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윤리 -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 프런티어21 18
알랭 바디우 지음, 이은정 옮김 / 길(도서출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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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 이름만 알고 누군지는 잘 모르다가 지난달 <투쟁을 위한 철학>이 은근 재미있어서 내친 김에 손을 댔다. 바디우가 '우리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철학자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책의 원제는 쁘띠 판테온 어쩌구 하는 건데, 국내판 제목은 거기 비하면 몹시 거창하다. 오히려 부제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한 헌사'가 딱 맞는다.


무슨 책인지 잘 살펴보지도 않은 채 저자와 책 제목만 보고 가방에 넣은 뒤 지하철에서 펼쳤는데, 이 책이 '지하철에서 읽기에 적당한 책'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크 라캉, 사르틀, 알튀세르, 들뢰즈, 데리다... 흐흐흐. 어차피 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도 모르는 판에 이들에 대해 품평한 책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서 살짝 망설이긴 했다. 


네임드로핑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프랑스 철학자들 이름을 입에 달고다녀서 싸잡아 싫어했는데, 책은 뜻밖에도 재미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부분을 드문드문 옮겨본다. 순서는 내 맘대로 바꿨다.


"새로운 세대가 성취한 것, 그것은 자본의 회의주의, 즉 그것의 니힐리즘이다. 여기에는 사물들이 없다, 여기에는 인간이 없다. 여기에는 국경이 없다. 여기에는 앎이 없다, 여기에는 믿음이 없다. 여기에는 살아야 할/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

리오타르가 가혹하게 맞닥뜨려야 했던 것, 관통해야 했던 것, 사유해야 했던 것은 이 살기/죽기의 부재다. 그리고 그것에 매진하면서도 사랑만은 에외로 남겨둔다. "그 시절 동안 사랑하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단 한순간도,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으로 향해갈 때면, 내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언제나 밤이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이 밤은 이제부터 우리의 거점이다. 그가 오롯이 15년 동안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것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이름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밤의, 어떤 특정한 밤의 정언명령. 예를 들면 알제리에 대한 1989년 텍스트의 서문에 등장하는 이 갑작스러운 진술들. 그리고 밤의 명령에 좀더 가까운, "자본주의의 지배를 대체할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원칙은 단녕되어야 한다." 정언명령의 기표 '되어야 한다'는 표현이 텍스트에서 강조되고 있다.


리오타르의 사유는 이 '해야 한다'에 대한 길고도 고통스럽고 복잡한 사색이며, 그가 사망한 후에는 우리에게 그 일이 맡겨졌다. 퇴락하지 않으면서 밤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 없이, 다시 말해 객관적인 역사적 주체 없이 그리고 어쩌면 그가 쓴 것처럼 "할당할 수 있는 목적들 없이"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이제 고집스럽게 충성해야 할 장소는 어디인가? 밤 속에서 우리의 일탈이 위치한 곳은 어디인가?


"사회 안에는 측량할 수 없는 다양한 장르의 담론들이 작동 중이며 어떤 한 가지도 나머지 모든 것들을 옮겨 적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들 가운데 하나, 자본 또는 관료주의는 자신의 규칙들을 다른 것들에 부과한다. 유일하게 전면적인 이러한 억압은 희생자들이 이에 대항해 증언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이러한 담론의 철학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이것을 파괴해야만 한다."



바디우는 선배이고 동료이고 때론 논쟁의 적이었던 철학자들의 저서와 생각에 스스로의 평을 붙여 요약하고, 그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헌사를 바친다. 이런 철학자들이 백가쟁명한 '철학의 시대'가 존재했다는 것, 그 자체로 얼마나 대단한가. 

책에는 사르트르와 미셸 푸코가 나란히 1971년 구트도르(파리 18구의 무슬림 이주민 거주지역)에서 벌어진 이주민 차별 시위에 나섰을 때의 사진이 실려 있다. 위 사진에서 전단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사르트르, 그 왼쪽이 푸코라고. 사르트르가 거리에 나서서 전단지를 돌리던 시대.


바디우는 '우리 프랑스의 철학자들'을 자랑스러워할만 하다. 이 헌사들은 지나간 '철학의 시대'에 대한 바디우의 추억담이면서, 그런 시대를 흘려보내고 반성 없는 막가파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건네는 편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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