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특별할인가)
마르코 카타네오.자스미나 트리포니 지음, 김충선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내 어릴적 꿈이 '바미얀 석불 보는 것이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어케 어릴적에 바미얀 석불 같은 걸 알았니(괄호열고 이 잘난척쟁이야) 이런 어감의 웃음 말이다. 근데, 사실이다. 난 어릴 적에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고 바미얀 같은 곳에 가고 싶었다. 지금도 나는 유럽이나 미국이나 그런 곳에는 관심이 없다. 어른이 된 뒤에 돌이켜보니 가장 쉬운 구분으로 따지면 내가 좋아했던 곳은 대략 오늘날의 이슬람권에 해당되는 곳들이었다. 바미얀, 실크로드, 아름다운 모스크들, 사막, 피라미드, 그런 것들.

나의 취향을 이런 쪽에 고정시킨 것은 사실 내가 아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 유전자 속의 어떤 취향이란 것이 미리 결정되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아이가 어느어느 지역을 골라 좋아할리는 없다. 내 취향을 만들어준 것은 결국 어릴적 보았던 그 책들이었다.

집에는 '모던 실크로드 따라 2만리'라는 책이 있었다. 그것이 내 어린시절을 '지배'했던 책이다.


오래전 그 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어제 산 책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일전에 교보문고에서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내놓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리즈를 봤었는데, 액면가 9만5000원짜리를 3만5000원에 팔고 있었다. 사실 백과사전처럼 큰 판형에 컬러도판이 수두룩한 하드커버 책꽂이장식왓따용 책을 3만5000원에 산다면 거저먹는거나 마찬가지다;; 라고 생각하지만 지난번에는 들고다닐래야 들고다닐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어제는 마침 드라이버가 대기중이었기에-- 별로 큰 고민 없이 질렀다. 어제 산 것은 '세계문화유산'. 이탈리아 팀이 쓴 것인데, 750개 가까이 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자연유산 문화유산 외에 별도로 '고대문명'으로 구분해 3개로 나눴다. 

그나마도 어제는 자연유산편이 다 나갔다고 해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문화유산편만 사들고 왔다. 기대 만빵. 지겨운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아이 옷을 책에 입혀 꼭 끌어안고(가방에 안 들어감) 한 손으로 우산 받쳐들고 아이한테는 엄마 잘 잡으라 하고 차를 타러 나왔다.


그렇게 기대를 하면서 집에 왔는데...


평소 덜렁이인 나는 책 읽을 때에는 쫀쫀깐깐하기 때문에, 고유명사 표기 틀리게 번역해놓은 것 보면 뇌세포들이 머리 속에서 지랄을 떤다. 터키에서는 모스크를 '자미/차미(cami  : c에 꼬다리 달려 있음)'라고 쓰는데 버젓이 카미라고 해놨고, 멕시코 오아하카는 오악사카라고 해놨다. Oaxaca는 내가 옛날에 어느 글 쓰면서 확인해봐서 잘 아는데, 의외로 책이나 신문에 꽤 많이 나오는 지명이고 종종 틀리는 지명이기도 하다.

내용은 잘 안 읽어봤지만 제목에서 오아하카 틀리는 바람에 이미지 잡쳤음. 왜냐? 이건 무려 3만5000원짜리, 장서용! 책이거든. 한번 보고 내던지는 책이 아니란 말이다. 난 어린시절 나의 환상, 나의 꿈까지 되새겨가면서 다섯살 딸아이와 두고두고 같이 넘겨보기 위해 이 책을 샀다.

더군다나-- 유럽 얘기가 절반이다. 그러면서 어케 설명하냐면 "유럽이 문화유산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필연이다" 이러는 거다. 필연은 필연이지. 유네스코를 유럽이 주도하고 있으니 필연이고, 유럽인들이 문화유산 보호에 먼저 눈 떴으니 필연이다. 하지만 '유럽이 문화적으로 뛰어나서 필연이다'라고 하면 뻥이고 환상이고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다. 이탈리아(요즘 마테라치 땜에 이탈리아에 매우 감정 안 좋음;;) 넘들은 후자의 논리를 택하고 있다. 뻔뻔한 녀석들... 책 내용이 꼼꼼하지 않은 것은, 개괄적인 안내서이니 당연하다 쳐도 말이지... 유럽의 왼갖 유적지는 대략 훑으면서 아프리카에서는 유럽인들 구미에 맞는 모로코 페스 이딴것과 말리 말고는 거의 없음.

이집트가 '고대문명' 쪽으로 가면서 빠진 탓도 있지만, 북아프리카는 보통 '아프리카'로 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아프리카는 통상 사하라이남 블랙아프리카를 말한다) 말리 외에는 거의 나와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유적지는 도시별로 소개해놨다. 그러면서 유럽은 필연 어쩌구? 어쩌면 대부분의 한국 독자들에게,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럽은 팍팍 줄이고 아프리카 중동 이런 지역들 잔뜩 넣어놓으면 외려 인기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나에겐 너무나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좀 실망했다. 하지만 어쨌든 자연유산 고대문명 시리즈도 사놓을 생각이긴 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고대문명 시리즈도 있는데 고대 인도, 고대 중국... 거기에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은 왜 들어가니? 너무나도 판에박힌 편집들이라서(출판사 잘못이라면 '판에박힌 책을 옮겨온 것' 뿐이겠지만) 싼 맛-9만5000원짜리 2만얼마로 할인-에 사려다가 말았다.


어제 본 책에서 가장 이뻤던 곳- 에스토니아의 탈린.

그런데 유럽, 특히 동유럽은 솔직히 사진들 모두 '다 똑같이 이쁜 것들'이라서 매력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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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7-25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내 기억 속 어린시절 그 책들보다도 오히려 못한 것 같더라고.
그나마 오늘 꼼꼼이가 한 장 찢어버렸음 -_-
그것도 하필이면 예멘의 사나 부분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