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와 태도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김성한 옮김 / 창해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프리드먼 미워한다. 왜냐고?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반유태주의냐고? 반유태주의라는 말 자체에 반대한다. 그건 유태인들이 자기네 잘못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넌 나치야!' 하고 몰아세우기 위해 만들어낸, 극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유태인들 모두를 미워했지만(이스라엘, 너네는 존재 자체가 죄악인 나라야) 적어도 2명은 용서해줄 수 있다. 아인슈타인과 노엄 촘스키. 그럼 프리드먼은? 몹시 싫어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있다. 일단 이 사람은, 아랍-이슬람(비아랍권 이슬람도 포함해서)을 잘 아는 사람이고, 미국인들 중에서 아마 아랍-이슬람권을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돌아다니는 사람일 것이다. 둘째 프리드먼은 미국 '온건파 자유주의자'들의 중동 인식을 알게 해준다. 세째 미국 정부의 중동정책 수립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압둘라 왕세자의 '획기적 중동평화방안'을 사실상 특종보도한 것이 프리드먼이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읽다보니- 촘스키가 <숙명의 트라이앵글>에서 지적한, 전형적인 가치왜곡 방법들이 너무나 너무나 많이 눈에 띄어서 토할 뻔 했다. '(유럽의) 언론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때리는 것은 맨날 보도하면서, 팔레스타인이 자폭테러 하는 건 잘 보도를 않는다'. 웃기고 자빠졌네. '2000년부터 시작된 현재의 이-팔 분쟁은 아마도 '자살전쟁'으로 이름붙여질 것이다' 누구 맘대로- 어쩜 프리드먼 맘대로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자살전쟁? 팔레스타인인들의 자폭테러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그런데 어째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가 이스라엘 사망자수의 3배나 되는 거지? 곡학아세 하는 방법은 이문열에게서 배웠나?

'우리는 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에서 이겨서 아랍 동맹국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승리를 통해 빈 라덴과 탈레반을 제거함으로써 그들의 지지와 존경을 이끌어낼 것이다'9.11 테러 나고 미국이 아프간전 따까리들 모집할 때, 그러나 정작 전쟁에 몸 대어주려는 '우방'이 별로 없었을 때 프리드먼이 한 말이다. 현재의 이라크전 계획에도 그대로 통용될, 저 말. 차라리 미국의 오만과 일방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저런 태도는 정직하다.

물론 프리드먼은 나름대로 통찰력이 있고 또 극악무도 꼴보수는 아니다. 난 96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실린 프리드먼의 글을 읽었는데, 그 때는 인상이 괜찮았었다. 일단 문장이 간결하고 메시지가 명확하다는 점, 그런 문체상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었고 또 꼴통으로 보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지난번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봤더니, 이 아저씨가 너무 출세를 해서 좀 방자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책은 정말 내용이 너무 없었다. (웃긴 얘기지만 내 주변의 어떤 분은 그 책 읽고 되게 감동한 모양이다. 그 분은 언제나 자기자신이 세계화시대의 메인스트림에 들어있다는 확신을 갖고 계신 분인데,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보니 무엇을 보고듣고 읽어도 '뒤집어보기' 내지는 '삐딱하게 보기'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불쌍하게도.)

그런데 9.11 이후에 쓰인 칼럼들을 주로 모아놓은 이번 책을 보니, 9.11 사건 때문에 프리드먼이 많이 흥분했던 모양이었다. 다른 모든 미국인들처럼. 평소의 페이스에서 좀 벗어나서, 예전과 달리 신랄하고 공격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드먼의 장점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지점에 있었는데. 스스로도 느꼈는지, 뒷부분 비망록에 그런 얘기를 털어놨다. 같은 얘기가 반복되어서 책의 밀도가 떨어진 점도 아쉬웠다.재밌었던 부분은 프리드먼이 자기가 생각해도 기특했는지 수차례 언급했던 '초강대개인' 개념이랑, 이란에 대한 얘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에 대한 얘기. 이슬람을 두개의 섬(세속정권과 종교세력의 권력나눠먹기)으로 비유해 설명하면서 빈라덴 문제를 이 관점에서 파악한 부분('빈라덴의 도전은 분점에 만족 않고 세속 권력까지 먹으려 했던 것')도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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