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DTS-ES)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 대원DVD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에서 2400만명이 봤다는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초대형 히트작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 후배를 따라 굳이 시사회까지 가서 봤다. 사람들이 몰려서 시사회장이 북적북적했다. 미야자키라는 이름, '관객동원**만명'이라는 카피의 설득력 같은 유인요인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관객들 반응도 아주 좋았던 것 같다. 몇해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국내상영을 앞두고 열린 시사회에서의 그 썰렁한 반응에 비하면 이 시사회에서는 영화보는 사람들 모두, 웃기거나 귀여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웃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특유의 가볍고 달콤하고 코믹한 부분들이 여러번 나왔는데 나는 사실 별로 웃지 못했다. '헤이세이 폼포코 너구리대전쟁'을 볼 때에는 달걀귀신이 나와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는데.

영화는 멋있었다. '모노노케 히메' '추억은 방울방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헤이세이 폼포코-'를 보면서 매번 '이 이상의 애니메이션은 나올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은 매번 그 벽을 뛰어넘는다.
미야자키 특유의 이쁘장한 얼굴 대신 주인공 센이치는 납작코에 흐트러진 머리의 보통 여자아이로 '안착'했다.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줄기찬 테마는 직접적인 설득 대신 은유와 상징으로 돌려졌고, 일본 전통문화의 여러 아이콘들도 너무 생생하고 재미있게 묘사돼 있다. '일본 어린이들을 위한 전통문화 교육 프로그램'이라 해도 될 정도다. 가지가지 신령님들이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탕에 온다는 발상도 아주 재미있었다.

그림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자면, 난 사실 흡족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로 뛰어난 작품에서 옥의 티를 찾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CG를 많이 쓴 것 같은데, CG 장면들이 자꾸 눈에 걸렸다. 내가 3D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가, CG를 쓰면서도 티 안 나게 조심했던 지브리의 제작진이 이번에는 기술을 과신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결치는 수면, 히끄무레하게 비치는 요괴의 몸통, 전통건물을 확대해놓은 목욕탕 빌딩의 놀라운 공간감은 아주 훌륭했는데 주인공이 꽃길을 헤쳐가는 장면 따위에서는 기술을 자랑하려 사족을 넣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꽃은 참 예뻤는데 카메라(시선)가 아이 걸음보다 너무 빨리 움직인 것 같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겠는 또다른 주인공 하쿠의 얼굴선이 날카로와진 것도 눈에 띄었다. 미야자키 애니에 웬 꽃미남?

그래서 흔쾌히 웃을 수 없었던 걸까. 3D가 자꾸 걸리는 데에다, 미야자키라는 감독에 대한 기대감(원래 무언가에 크게 기대할 때에는 겁이 많이 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법이다) 때문에 오히려 맘 편히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편집증 같은 성향이 있어서, 한번 맘에 드는 것은 계속 되풀이한다. 지브리 작품들은 원래 인기가 많지만 내 경우는 비디오 테입으로 복사해놓고 예닐곱번씩은 보았다. 그러다보니 너무 작은 것들까지 다 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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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 2006-06-1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94,5년 무렵, 대학에 다시 복학했던 4학년 때였는데, 뒤늦게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들을 섭렵하며 하야오의 세계에 빠져들던 기억이 나네요.(당시 한 10편 가까이 비디오 테입을 갖고 있었는데, 전에 이사할 때 잊어버렸답니다)
라퓨타, 나우시카, 토토로, 추억은 방울방울, 바다 소리가 들린다, 헤이세이 너구리... 개인적으로는 홍돈이 가장 좋았었는데, 모노노케 히메 이후로는 슬그머니 잊혀지고 말았네요.
지금도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는 실사 영화에 비견할 정도의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구요.
어쨌든 딸기 님의 글을 읽으니 지브리의 영화들이 주욱 떠오르네요. 아기 아빠가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몇 편은 DVD로 다시 볼까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