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의 노래 1 - 도도가 들려주는 자연의 생존과 종말 이야기 김영사 모던&클래식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충호 옮김 / 푸른숲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섬에는 거인, 난쟁이, 잡종 예술가, 그리고 온갖 종류의 비순응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마다가스카르섬에는 몸길이가 겨우 1인치 밖에 안 되는 지상에서 가장 작은 카멜레온종(이것은 육상 척추동물 중 가장 작은 동물이다)이 살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지금은 멸종한 피그미하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코모도 섬에는 거대한 도마뱀이 살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바다를 헤엄치는 이구아나가 다른 파충류의 신체적 한계를 비웃으며 바다 밑에서 해초를 뜯어먹으며 살아간다. 뉴기니의 중앙 고원지대에서는 리본꼬리 풍조를 볼 수 있다.
인도양의 작은 산호섬 알다브라에는 갈라파고스 거북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용을 가진 큰거북이 살고 있다. 세인트헬레나섬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이언트집게벌레종-세상에서 가장 크고 또 아마도 가장 혐오스러운 벌레-이 살고 있었다. 자바섬에는 피그미코뿔소의 일종인 자바코뿔소가 살고 있으며, 하와이에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기이한 새인 꿀빨이새가 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잘 알다시피 캥거루와 유대류가 살고 있으며 태즈메이니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도 희귀한 유대류인 주머니곰, 베통, 숲왈라비, 주머니고양이 등이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산타카탈리나 섬에는 방울 소리를 내지 않는 방울뱀이 살고 있다. 뉴질랜드에는 큰도마뱀 투아트라가 살고 있다. 모리셔스 섬에는 유럽인들이 침략해오기 전가지만 해도 도도가 살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멀리 모리셔스 섬에 살다간 도도라는 새는, 인류에게 “아, 내가 이 두 손으로 다른 종(種)을 지구상에서 멸종시켰구나”라는 인식을 최초로 갖게 해준 새로 유명하다. 물론 그 전에도 그 뒤로도 인간이라는 존재로 인해 멸종된 종들은 많았겠지만.
인간 덕분에 살아가는 숱한 종들도 있으니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플러스 & 마이너스 ‘똔똔’이 되면 종 다양성 문제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텐데,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요사이 인간들은 멸종을 너무 많이 초래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구 전체로 보면 종의 숫자가 점점 마이너스 되어간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멸종시켜온 종의 리스트는 점점 길어만 간다. 멸종을 쉬운 말로 풀면, ‘다 죽었다’가 될 테니 결국 인간이 멸종시킨 종이란 것은 ‘인간이 하나도 안 남기고 다 죽여버린 혹은 다 죽어버리게 만든(그거나 그거나) 동물들 목록’이 되는 셈이다.
몇 해 전 번역자이신 이충호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책 두 권을 선물로 받았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마음에 담아만 둔 채 책표지조차 넘겨보지 못한 채로 서너 해가 지난 듯싶다. 그러다가 빚 청산 하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는데, 이건 완전히 내 취향의 책이었다. 나온 지 시간이 좀 지난 터라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표지, ‘도도가 들려주는 자연과 생존의 종말 이야기’라는 판에 박힌 문구. 하지만 책은 폭이 넓으면서도 깊이가 있고 생생했다.



인류가 새로운 장소에 발을 디딜 때마다 사라져간 동물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이라면, 모리셔스와 도도라는 새의 사라져간 존재는 극적이면서도 또 너무나 상징적이어서 식상하게까지 느껴질 수도 있겠다. ‘자연 생태 저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는 타이틀로 붙잡아놓은 도도를 잠시 제쳐둔 채, 일반인들에겐 생소하게 들리는 ‘섬 생물지리학’이라는 생물학의 한 분야를 설명하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윈의 갈라파고스, 도도가 있었던 모리셔스, 코끼리새처럼 커다란 새들이 살았다는 마다가스카르 같은 섬들. 생물학자들에게 섬은 진화와 종의 신비를 보여주는 자연의 ‘고립된 실험실’이다. 그런 섬들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섬 생물지리학이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구나 싶지만, 섬 생물지리학은 우리에게 ‘멸종의 노래’를 들려주는 학문이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1천 년 전 그 코끼리새는 이 세상에서 오직 마다가스카르 섬에만 존재하였다, 이제는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섬) 생물지리학이 하는 일이다.”
생물지리학, 특히 섬 생물지리학은 멸종의 위기들을 찾아다니는 작업이고, 멸종을 목도하고 기록하는 작업인 셈이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큰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또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는 직업 중의 하나가 ‘섬 생물지리학자’라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저술가이면서 또한 스스로 섬 생물지리학자가 되어 마다가스카르와 아마존, 말레이 군도, 뉴기니, 코모도, 태즈메이니아 등지를 찾아다니며 개발의 소음에 가려진 멸종의 노래를 전해준다. 코모도 드래곤과의 조우, 서양 학자들과 친하게 지내다 살해당한 원주민 청년의 비극적인 스토리, 희귀종 원숭이를 보기 위한 여성 생물지리학자의 집념 등을 소개한다.

세상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종들의 이야기를 담은 ‘생태 여행기’ 정도로만 읽어도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읽고 넘기기엔 2권짜리 책은 적지 않은 분량이다. 알짜배기 책들은 꼭꼭 씹어서 단물을 다 빨아내야만 수지가 남는다. 더군다나 이 책은 ‘단물’ 정도가 아니라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책이다.
이 책은 멸종이라는 것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종들에게 들이닥치는지에 대한 현장보고서다. 저자는 좀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멸종의 필요충분조건들을 분석해나간다. 그러니 인간은 멸종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광범위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인류가 종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멸종의 서사시, ‘도도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도 족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것은 섬 생물지리학을 통해 인류에게 멸종의 경고장을 던진 학자들의 논쟁이다. 개미학자이자 국내에서는 ‘통섭’을 주창한 사람으로만 잘못(?) 알려진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의 ‘진짜 공적’이 나온다. 책의 후반부에는, 쟁쟁한 이름들과 함께 ‘멸종을 막기 위한 생태계의 최소 면적’에 대한 다층적인 논쟁이 소개된다.
자연에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실용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이른바 ‘생물보호구역’을 최소한 얼마 이상 남겨둬야 하는가에 대한, 인간들의 인색한 자연 접근법에 대한 논쟁이 되는 것이고, 넓게 보면 자연의 재생력을 보전하기 위한 인간의 최소한의 의무로서 멸종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질문이 되기도 하다. 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생물학자들의 여러 연구들을 소개함으로써 인색한 인류가 다른 생물종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개략적으로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어쨌든 도도는 멸종했다. 인간들은 아프리카 연안 작은 섬에 살고 있던 이 덩치 큰 새들이 더 이상 지구상에서 우리와 함께 존재하지 못하게끔 모두 죽여버렸다. 몇 해 전에는 열대의 불쌍한 개구리 한 종류가 지구상에서 최초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멸종된 것이 확실한’ 종으로 기록됐다. 흥미롭게도, 그리고 비참하게도 저자의 순례기에 등장하는 한 곳은 태즈메이니아다. 거만한 정복자들이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 그러니까 ‘인간 한 종’을 멸종시켰던 곳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종들 뿐 아니라 문화의 종들, 언어의 종들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에게까지 절멸의 칼날을 들이대왔던 것이다.
멸종의 순례기 끝에 저자는 도도의 고장에서 몇몇 사람들의 노력 덕에 힘겹게 멸종을 피할 수 있었던 ‘모리셔스황조롱이’의 사례를 전한다. 비록 미약하나마 희망은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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