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불쾌한 진실
슐로모 산드 지음, 알이따르 옮김 / 훗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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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에서 나온 <유대인, 불쾌한 진실>을 읽었다. 저자인 슐로모 산드는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이디시(동유럽 유대인) 문화 속에서 자랐다. 지금은 텔아비브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유대 국가 이스라엘'을 맹렬히 비판하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유대 민족의 발명>, <이스라엘 국가의 발명>같은 책을 통해 현대 이스라엘의 형성과정을 비판하는 좌파 지식인이다. 이스라엘 내에서는 미움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대인, 불쾌한 진실>은 그가 2013년 쓴 'How I Stopped Being a Jew'를 번역한 것이다. 한국어판은 '알이따르'라는 공동번역집단에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슐로모 산드


산드의 이 책은 이스라엘 문제(혹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조금 알고서 읽는다면 더 재미있겠지만, 굳이 몰라도 큰 상관은 없다. 저자는 '유대인들'과 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유일무이한 재난'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는지, 그것이 이스라엘이라는 현대 국가의 점령통치와 자국내 아랍계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는지를 짚는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며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자기네 문화가 왜곡되고 심지어 남을 겨냥한 무기가 되어가는 걸 보며 느끼는 감정들을 털어놓은 에세이다. 


어조는 담담하고 서술은 느슨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번득이는 문제의식은 치열하고 감정은 격렬하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에서 그가 말을 거는 독자들은 유대인 혹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다. 


나는 20세기 후반을 거쳐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서구 문화의 심장부에 자리 잡은 유대인성의 정의 방식에 때로 뭔가 불편함을 느껴 왔다. 어떤 면에서는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자라는 인상이 점점 강해졌다. 시오니스트 제창자들은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유대주의를 동일시하면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고 외쳐대고 있다. (중략)

우리 자신을 기만하지 말자. 대학살로 막을 내렸던 끔찍한 유대 혐오의 위협은 오늘날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대인과 세속화된 그들의 후손에서 갑자기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다. 오늘날 그 어떤 정치인도 공개적으로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을 할 수 없다. 아마도 중부 유럽이나 새로 형성된 이슬람 민족주의의 범위 안에 있는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21쪽)


오늘날 남아 있는 극소수의 반유대주의와 강력한 주류였던 과거의 유대 혐오를 동일시하는 것은, 20세기 중반까지 서구의 기독교적 현대 문명에서 표출되었던 유대 혐오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신비로운 특성이 있는 ‘혈족’으로 유대인을 바라보는 인식은 여전히 팽배해 있다. (22쪽)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못된 짓을 할 때는 많다. 아이들을 향해 미사일을 쏘는 식의 '학살'도 포함해서. 세계에서 이스라엘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박사모가 태극기와 이스라엘 깃발을 함께 들고 설쳐대는 이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에서조차, 이스라엘이 유대교를 믿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기독교도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보이는 한국에서조차 가자(팔레스타인) 침공이 일어나면 반이스라엘 시이가 벌어지는 마당에.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악행에 맞서 보이콧 운동이 벌어진지 오래됐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이 꺼내드는 카드는 '반유대주의'다. 서구인들의 죄의식을 공략하는 이 프레임은 이젠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는 먹혀들어가는 카드이기도 하다. 



슐로모 산드의 책은 과거의 희생을 오늘날 자기네가 저지르는 죄악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반유대주의'를 만병통치약처럼 들먹이면서 스스로를 옹호하지 말라고.


오늘날의 ‘포스트 쇼아 고임post-Shoah goyim(홀로코스트 이후의 비유대인)’에게서 우리는 한데 섞인 공포와 죄의식, 그리고 무지를 발견하며, 때로는 ‘신유대인들’의 희생자 노릇, 자아도취, 허세, 게다가 터무니없기까지 한 무지를 마주하곤 한다. 종족, 즉 불변의 혈족-민족으로서의 유대인의 정체성과, 먼 땅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 또 거의 50년간의 점령 정권에 복속되어 권리를 박탈당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비유대인 시민들을 대하는 이스라엘의 정책들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현실이다. (23쪽)



책의 상당부분은 '유대인 되기-유대인 만들기'를 비판하는 데에 할애돼 있다. 그가 보기에 유대교는 배타적이다. 유대교 교리에는 배타적인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사실 유일신앙은 그 자체로 배타적이고, 같은 아브라함 종교들인 기독교나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독교는 근대 이후에 그런 배타성을 많이 덜어냈고, 이슬람은 근대 이전 제국시절에 오히려 관용적이다가 20세기 후반 이후 오히려 폐쇄성이 커졌다. 유대교가 남들 보기에 배타적으로 보이는 것도, '애당초 배타적인 교리여서'가 아니가 기독교-이슬람에 둘러싸여 자기네들 종교를 지키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측면이 많다고 산드는 지적한다. 문제는 유대교에 대한 배타적인 해석이, 지금 현재 팔레스타인을 몰아붙이고 억압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1세기 후반과 2세기 초반, 이교도에 대항하여 일어난 세 번의 항쟁이 패배한 후 유다 왕국은 랍비 유대교와 바울 기독교라는 두 개의 주요 흐름으로 쪼개졌다. 이후, 이들의 격차는 점점 커져만 갔다. 덜 강력한 랍비 유대교는 미쉬나와 탈무드를 세상에 가져왔다. 상대적으로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바울의 기독교는 신약을 낳았다. 기독교는 쉽게 숭리했고 패배한 경쟁자를 길고 고통스러운 역사적 상황에 놓이게 했다. 

구약 일부가 증명하듯이 유대교의 교리는 그 기원부터 배타적인 원칙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통념과는 달리 자기 폐쇄성이 교리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 종교의 분파적 기반이 재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기독교와 이후 이슬람이 보낸 위협 때문이었다. 유대교의 자급자족적인 자기 폐쇄성은 무엇보다도 존재에 대한 영구적인 위협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63쪽)


하가다로 알려진 이 모음집은 오랫동안 유대 문화생활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첫 판본이 만들어진 때는 9세기로 알려져 있지만 유대의 하느님을 믿지 않고 감히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모든 민족을 전멸시켜 달라는 노골적인 요구가 정확히 언제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약하고 박해받은 자들이 자신들의 모든 행동과 말을 합리화할 필요 없이 복수를 부르짖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파리나 런던, 뉴욕의 그 ‘세속적 유대’ 지식인들이 열정과 자기만족을 가지고 하가다를 읽으면서도 고임(비유대인)에 대한 그 분노의 구절을 지우지 않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곤란한 질문들은 더 많다. 이 불행한 문장이 중동의 하늘을 지배하는 이스라엘 조종사들이나 점령된 서안 지구의 무력한 아랍 마을들을 순찰하는 무장 군인들에 의해 읽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131쪽)


유대인의 발명, 이스라엘의 발명에 대한 부분은 대단히 새로운 것들은 아니어서 그냥 쓱쓱 넘겼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은 '이디시'와 '히브리'라는 유대인들의 두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동유럽 이디시 유대인들의 전통주의적이고 의식(儀式)적인 문화에 정교가 미친 영향은 처음 들은 것이라 눈길이 간다. 더불어,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19세기 이후 왜 유대계 중에 두드러진 사회주의자나 혁명가가 많았는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한줄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며 해석은 매우 여러가지이겠지만.


저자는 동유럽에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던 유대인들의 언어와 문화가 현대 이스라엘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지워지고 새로운 유대 정체성이 탄생하는 과정을 비판할뿐 아니라, 애잔한 감성을 가지고 바라본다.


1960년대까지, 시오니스트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유대교 역사가들은 인구 통계적 증가에 대한 한 가설을 받아들였다.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동부, 그리고 코카서스의 스텝 지역에 있었던 중세 유대 카자르 왕국의 존재가 아마도 현대 유대 역사에서 가장 큰 인구 통계적 증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다른 유대 공동체들과 달리, 동부 유럽의 유대 인구는 비유대인 이웃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문화를 보존해 왔다. 프랑스, 이탈리아, 서부 독일,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 그리고 비옥한 초숭달 지대를 아우르는 북부 지방에서 유대인들은 개종한 토착민들이건 이주자들이건 상관없이 주변 이웃들과 일상생활 방식을 공유했다. 동유럽의 유대인들은 수 세기 동안 분리된 구역이나 별개의 지역에서 다수 집단 혹은 최소한 큰 소수 집단을 형성하며 무리지어 있었다. (75쪽)


유연하고 비교적 상징적인 종교 관행을 받아들인 서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소규모 유대 공동체와는 달리, 동유럽의 이디시어 사용자들은 자신들을 비유대인 이웃들이나 환경과 확실히 구분시키는 엄격한 예배 방식을 고수했다. 많은 면에서 이러한 형태의 종교 근본주의는 가장 엄격한 기독교 정교회의 풍조와 닮아 있다. 

하지만 현대화와 세속화가 시작되면서, 이 완고한 명령의 세계는 유대 가족들의 세속화된 상당수 후손에게 명백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지나치게 폐쇄적인 종교 전통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대인의 많은 아들딸이 무신론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차르의 손아귀에서 범슬라브 민족주의는 무엇보다도 억압을 조작하는 도구로 쓰였다. 그래서 범슬라브주의 내부와 그에 대항하는 쪽 모두에서 여러 언어와 종교로 말미암은 지역적이며 분열된 민족 요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종족 중심적인 민족주의 경향을 지닌 현대의 불관용을 극대화한 것은 이디시 인구의 존재였다. 

1880년대 차르에 의한 포그롬의 시작,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 제국 내 유대인 정착지의 견딜 수 없는 생활 조건은 유대 공동체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이주민들이 비엔나, 베를린, 런던, 뉴욕,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1880년대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최소한 3백만 명이 터전을 잃고 길 위로 내몰렸다.

19세기 말 근대화 과정이 시작되면서 이디시인들은 형태를 갖추며 통합되어 가고 있었다. 포그롬과 추방은 이들이 대면했던 첫 번째 타격이었다. 두 번째 타격은 볼셰비키 혁명에서 나타났으며, 그 혁명은 유대라는 특정 문화의 다양한 표현들을 행정적인 수단을 통해 억압하려 했다. 세 번째이며 윤리적인 타격은 나치가 일으켰으며, 이들은 유럽에 남은 유대인 중 다수를 물리적으로 절멸시켰다. 그리고 시오니스트가 이디시 언어와 문화적 관습을 쓸어버리면서 네 번째 타격이 가해졌다. (75-79쪽) 


풍부했던 이디시 문화는 이제 사라졌다. 이 동유럽 유대인의 언어를 수업으로 듣는 학생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이 언어로 소통하거나 창작을 하지는 않는다. 

또 사라진 것은 현재 폴란드 지역인 러시아 제국에 있었던, 거대한 유대 사회 민주주의당인 분트의 섬세한 꿈이다. 시오니즘과 달라 분트는 생생한 민중 문화에 기반을 두었고 그래서 유사 민족적 계급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종교의 탈을 쓸 필요가 없었다.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될 무렵 이디시어의 여러 방언으로 말했던 사람들의 숫자는 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21세기 초에 이들은 겨우 수십만 명으로 줄었고, 주로 엄격한 정통파인 ‘신을 두려워하는 자들 God fearers’ 즉 하레딤 사이에 남아 있다. 이디시 민중 문화는 지워지고 완전히 사라져서 소생할 희망이 없었다.

이디시 식민주의자들은 멸시받는 자신들의 모어를 재빨리 버렸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첫 번째는 전 세계의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언어였다. 그래서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러시아 제국의 유대인 정착지의 비참한 마을들뿐 아니라 자신들의 부모와 조상이 가졌던 민중 문화와도 결별한 신유대인들을 만들기로 했다. 

새로운 언어의 주요 어휘는 성서에서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 형식은 아람어와 아시리아어였으며(즉, 히브리적이라기보다는 미쉬나에서 가져온) 구문은 대부분 이디시어와 슬라브적인 언어로, 결코 성서의 언어와 비슷하지 않았다. 이 언어는 오늘날 ‘히브리어’로 잘못 불리고 있으나 진보적인 언어학자들의 주장을 따라 ‘이스라엘어’로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적합할 것이다. (86-88쪽)


이스라엘 국가가 만들어진 기반을 마련한 것은 여러 동유럽 국가들에서 온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 개인들은 유대교에 맞선 세속주의자들이었지만, 시오니즘은 팔레스타인의 식민화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이 땅에 대한 합법적인 소유권을 제시하는 성서에 호소했다. 그 후 시오니즘은 다양한 유대 공동체들의 과거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혼합 집단들의 밀도 있고 다양한 프레스코가 아닌 고향 땅에서 쫓겨나 떠돌아다니면서 2천 년 동안 그 땅에 돌아올 염원을 했다고 하는 어떤 한 인종의 직선적인 역사로서 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오니스트 사업은 그런 모순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이 바빌론에서의 추방의 과거와 함께 완전히 무너져 버렸던 문화를 창조해내고자 했다. 한 예를 들자면, 문화적 엘리트들과 좋은 가문 출신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배 시기의’ 이름을 히브리어 이름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크게 퍼져 갔다. 신세대 부모들은 열광적으로 성서를 넘기면서 소위 촌스러운 모세, 야코브, 다비드, 슐로모와 같은 이름들과는 다른, 드물고 강인한 이름을 찾고자 애썼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고리타분한 탈무드 랍비의 이름들도 제외되었다. 

유대 전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가나안식 이름들이나 유대인들이 입 밖에 내 본 적도 없던 이름들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다비드 그린은 다비드 벤 구리온에게 그 자리를 물려 주었고, 시몬 페르스키는 시몬 페레스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츠하크 라빈은 원래 루비트조프였고 에후드 바락은 브록이었으며, 아리엘 샤이너만은 샤론이 되었다. 그리고 베냐민 네타냐후의 아버지는 원래 밀레코프스키였고, 샤울 모파즈는 젊은 시절 샤람 모파자카르였다. (100-101쪽)


원래 색깔을 버린 동유럽계 유대인들의 '현대 이스라엘-유대인 만들기'는 내부의 위계와도 관련 있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이 세계 여기저기서 유대인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해 멋대로 지은 정착촌의 유대인들은 대개 건국 이후 한참 지나 입국한 가난한 유대인들이며, 중동에 뿌리 내리고 수천 년 살아온 미즈라히들은 2등 국민 취급을 받으며,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온 '흑인 유대인'들은 이주노동자 처지로 살아간다.


이런 히브리적 정체성은 그 국가가 창조되기도 전에 만들어졌으며, 이스라엘 안의 노동 계급을 형성했던 이주자 대중과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차별화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히브리성 Hevrewity’은 주로 문화적, 정치적, 군사적 엘리트들의 관행 상의 성격이었다. 

그들은 이 작업을 위한 두 가지 고삐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하나는 교육 제도였고 다른 하나는 군사 기관이었다(그리고 정도는 덜하지만 언론도 있었다). 모든 학교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스라엘인으로서 말할 것과 히브리어로 읽을 것을 가르쳤고, 영웅적이고 세속적인 이야기로 성서를 가르쳤다. 역사에서 중요했던 것은 고대에는 상상 속의 히브리 주권 국가였고, 현대에는 현실의 이스라엘 주권 국가였다. 의무 교육과 함께 군 복무는 강렬한 용광로였으며, 새로운 정체성과 문화를 창조하는 역할을 했다. 엘리트와 이주자 대중들은 이 위계적인 기관들을 통해서 가장 강력하게 접촉했다. (102-103쪽)


유대인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홀로코스트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이것이 이스라엘 건국 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유대인 희생자들을 원치 않았고 박대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아이히만의 재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는 1970년까지도 대학살을 학교 교과 과정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전 세계 유대 기관들이 그 주제를 극도로 꺼렸으며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이 시기에는 생존자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고통에 대한 증언을 듣거나 영상으로 남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해 수치스러워했던 것이다. (119쪽)


1960년대 이래 서서히 절대적인 공포에 대한 인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냉전은 새로운 분위기를 요구했고, 독일은 막대한 양의 돈을 이스라엘에게 지불하며 생존자들에게 보상한 후 서구의 정치 문화와 NATO의 군사 기관에 무난하게 통합됐다. 이스라엘 역시 같은 기간에 대서양 동맹, 그리고 중동에서 미국의 완전하고 충실한 파트너가 되었다. 

1967년 전쟁 또한 이런 전환점이 만들어지는 데 공헌했다. 소위 이스라엘 방위군의 번개 같은 승리 덕분에, 이스라엘 엘리트를 괴롭혀 오던 ‘수치심’이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강자가 되었던 것이다. 어제는 약하다는 이유로 숨겨졌던 유대인 희생자들이 이제는 유대 순교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역사적 학살에서 가장 돋보이는 자리를, 역사 속에서 다른 범죄의 희생자들과 결코 같은 위치에 놓일 수 없게 된 유대인 희생자들에게 넘겨 주었다. 

그들은 희생자들의 기억이 서구의 기억 속에 새겨져야 한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으며, 고통에 대한 특별하고도 독점적이며 전적인 민족적 소유권을 요구했다. 단지 경제적 자본뿐 아니라 명성에 관한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과거를 극대화하는 홀로코스트 산업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 시작되는 때가 바로 이 시점이다. 그래서 다른 모든 희생자는 사라지게 되었고 그 대학살은 오직 유대인만의 문제가 되었다. 이제는 다른 민족의 학살과 비교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모든 과거와 현재의 범죄들은 2차 세계 대전 중의 유대인 대학살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어야 했다. (120-121쪽)


시오니스트의 수사법은 점점 더 처형자가 아닌 희생자의, 나치가 아닌 유대인의 영원한 특수성을 고집해 오고 있다. 다시 말해, 히틀러와 같은 학살자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유대인과 같은 희생자들은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었다. 가말 압델 나세르는 ‘신히틀러’라고 불린 첫 번째 사람이었고,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그 뒤를 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에게 이 역할이 돌아갔다. 

이스라엘에서는 1970년대 쇼아 ‘2세대’라는 공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3세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렇게 다른 자본과 마찬가지로 과거 고통에 대한 상징적인 자본도 증여될 수 있는 것이다. ‘선택된 민족’의 옛 종교적 정체성은 점차 ‘선택된 희생자’일 뿐 아니라 ‘독점적인 희생자’라는 현대의, 그리고 매우 효과적인 세속적 문화에 자리를 내주었다. (123쪽) 


가장 역설적인 것은, 그래서 이 '유일무이한 희생'을 강조하고 자기네 상징이자 상표로 동원하느라 이스라엘이 세상의 모든 차별과 학살을 폄하한다는 것. 자기네가 팔레스타인 아랍계에 가하는 차별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우기고, 세상 어떤 다른 재앙에도 '홀로코스트'같은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인종차별 철폐회의가 열렸을 때 아랍국들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문제삼으려 하자 '인종문제 아니다'라고 발광하던(미국이 이스라엘 편들어줌) 기억이 난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입조차 떼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버지에게 어떻게 그 사람을 알아보았는지 물었다. “눈 때문이지."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 눈은 파란색이었는데요?" “모양이냐 색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표정을 말하는 거다." “무슨 표정이요?" “무상하면서도 슬픈 표정, 두려움과 깊은 불안의 표식이지." 아버지의 설명이었다. “그런 식으로 폴란드에서 독일 군인들이 유대인을 찾아내기도 했단다. 하지만 걱정 말거라,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더는 그렇지 않단다." (59쪽)


내 주변의 유대 이스라엘인들은 마치 그녀가 완전히 투명인간인 것처럽 그녀를 못 본 척했다. 이것은 탑승 시의 일반적인 광경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항상 다른 승객들과 분리되어 특별 심문과 검색을 받는다. 그녀의 표정은 아버지가 유대인의 눈에서 보는 그 표정의 내용과 정확히 들어맞지 않았지만, 거기에도 역시 슬픔이, 공격을 당한 경험이, 그리고 깊은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나를 향해 미소지었고, 그 표정은 곧 체념으로 바뀌었다. (150쪽) 


책 앞머리에서 슐로모 산드는 자기 아버지와 유럽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한다. 외양으로는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사람을 '유대인'으로 콕 집은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놀라움.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들의 설움과 슬픔이 표정에 묻어난다는 건 누가 뭐래도 마음 아프다. 현대 이스라엘의 악행과 상관없이 홀로코스트는 인류의 원죄 격이다. 저자도 그걸 부인하지 않는다. 



뒷부분에서 산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저자는 팔레스타인인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스라엘 국민의 20% 이상이 아랍계 이스라엘 국적자다)에게서 그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두려움과 슬픔의 표정을 본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국가에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스라엘에서 유대인이라는 건 무엇보다도 유대인이 아닌, 특히 아랍인인 사랍들에게는 거부된 특권을 누리는 혜택받은 시민들이라는 뜻이다. (163쪽)


종교적인 신앙인이 아닌 단지 휴머니스트이고 민주주의자고 자유주의자인, 최소한의 정직함을 가진 개인들이 자신을 계속해서 유대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자신을 이스라엘 국가 내의 유대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자기 주변에 참을 수 없는 불의를 만들어 내는 특권을 가진 카스트에 귀속되는 바로 그런 행동인 것은 아닐까? (165쪽)


그의 자각은 이제 '유대인이기를 거부한다'는 선언으로 나아간다. 그 나라 국민임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에 귀화하지 않는 이상, 이스라엘에서 그는 신분증명서에 '유대인'이라고 찍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그는 선언한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에 대해 집착했던 것이 박해자와 그 지지자들이 만들어 낸 허구적 종족에 동화되었던 결과라는 사실을, 그리고 세상에는 내가 선민과 그 신봉자들로 구성된 배타적인 당파의 한 일원으로 보였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유대인이기를 그만두고 나 자신을 더는 유대인으로 간주하지 않으려고 한다. (184쪽)


공화주의적인 정치적 가능성을 구체화하고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부족적 신비주의를 버리고, 타자를 존중하고 동등하게 반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의 정체성 정책을 바꾸려는 생각 이전에, 우리는 저주받은 점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해야 한다. 점령은 끝도 없이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다. 마치 너무 큰 제물을 삼킨 신화 속의 뱀이 그걸 뱉기보다는 숨이 막혀 죽는 쪽을 택하는 것과 같다.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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