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 서발턴 개념의 역사에 관한 성찰들 프리즘 총서 11
로절린드 C. 모리스 엮음, 태혜숙 옮김 / 그린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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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박의 글은 두어번 본적 있지만 늘 어렵다. 스피박 뿐 아니라 라나지트 구하도 마찬가지다. 말이 비비 꼬여 있다. 하지만 끈질기고 엄밀하고 재미있다. 유럽철학 공부하는 사람들이 비비배배 꼬인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얻는 지적 쾌감과 반짝이는 통찰력에 대한 감탄 등등을 나는 인도 서발턴학자들의 글에서 얻는 것같기도 하다. 



이 책은 스피박의 유명한 에세이(바로 이 책의 제목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 나온지 25년이 지나서, 그 에세이 이후의 서발턴 논의를 보여줄만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애초의 에세이에 대한 차테르지 등의 평가도 들어있고, 스피박 스스로의 후일담같은 글도 묶여있다. 


무엇보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랄같은 문장의 군더더기들은 지워가며 읽으면 된다) 애초의 에세이를 두 번에 걸쳐 훑게 된다. 책 앞머리에는 스피박 스스로 수정하고 덧붙인 버전이, 맨 뒤에는 1983년의 에세이 ‘원본’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 유명하고도 어려운 에세이를 읽은 내가 대견스럽기는 하지만 사실 재미있었던 것은 앞뒤의 스피박 에세이 사이에 끼어있는 글들이었다. 예를 들면 라제스와리 순데르 라잔이라는 사람은 서발턴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서발턴 즉 하위주체란 죽음으로 말할 때조차 제대로 읽히거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므로), 압둘 잔모하메드라는 이는 프레더릭 더글라스의 글을 인용하며 ‘노예제’를 서발턴 담론 안으로 끌어들인다(그러고 보면 <노예 12년>의 노섭은 참으로 특별한 존재다).


미셸 바렛의 ‘식민지 군대’에 관한 글은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인 동시에, 식민통치를 겪었고 징병을 당했던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하지만 감춰진) 문제다. 리고베르타 멘추와 에스테르(사파티스타 여성 전사)를 다룬 진 프랑코의 글 역시 흥미진진. 그러고 보면 서발턴이란 난해한 말로 표현되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참으로 얼마나 많은지. 


정리해둬야할 내용들이지만 정리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일단 책장은 덮고, 스피박이 하고 있다는 교육활동에 대해서나 좀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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