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8 #시라는별 17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국어 교사 서현숙 선생님이 쓴 <<소년을 읽다>>에서 이 시를 발견하고 정말로 반가웠다. 소년원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은 후기를 담은 <<소년을 읽다>>는 좋은 책이다. 모든 교사가 읽었으면 좋겠고, 좋은 어른을 꿈꾸는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는 책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집은 내가 이십 대 중반부터 서른 초반까지 즐겨 읽던 시집이었다. 이 시기는 내 생애 가장 많은 시를 읽었던 때이기도 하다. 사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읽은 시들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그 중 정현종 시인의 시들은 내가 가장 이해할 만한 철학이 담긴 시들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소장한 시집들 중 이분의 시집이 가장 많다.
‘방문객‘은 내가 모르는 시였다. 알아 보니 이 시인의 대표적인 시 ‘섬‘만큼이나 잘 알려진 시였더라. 이 시가 처음 실린 시집은 <<광휘의 속삭임>>(문학과 지성사, 2008)이다. 2015년 문학판에서 출간된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섬>>에도 실려 있다.
서현숙 선생님은 소년원 아이들에게 이 시를 읽어 주고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47쪽)
˝애들아, 이 시 어때?˝
˝좋아요!˝ 이 대답은 의례적인 때가 많다. 그래도 ˝나빠요.˝보다는 나으니까.
˝그래, 우리가 만난 것도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내가 도운이를 만난 순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의 도운이를 만난
거잖아. 그러니 한 사람이 얼마나 어머어마한 존재니, 그치?˝
˝예, 그런데 선생님, 환대가 뭐예요?˝
˝환대는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한다는 의미야. 환영의 대접을 한다는 거지. 이런 대접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
˝좋아요.˝
˝최근 환대받아본 경험 있니?˝
˝아니요. 참, 여기 국어시간에 오면 환대받아요. 선생님한테.˝
˝내 마음을 그렇게 여겨주니 고맙다. 너희들 하나하나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닌 어마어마한 존재니까, 환대해야지.˝
지겨운 코로나가 계속되는 가운데 아이들이 드디어 등교를 한다. 많은 교사가 저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환대‘한다면 우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하물며 아이들이야. 마음의 ˝갈피˝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기는 힘들지만, ‘환대‘는 아무때고 기꺼이 할 수 있다.
봄도 온다.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힌다. 사람도 봄도 환대하리!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