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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 - 물고기에서 인간까지, 35억 년 진화의 비밀
닐 슈빈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어머니 바다에서 태어난 생물은 언제 처음 뭍으로 올라왔을까. 그들은 어떻게 뭍에서 살 수 있는 다리를 갖게 되었을까.
박테리아에서 사람에 이르는 38억년간의 기나긴 진화과정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을 통해 생물의 지나온 역사를 복원한다. 복원되지 않은 채 빠뜨려진 부분을 ‘잃어버린 고리’라고 흔히 부른다. ‘물에서 뭍으로’ 동물의 이동을 보여주는 화석도 그런 ‘잃어버린 고리’들 중의 하나였다. (이 책의 저자는 '잃어버린 고리'가 아닌 '찾아낸 고리'라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2006년 4월, 북극에서 가까운 캐나다 북부에서 발견된 3억8000만~3억7500만년 전 화석의 연구결과가 발표돼 세계가 떠들썩했다. 학계와 언론들은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다"며 환호했다. 나도 그 때 외신을 보고 기사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대한 물고기 모양에 지느러미가 달려 있지만 사지(四肢)와 비슷한 관절이 달려있고, 악어(파충류)나 도롱뇽(양서류)처럼 머리가 넙적한 희한한 생물이었다.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시절의 동물. 물 밖으로 나가기 직전의 동물 화석과, 물 밖으로 나온 직후의 화석은 이미 발견돼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물과 뭍에 걸쳐져 있는 중간단계의 화석을 발견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 화석을 발견해 ‘틱타알릭(학명 Tiktaalik roseae)’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이 책의 저자인 시카고 대학의 닐 슈빈 교수였다.
‘틱타알릭’은 이누이트 언어로 ‘얕은 물에 사는 큰 물고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슈빈은 이 책에서 틱타알릭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그것이 상징하는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른 생물들과 가깝다. 우리 몸속에는 우리에 앞서 이 땅에 살았던 선조 동물들, 고양이나 물고기, 파리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말하자면 우리 몸속에는 물고기의 일부가 있고, 물고기 속에는 인간의 일부가 있다.”
사람은, 아니 어떤 생물도, 혼자서 지구상에 뚝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생물은 DNA와 골격 안에 지구의 역사를 담고 있다. 헤켈의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사람이 생겨나는 과정에는 어류-양서류-파충류-포유류로의 발달과정이 모두 들어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에는 일면의 진실이 담겨 있다. 사람도, 상어도 모두 같은 생명의 법칙에 지배되며, 몸 안에는 진화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슈빈은 그 신비에 이끌려 생물학자가 되었고, 화석을 찾는 작업에 나서게 되었고, 틱타알릭을 만났다.
“칼 세이건은 별을 들여다보는 것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별빛은 영겁의 세월 이전에 이미 우리 눈으로 오는 여행을 시작했다. 지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말이다. 나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은 별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에게 인체는 타임캡슐이나 마찬가지이다. 캡슐을 열면, 지구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 고대 바다와 개울과 숲에서 벌어졌던 먼 옛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은 개조된 물고기이다. 물고기의 체제를 가져다가 포유류의 옷을 입힌 뒤, 미세한 조정을 가해 두 다리로 걷고, 말하고, 생각하고,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이도록 만들면 갖가지 문제점들이 잠복한 조리법이 완성된다. 물고기를 포유류로 변장시키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완벽하게 설계된 세상이라면, 즉 진화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치질에서 암까지 온갖 질병들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주 탐사 계획이 달을 보는 우리 시선을 바꾸어놓았듯, 고생물학과 유전학은 우리 자신을 보는 시선을 바꾸고 있다.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한때 까마득하게 멀어서 이해할 수 없는 듯 보였던 것이 어느새 우리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 우리는 발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을 통해 해파리, 벌레, 쥐 같은 여러 생물의 내적 작동방식을 밝히는 시대 말이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인류 역사의 진실들을 정확하게 짜 맞추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수십억 년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돌아볼 때, 생명의 역사에서 혁신적이거나 독특했던 것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재료를 재활용하고, 재조합하고, 재배치하는 등 새 용도에 맞게 변형시켜 이루어낸 성취들이었다. 바로 우리 몸 구석구석, 감각기관에서 머리까지, 나아가 몸의 체제 전체에 담긴 이야기다.”
저자는 화석을 찾아 ‘필드’에서 뛰는 고생물학의 즐거움과, 실험실에서 유전자 연구를 통해 신체 기관 발달의 메커니즘을 엿보는 실험 생물학, 즉 ‘이보디보(진화발생생물학)’ 양측에 발을 걸치고 있다. 고고학도, 고생물학도, 분류학도 모두 현대 DNA 분석기술의 발달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필드와 실험실’ 모두를 아우르지 않고서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현대의 진화생물학자들이 생명의 역사를 밝혀내기 위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책의 후반부는 틱타알릭 이야기라기보다는 ‘슈빈이 들려주는 생물 이야기, 진화 이야기’다. 도킨스의 <눈 먼 시계공>을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넘길 수 있을 내용들이다. 설명 자체가 아주 쉽고 간결해서 생물학 맛보기 책으로도 좋을 것 같다. 쉬엄쉬엄 기분전환으로 읽다 보니 끝부분에 가선 어느새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