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윤리 - 실천윤리학의 거장 피터 싱어의
피터 싱어 지음, 김희정 옮김 / 아카넷 / 2003년 12월
품절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한 제한적 개입의 필요성과 반인도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사법권의 문제) 비록 가난을 극복하고 불의를 근절하고 교육을 증진시킴으로써 집단 살해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량 학살을 방지하기 위해서 단지 이런 정책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평화를 진작시키고 국가 간의 전쟁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메커니즘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 국가 차원에서살인, 강간, 폭력이라는 개인 범죄에 대한 마지막 방어선이 법적 강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도 집단살해죄와 이에 버금가는 범죄에 대항하는 마지막 보루는 법적 강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러한 여러 방안들이 실패한다면, 마지막으로 군사적 개입에 호소하는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153쪽

(인도주의적 개입을 위한 기준) "어떤 국가가 자국민에게 잔학 행위를 범하고 자국민들을 박해하여 기본권을 부정하고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준다면, 인도(주의)를 위해 개입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오펜하임)
...마이클 월처는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개입의 예로서 당시 동파키스탄이었던 지금의 방글라데시에 대한 1971년 인도의 개입, 같은 해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의 개입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이 ‘제국주의적인 도움 없이 내부에서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월처처럼 ‘인류의 양심’이라는 기준에 호소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다름 아니라 이런 양심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인종 간의 섹스, 무신론, 혼욕 같은 것에 의해서도 충격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 유엔 사무총장인 아난은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은, ‘대규모 사람들에게 죽음과 고통이 닥칠 때, 그리고 명목상 책임 있는 국가가 그것을 멈출 수 없거나 멈추려는 의향이 없을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 헌장은 ‘개별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써 그 의견을 뒷받침했다. 아난의 견해는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주는 것’이라는 기준보다 더 구체화된 기준을 내세웠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다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언급이 보다 구체적인 피해를 나열하는 것으로 대치되어야 한다.-164쪽

2002년에 캐나다 정부가 앞장서 설립한 ‘개입과 국가 주권에 대한 국제위원회(ICISS)’는 ‘보호 책임’이라는 보고서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군사적 조치의 기준을 단 두 가지로 줄였다.
가. 집단살해의 의도가 있건 없건 고의적인 국가 행위, 태만이나 무능력 혹은 국가 해체 상황의 상징인 현재의 또는 예상되는 미래의 대규모 인명 손실.
나. 학살, 강제추방, 테러나 강간행위 등에 의한 현재의 또는 예상되는 미래의 대규모 인종청소.
... 한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ICISS의 첫번째 기준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대한 정의를 충분히 넘어서고 있다. 바로, 개입을 유발하는 ‘대규모 인명 손실’은 의도적인 인간행위의 결과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아 사태 등)

-168쪽

(개입 기준의 평가와 유엔의 역할) 그 개입기준이 언제 충족되었는지를 누가 판정해야 하는가? 실제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개입 기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언제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명시하는 권위 있는 절차를 납득할 만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전지구적 단체는 현재 하나밖에 없다.
... ICISS는 국가주권에는 국가가 자국민의 보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그 책임을 기꺼이 다하지 않거나 그럴 수 없을 때, 국제 사회, 보다 구체적으로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 책임을 대신 지게 된다는 것이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 제24조에 따라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169,177쪽

(강대국이 저지르는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해선 왜 개입할 수 없는가) 개입을 위한 법적인 근거, 그리고 나아가 정당한 원인까지 있다고 해도, 모든 사항을 고려할 때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나토가 체첸 문제로 러시아에 개입하거나 티베트 문제로 중국에 개입해선 안되는 이유는, 전쟁을 일으킬 경우 일어날 인적 손실 때문이다. 이것을 이중잣대로 생각해선 안된다.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개입하는 데 들 비용이 얻게 될 이익보다 더 클 것 같을 때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182쪽

(문화적 상대주의와 문화제국주의 논란) 우리는 도덕상대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문화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주장을, 자기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도덕적 추론을 가능케 하는 윤리관의 견지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 때때로 사람들이 독특한 문화적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들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단지 소수의 이익에만 봉사하기도 한다.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는 법 없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해를 끼치기까지 하는데도, 변화를 거부하는 종교적인 교리나 관행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살아남기도 한다.-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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