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의 데드 히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올해 읽은 첫 책...치고는 썰렁하기도 하다.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하루키식의 희한한 제목에, 뭐 믿고 이렇게 얇은 책에 8000원이나 붙였나 싶은, 하드커버의 이쁜 소설집. 출판사가 ‘믿은’ 것은 더도 덜도 아니고 무.라.카.미.하.루.키.라는 이름 일곱글자였겠지. 재미없었냐고? 이 책, 별로 재밌는 책도 아니고 제대로 된 소설도 아닌데, 그런데도 이 작은 소설집을 순식간에 넘기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역시 하루키야, 재미없다고 해도 하루키는 하루키, 어쨌든 빨리빨리 읽히는 것을 보면.

내가 하루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별로 극적이지도 않고 치밀하지도 않은 단편 몇개를 읽으면서 오히려 더 절절히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재작년에 하루키 단편집 두 권 읽고서 ‘재미없잖아 이게 무슨 단편선이야 연습용 메모들이지’ 했었는데,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는 진짜로 ‘연습용 메모’들이다. 그런데도 읽고 나니 썰렁하고 착잡한 기분이 드는 건 그야말로 하루키이기 때문. 하루키 소설의 일관된 테마인 ‘분리 불안’, 역시 그걸 또 건드리고 있잖아. ‘연습용이랍니다,’ 하면서 뻔뻔하게 속을 긁는 소설가.


재미라는 것은 수도꼭지를 틀어서 컵에다 물을 받아 “자, 여기 있어요” 하고 권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어떤 때 그것은 기우제의 춤까지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 대부분은, 흘러갈 데를 찾지 못한 채 내 속에 쌓여 있다. 그것은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밤에 내린 눈처럼 조용히 쌓여만 가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공통되는 고충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맞춰 넣을 수 있는 인생이라는 운행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은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회전목마를 닮았다. 그저 정해진 장소를 정해진 속도로 순회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무데도 갈 수 없고, 내릴 수도 갈아탈 수도 없다. 누구를 따라잡을 수 없고, 누구를 추월할 수도 없다.


하루키 스스로 ‘스케치’라고 이름붙인, 픽션도 넌픽션도 아니라는 단편들보다는 저자 서문에 해당되는 글이 더 재미있었다. 하루키가 말하는 하루키 문학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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