛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웬일, 며칠 전 아들방을 보니 빛이 어룽어룽거리고 있지 않은가. 관찰 결과, 맞은편 아파트 앞동 창문에 비친 해가 줄기를 길게 뻗어 아들방까지 이른 것이었다. 그 빛은 한 시간 가량 머물다 사라진다.

창문으로 비껴 들어오는 햇살을 볼 때면 항상 떠오르는 시가 에밀리 디킨슨의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이다. 대학원 시절 이 시를 원문으로 읽었을 때의 감흥을, 나는 잊지 못한다. 번역본 시를 올리려다, 아무리 읽어도 원문의 감흥을 느낄 수가 없어 내 느낌대로 번역해 보았다. 시는 소설보다 원문의 느낌을 살려 번역하기 까다로운데,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은 더욱 그렇다. 디킨슨은 조각가가 세심하게 돌을 깎듯 언어를 조탁한다. 시어들이 섬세하면서 강렬하다.

에밀리 디킨슨은 철저한 은둔생활을 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햇살 가득한 남향 방에서 책상에 앉아 날마다 시를 썼다. 그 방에는 두 개의 창문이 나 있다고 마리아 포포바는 증언한다. 포포바가 <<진리의 발견>>에 쓴 글을 읽고 나는 디킨슨의 ‘한 줄기 빛‘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비스듬한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칼이다. 마음의 상처는 ˝the Seal Despair(봉인된 절망)˝이고 ˝​imperial affliction (장엄한 고뇌)˝이다. 누구나 저마다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꺼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보았던 이들은 알 것이다. 아무리 꺼내 보이려 해도 끝끝내 꺼내지지 않는 ˝봉인된˝ 슬픔이 마음밭에 묻혀 있다는 것을. 이 시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포포바의 글을 옮긴다.

- 에밀리 디킨슨이 세상을 떠난 지 131년 후 나는 그녀의 침실에 서서 그녀가 품은 진실의 환영을 좇는다. 그녀의 시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 어둠과 그녀 방으로 쏟아지는 햇살의 샘물이 빚는 대조가 인상깊다. 두 개의 벽에 난 큰 창문들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또한 나는 그 방의 크기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디킨슨이 쓴 마호가니로 된 썰매 모양의 침대는 어린이가 쓸 법한 크기이고, 벚나무로 만든 책상은 가로세로 45센티미터로 거의 축소 모형처럼 보인다. 체화된 인지 embodied cognition에 관해 최근 발견된 사실이 떠오른다. 외부 환경의 물리적 변수가 우리 내면의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힌 어느 연구에서는 넓고 개방적인 공간과 높은 천장이 창의력을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 . . 의도적인 제약은 창의적인 돌파를 이끄는 강렬한 촉매제이다. . . 45센티미터의 정사각형. 1700편이 훨씬 넘는 시들.
/ 이 물리적으로 작디작은 공간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무한을 창조했다. 아름다움과 의미, 진실의 무한이다.(진리의 발견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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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르다‘ 그때껏 이 말은 차별의 괴롭힘 같은 폭력의 기반이 될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연들이 겹쳐 뜻하지 않게 할아버지와 엮이면서 새로운 소통법의 문이 열렸다. / "달라서 즐겁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와 동떨어졌다고 여겼던 서로 다른 두 세계와 어떻게든 만날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에는 볼품없을지라도 기묘한 감동이 감돌았다. 그처럼 달콤쌉쌀한 ‘서로 다름‘을 강렬하게 느낀 날을 나는 ‘서로 다른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 사회적 소수자로서 항상 느낄 수밖에 없는 차디찬 ‘다름‘에 대해 그저 비관하거나 분노할 게 아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할 바 없는 기쁨이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믿자. / "달라서 즐겁다." 무슨 일이든 일단 이렇게 단언해버리고 시작하자. 그러려고 한다. 나는.(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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