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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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바나나에게는 안녕을 고하고 싶다.

바나나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 '가볍다'는 생각과 달리, 나에게 바나나의 작품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상처와 치유라는 주제는 사실 가볍기보다는 오히려 무겁고 진지한 주제들이고, 그걸 다루는 방식도 가볍지많은 않게 보였다.

물론 바나나의 작품들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들을 모두 끊고 난 뒤에나 가능할 것 같은 극히 개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고.

그렇지만 상처와 치유라는 문제를 사뿐사뿐(적절한 표현을 도저히 찾지 못해서 이렇게 안 어울리는 부사를...) 다루는 게 마음에 들었고, 또 바나나의 소설을 읽다 보면 따스한 기분이 많이 들어서 좋아했었다.

그런데 <허니문>에 와서는, 너무너무 '지겨워졌다'.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것, 말하자면 그게 내 취향인데, 그리고 환타지를 조금 섞은듯한 비현실적인 분위기도 나름대로 별미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한마디로 '영 아니다'. 담담한 것이 지나쳤는지 재미가 없고, 현실도피가 너무 심해서 따뜻한 느낌도 안 들고, 그저 세상 사람 누구나 갖고 있는 작은 어두움이나 우울함 따위를 극대화, 극단화시킨 것 같아서 염증이 났다.

작가는 이 책에서 주인공 남녀와 올리브라는 개와의 우정을 계속 얘기하는데, 대체 그 개가 무슨 역할을 하는 건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인간에 대한 애정, 살아야 한다는 의지, 희망을 일깨워주는 개? 아무런 모티브도, 설명도 없이 쉼표만 많이 집어넣는 것은 신경숙이 쓰던 방식 아닌가.

바나나가 나태해진 건지, 독자인 내가 혼자 지겨워진 건지. 혹은 바나나가 늙어버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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