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막심 고리키 지음, 한은경, 강완구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Reminiscenes of Lev Nikolaevich Tolstoy).톨스토이, 그리고 막심 고리키라는 이름만 보고 선뜻 책을 집어들었다. 톨스토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릴 적 읽었던 바보 이반 류의 동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혹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따위 몇개의 단편들 외에는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톨스토이라는 이름이 내 맘을 움직인 것은 마하트마 간디 때문이다. 얼마전 간디 전기에서 톨스토이와 간디의 대화(편지라는 매개를 통한 것이긴 했지만)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그렇다면 톨스토이와 고리키의 대화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으려나.

막심 고리키. 그 이름 하면 또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고 싶어서 서점을 뒤졌었다. 나는 고리키가 그냥 위대한 작가인 줄로만 알았지, 우리나라에서 그의 책이 정식 출간되어 판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뭘 모르는 10대 소녀는 동네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어머니>라는 소설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펄 벅의 <어머니> 밖에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때,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을 수 있었는데 인상적인 작품이기는 했지만 사실 내 기대에는 못 미쳤다. 그 소설의 제목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었던 탓일까, '읽고픈 욕망을 오래 묵혔다 읽은' 만큼의 감동은 없었고 다소 교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고리키의 또다른 작품(제목은 생각 안 남)을 읽었는데 비슷한 감상을 가졌었다(여담이지만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역시 시대의 차이 때문인지 그저 그랬었다).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은 고리키가 톨스토이와의 대화, 톨스토이를 보면서 느낀 것들, 톨스토이가 숨진 뒤의 회고 등을 적은 것이다. 짤막한 글들과 뒷부분 추모사 비슷한 회고담으로 구성돼 있다. 톨스토이라는 인물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현자의 공격에 상처 입을 때마다 약간씩 뒤틀리는 심사를 숨김없이 드러내놨다. 글 속에 나타난 톨스토이는 아주 지적이고 위대한 문인인 동시에,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다중적인 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리키는 존경해 마지 않았던 레프 니꼴라예비치(톨스토이의 이름)를 가리켜 '늙은 마술사'라는 표현을 썼다. 톨스토이의 말에 고리키의 글이니, 책은 당연히 멋지고 아름답고 재미있으면서 때로는 조금 고약하다. 하지만 짧은 글에 너무 많은 뜻을 담고 있는 이 책을 놓고 나같은 무식자의 <감상>을 적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고리키가 톨스토이를 회고하며 한 말을 옮겨놓는다. '이 사람이 여기 살고 있는 한 나는 지구의 고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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