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적한 마을 옆으로 어느날 갑자기 고속도로가 하나 뚫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미친 x 들이 설계를 했는지, 외지로 나가는 마을 길을 없애고 그 위에 고속도로를 지어 버렸습니다.(토지 보상 문제로 로비가 많았다고도 합니다) 당시 마을에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경황이 없던 틈을 타서 도로공사를 강행해 버린거지요. 덕분에 그 마을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매일 같이 갓길을 걸어 다녀야 합니다. 시속 100km 가 넘는 차량들이 옆으로 휙휙 지나다니는 고속도로변을 매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걸어다녀야 하는거죠. 몇몇은 차에 치어 목숨을 잃기도 하고, 바람에 밀려 넘어지거나 돌맹이에 맞는 일도 수두룩 합니다. 빨리 가겠다고 갓길로 차를 달려 여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간 여러번 안전대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모른척 하거나 예산이 없다, 어쩔 수 없다라는 변명만 늘어놓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위험한 갓길을 걸어 밥벌이에 나섭니다.
그 고속도로 위로 버스가 한 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버스는 제일 크지는 않지만 승차감도 괜찮고 손님들에게 친절해서 꽤 인기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손님들끼리 서로 안면을 트고 친하게 지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 앉아 있던 사람 한 명이 버스가 튕긴 돌에 맞아 갓길을 걷던 마을 주민 A가 다친 것을 발견합니다. 이를 발견한 승객은 소리를 쳐 사람들에게 알렸고 버스 안에 있던 승객 D, E, F 가 함께 운전사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당신들 버스에서 튕긴 돌에 맞아 사람이 다쳤는데 어떻게 그냥 갈 수 있냐고 항의를 하기 시작한 거지요. 주민 A 의 고발에 따르면 이 버스가 조금 더 빨리 가겠다고 커브를 돌 때 갓길 쪽에 바짝 붙어 달렸다고도 합니다. 평소에도 종종 과속을 하거나 차선 변경시 깜빡이를 안 키던 적도 많이 봤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운전사는 자기는 차선을 넘어 갓길 쪽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맞섭니다. 이 때부터 승객들의 반응들이 많이 갈리기 시작합니다.
승객 A : 아 그러게 왜 갓길로 걸어 다니고 지x이야..
승객 B : 저 손님 오지랍도 넓네. 버스비 내고 버스 타고 다니면 그만이지 왜 버스회사 일에 관여를 해.
승객 C : (귀에 이어폰 끼고 DMB 에 몰두한다)
승객 D : 그래도 당장 다친 사람이 있는데 치료비 등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하는거 아냐?
승객 E : 당신네 같은 버스 때문에 사람이 매일 다치는거요. 치료비 배상하고 앞으로 당신네 회사가 주민 A의 출퇴근을 담당하시오.
승객 F : 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상 누군가는 또 다치기 마련이니, 안전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우회로로만 다니겠다고 약속하시오.
승객 F 의 발언이 나오자 다른 승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승객 G : 아니, 우회로로 다니면 다른 승객들은 다들 시간을 뺏기게 되는거 아니오. 그건 무리지..
승객 H : 그러면 사람들은 다른 회사 버스로 옮겨탈거고, 이 회사는 망하게 될거 아냐? 난 이 버스 좋아했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승객 I : 이 고속도로에서 저런 사고가 빈발한다는거 몰랐던 것도 아니고, 보아하니 경미한 부상 같은데 그렇게 물고 늘어질 필요 있어? 차선을 넘지 않았으면 직접적 책임은 없잖아.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하는게 더 중요한 문제지.
승객 J : 아.. 버스회사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내가 편하게 버스 타고 다녀서 쉽게 생각하는게 아닐까.
승객 K : 자자, 이번 기회에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승객 L : 우리는 왜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걸까...
소란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버스회사 사장이 발표를 합니다.
사장 : 불미스러운 일로 승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일은 하지 않았으므로 보상은 불가능합니다. 대신 앞으로 갓길쪽 차선을 이용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손님이 아주 많을 때는 갓길쪽 차선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장의 발표는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높아지던 와중에 승객들끼리 멱살을 잡고 폭언을 퍼붓는 일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유심히 지켜보던 몇몇 사람들은 이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며 읽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몇몇 승객들은 예전의 화목했던 버스 분위기는 이제 물건너간게 아닐까 걱정합니다. 주민 A 는 다시 갓길을 걸어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버스 창 안으로 보이는 난장판에 비해 버스 밖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차들은 여전히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고 있고, 한 쪽 옆에는 여전히 갓길 위를 사람들이 위태롭게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찬바람이 불자 외투 깃을 여미면서 오늘의 밥벌이를 위해 바삐 발을 움직입니다. 새해에는 좀 더 사는게 나아지기를 마음 속으로 빌면서 말입니다.
ps 1. 당신은 저 중 어느 사람의 의견에 가깝습니까?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 의견은 모두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ps 2. 모든 비유는 필연적으로 왜곡입니다. 그러니 비유가 틀렸네 어쩌네 하기보다는 위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ps 3. 어쨌든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