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진실 - 왜 일부 국가만 부유하고 나머지 국가는 가난한가
존 케이 지음, 홍기훈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에는 중구난방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와서 좀 지루했다. 그러다가 중반부 지나가면서 논지가 비교적 명확해지고 재미도 더해갔다. 요는, 경제학은 완벽하지 않지만 시장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완전경쟁시장’을 중심에 놓고 무조건 시장만 옳고 정부 개입은 나쁘다 했던 (밀턴 프리드먼식) 경제학계 주류의 생각이 잘못됐었다는 것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식 경제학’ ‘금융자본주의’ ‘통화주의와 시카고학파’가 지탄받는 세상이 된 지금은, 영국 경제학자인 저자의 주장이 그리 낯설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지금도 한국 정부여당 등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저따위 논리가 반성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은 금융위기 전에 쓰인 것인데, 왜 완전경쟁-시장제일주의가 현실을 해석하고 개선하는데 착오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은 작동하지만 향상 그리고 완벽하게 운영되지는 않는다. 다원주의적 시장구조는 혁신을 중진하고, 경쟁적인 시장은 소비지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지만, 시장의 결과가 효율적일 것이라고 믿을 만한 포괄적인 근거는 없다. 사회적·경제적 제도들은 시장경제에서 정보의 교통을 관리한다. 이 제도들은 문화와 가치, 법과 역사에 의존한다.” (422쪽)

책의 원제는 ‘문화와 번영’이다. 저자는 경제적 번영은 총체적인 사회 제도에 달려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시장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제도의 일부분으로서만 의미를 지닌다는 측면에서 저자는 시장을 ‘임베디드 시장(embedded market)’이라 부른다. 시장이 제도 안에 ‘임베디드’ 되어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기술적인 이식(移植)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낙후된 경제권을 번영으로 이끌 수 없다. 이것이 ‘빈국을 부국으로 바꾸기 위한 선진국들의 이식작업’이 실패한 이유다.

“생산성은 단순히 자본과 기술 기용성의 결과가 아니며, 또한 개개 노동자들의 숙련도의 차이에 의한 것이 아니다. 현시대에서 기술은 어디서나 개발될 수 있고, 지본과 기술은 국가 간에 자유롭게 흘러 다닌다. (국가간) 경제적 차이는 생산성과 생활수준이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제도와 서로 교차하는 경제적 환경의 복잡한 산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개인의 경제생활은 그들이 속한 시스템의 산물이다. 이 책은 우리의 경제생활을 규정하는 제도들에 관한 것이다. 경제제도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정황의 일부로서만 기능한다. 이것이 내가 임베디드 시장(embedded market)이라고 기술하는 것이다.” (43쪽)

“부국들과 빈국들 간의 차이는 각각의 경제적 제도의 질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40년의 실망 후에 개발기관들은 이것을 인식했고, 채무국 정부에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처방은 대개 너무 미약하다. 러시아에 제공된 것은 미국식 제도가 아니라 미국 비즈니스 모델의 비책이었다. 시장제도-소유권의 보장, 최소한의 정부의 경제적 개입, 규제완화-는 단순하고 보편적일 것으로 믿어졌다. 이러한 처방들이 이행된다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장에 관한 진실은 이보다는 더 복잡하다. 부국들은-글자 그대로-시민사회와 정치적·경제적 제도들이 수세기를 거쳐 이룬 공진화의 산물이다.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이해하는 공진화는 빈국에 이식할 수 없다." (440쪽)


책의 전반부는 경제현상 전반을 간략하게(그러나 쉽지는 않다) 설명하면서 경제학의 맛을 보여준다. 중반부터는 프리드먼식 경제학이 어떤 점에서 틀렸는지를 조목조목 짚으면서, 사회 제도의 ‘공진화’를 통해 시장이 번영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여기서 비판 대상은 통화주의/시장제일주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식 비즈니스 모델(ABM)’이 된다.

“ABM의 등장은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허용했다. 주식시장의 계속되는 상승은 금융서비스분야에서 매우 큰 이익을 창출했고,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경영자들은 자연적으로 자신의 급여와 월스트리트의 성과급을 비교하게 되었다.
ABM의 순 도구적 동기들은 궁극적으로 스스로 패배하게 된다. 이윤이 시장경제의 목적이고,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은 그것에 대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즉, 목적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이고 그 수단들을 이익이 나게 하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만을 외곬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이윤이 많은 회사는 이윤 위주 회사가 아니다. 적응의 결과는 최대화의 결과와 비슷하나 최대화의 산물은 아니다.“ (425쪽)


요즘 유행(?)하는 ‘생물학적 경제학’이라고 봐야 하려나, 진화론-적응(옮긴이가 앞에서는 ‘적응’이라 해놓고 뒤에서는 ‘순응’‘순응적’이라고 번역해 헷갈리게 만드는데 ‘적응’이 맞을 듯) 개념을 중심으로 미국식 경제학을 비판한다.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물학의 고전적인 전제가 절반의 진실일 뿐인 것처럼, ‘인간은 이기적이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탐욕은 곧 선(善)이다’라는 개념들의 집합체인 미국식 경제학 역시 온전한 진실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부분에서 도킨스식 이기주의-이타주의 개념과 경제학이 접목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합리성이 동기에 대한 가정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예측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개인들이 이기적이 아니어도 이기적 행동이 이타심을 만들어낸다.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경쟁적인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한 기업이다. 이러한 주장은 프리드먼과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을 결속시켜주지만, 둘 다 틀렸다. 이러한 주장은 행동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적응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성적 행동과 적응적 행동은 반드시 같지 않을 수도 있다.” (264쪽)

꽤 재미있는 경제학 개론서인데, 개론으로 보기엔 좀 문장이 꼬여 있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 저자의 말투도 그리 문어체는 아닌 것 같고(이른바 비비꼰 ‘영국식 유머’들이 섞여 있다) 번역은 정말 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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