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세계 -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리처드 하스 지음, 김성훈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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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하스는 국제뉴스에서 꽤 자주 이름을 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포린어페어스'로 유명한 미국외교협회(CFR)의 회장이고, 미국 외교문제에 대해 유명 언론들에 적잖이 코멘트를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지 H W 부시 시절에 백악관 특보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남아시아 담당 특보를 했다고 한다.


리처드 하스의 <혼돈의 세계>(김성훈 옮김. 매일경제신문사)를 읽었다. 부제가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이라 달려 있다. 영어 제목은 A World in Disarray 이고 부제는 '미국 외교정책과 구질서의 위기'다. 한글판은 제목의 Disarray를 '혼돈'으로 옮겼고 부제에다가 '한반도의 운명'을 덧붙였다. 번역은 매끄럽다. 다만 번역자는 하스 스스로 "한국에서는 Disarray를 혼돈이라 해석한다고 어느 통역자에게 들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서 '혼돈'이라고 번역했다는데, 이건 좀 이상하다. 하스는 chaos가 아닌 disarray라는 단어를 일부러 썼다고 서론에서 직접 밝혔고, 그가 책에서 줄곧 언급하는 H 부시 시절의 'New World Order'가 결국 현실이 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부제도 사실 좀 과하다.


날카로움이나 통찰력같은 것은 많이 엿보이지 않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 시점에, 지난해에 나온 이 책의 '북핵 위협'을 강조하는 서문을 읽자니 더더욱 그랬다. 냉전 시절의 사고방식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난 것도 아니고, 현실주의 노선의 기본틀에 머물고 있는데 그렇다 해서 로버트 카플란처럼 미처 알지 못했던 지구상 어딘가의 일들을 전해주는 것도 아니고. "냉전시절의 현실주의+21세기의 무질서 몇 가지=미국은 중국을 배제하지 말고 중국(그리고 러시아)와 협력해서 세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듯. 


책을 읽으면서 브레진스키를 여러번 떠올렸다. 기본적으로 강대국 간 힘의 균형(하스는 대놓고 '세력균형'을 얘기한다)을 중시하되, 미국이 단일패권국가는 아니지만 이 혼란한 세계를 관리하는 역할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계경찰 미국'의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쪽에 서 있다는 점에서 니얼 퍼거슨 류와 비슷하기는 한데, 아들 부시 시절 막 나가는 미국을 예찬하는 쪽에 섰던 퍼거슨 식의 오만한 '미국 제국론'보다는 좀 점잔을 빼는 식이랄까. 


아버지 부시의 현실주의 외교노선을 칭찬하는 점도 브레진스키와 비슷하다. 브레진스키는 '보수적인 민주당 외교 원로'였지만 하스는 아버지 부시 시절 직접 외교에 관여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 싶다. 그런데 정치적 스펙트럼과 상관 없이 브레진스키의 책에서는 세계를 진짜 크게 보는 원로의 느낌이 나는 것과 달리, 하스의 책에서는 그런 안목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두 사람 다 유대계인데, 특히 하스는 이스라엘을 미국이 밀어주고 편들어주는 걸 너무 당연하게 '옳은 길'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 때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딴지만 걸다가 결국 왕따가 돼 실기를 했고 "그 결과 미국은 이러한 시도에 대해 영향력을 잃었고 무기력해 보였으며 중국이 세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으려는 노력을 방해하려 한다는 인상만 많은 중국인들에게 주었다"고 진단한 부분, "그럼에도 전략적 맥락이 변화했고 중국의 국력이 절대적 상대적 측면에서 성장함에 따라 세력균형도 변화하고 있음을감안할 때 여전히 미중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견고하다는 사실"(104쪽)을 언급한 것 등 몇몇 부분은 재미있었다. 


아버지 부시의 측근이었지만 하스 또한 아들 부시의 이라크 침공에는 혹평을 한다. 물론 그의 혹평 밑에는 도덕적 측면이나 이라크인들의 고통 따위는 깔려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저 그는 기술적인 문제만 짚을 뿐이다. "첫째, (오바마의) 미국은 주둔군 지위협정 개정을 통해 제한된 규모의 미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하지 않고 계획대로 병력 철수를 추진했다. 둘째, 비록 알말리키 총리가 2010년 선거에서 다수표를 획득하지도 못했고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시아파의 이익을 챙기는 편협한 종파주의자였지만 그럼에도 미국은 그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냈다. (중략) 2003년에 전쟁을 개시하기로 한 결정과 그 이후 있었던 이라크군의 해산, 그리고 과도하게 많은 지배 정당 소속 인사들을 축출시키기로 한 결정이 가장 중대한 정책적 오류였다"(188쪽)는 것이다. 어찌 됐든 미국의 정책적 오류에 대한 이런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생각은 '세력균형에 바탕을 둔 협력론'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같다. 그는 냉전 시대를 풍미한 조지 케넌의 '봉쇄'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한다. 정작 케넌은 자신이 보고서를 만들었던 봉쇄 개념이 군사적 봉쇄와 대결로 향하자 회의를 품고 반대론자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사실 이 책보다는 몇 해 전 읽은 케넌의 책이 훨씬 재미있었다)


"나는 냉전시대 미국의 외교정책으로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억누르려고 했던 봉쇄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소련도 그랬지만 중국이든 러시아든 이념이나 지정학적 욕망이나 동기로 인해 자신이 통제하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을 무한정 확대하고 싶어 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행동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첫 수순이 아니었으며 마찬가지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태도도 그랬다.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정치적이면서 안보와 연관된 이해관계가 있고, 비록 이러한 이해관계가 아주 크기는 하지만 전혀 충족시킬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방향성이 설정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통합'이라는 정책이 한층 더 설득력 있다." (231쪽) 


이런 맥락에서 그는 특히 남중국해 문제에서 '미국과 친한' 나라들을 안심시키고 편드는 게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중국을 도발하지 않도록 억누르는 것도 미국의 주된 역할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교적 상호의존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말은 달리 표현하자면 다른 강대국들도 지역적 혹은 글로벌 수준의 질서 형성과 운영 과정, 즉 정통성이 무엇인지 규정짓고 현실에서 정통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지정학적 통합으로서 몇 년 전 중국에게 제시했던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responsible shareholder)'와 유사하기도 하지만 이 표현은 많은 중국인들에게는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동참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과 중국이 협력하여 이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정통성을 형성하는 규범과 제도 창출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목표는 현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232쪽)


유엔 체제가 실효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온갖 다양한 이슈별 지역별 중소규모 다자대화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갈수록 그렇게 되리라는 분석, 외교정책 수단으로서 '제재'를 활용할 때 미국이 염두에 둬야할 것에 대한 지적은 재미있었다. 관계가 안 좋아졌다 해서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몽땅 묶어 통째로 대립으로 끌고가지는 말아라, "러시아 또는 중국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아서 제재를 해야 할 경우에도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고 다른 선택이 가능한 분야에서는 협력을 위해 가급적 좁은 범위에서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233쪽)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바마 정부는 참 어정쩡했다. 전면 대립을 바라는 것이 아니면서도 결과적으로는 협력의 길을 막는 길을 택했으니. 트럼프는? 하스는 "일단 상황이 해소되면 어떤 제재라도 조절과 해제가 용이하도록 고안돼야 한다. 여기에 두 가지 요소를 추가하고자 한다. 첫째, 제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과 무력 사용 사이에서 쉽게 택할 수 있는 '안전한' 제3의 선택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봤을 때 제재만으로는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거의 없다. 둘째, 우방국이나 동맹국이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이 원하는 조치를 거부한다고 해서 제재가 이들과의 주된 갈등 요소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234쪽)고 말한다. 새겨들을 말인데, 국제정치에서 이를 면밀히 구분할 수 있는지는 좀 의문이다. 


중동 전문가인 그는 이란이나 이스라엘 문제에선 고전적인 시각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눈길 끄는 게 있다면 이란을 현실로 인정하자는 것 정도. 이란을 압박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모든 수단(군사적 수단까지 포함해서!)을 동원하되, 이란을 무너뜨리거나 변화시키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란이 40여년 간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이란을 개조하겠다는 시도는 비현실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란이 점점 온건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이런 변화만 기대할 수는 없다. 중국과 러시아를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게 이란을 다루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과거에 아프간과도 일부 협력이 가능했던 사례처럼 선택적으로 협력하고 핵 분야에서 위험 방지 외교 활동을 하며 필요할 경우 제재를 동원하여 봉쇄하는 한편 이란 주변국에는 안보를 제공하고 이란이 중동지역 내 미국의 핵심 이익을 위협하는 경우에 군사조치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290쪽)


이란을 압박해야 한다는 걸 기본전제로 깔고, 그는 "이스라엘 지지"를 중동 정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제시한다. "군사, 경제, 정보 지원을 유지하거나 선택적으로 증가시키는 수준 이상"으로 이스라엘을 밀어줘서 모든 역내 문제를 이스라엘과 논의하자는 것. '이스라엘=미국 사냥개' 주장은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지.


"중동 지역 내 국경선의 현상유지를 미국 핵심 이익으로 설정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가까운 시일 내에 중동 국가들이 자칭 국가라는 수많은 자치 지역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의 경우에는 명목상으로는 중앙정부가 있지만 실제 통치하는 지역으로 볼 때는 그렇지 못하다. 국가라기보다는 자치주가 새로운 규범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은 새로운 추세를 어떠한 공식 제도로 규정짓고자 해서도 안 된다. 1차 세계대전 종식 후 오스만 제국을 분열시켰던 파리평화회의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분열되는 선례를 따르려는 국가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적을 것이고, 설령 그렇게 할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국경선을 어떻게 그을지에 관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파리평화회의와 유사한 시도를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중동의 실상은 법적 현실이 아닌 실질적인 현실에 따르고 있을 것이다." (293쪽) 


전체적으로 저자의 톤은 모든 면에서 '현상 유지+관리'라고 보면 될 것같다. 테러리즘에 대해서도 "이제 테러리즘은 그동안 상당히 축적된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요소의 산물이자 소위 뉴노멀로 보아야 한다"면서 "테러리즘으로 성취할 수 있는 기대 수준과 성공 가능성을 낮춰서 테러리즘이 우리 일상생활의 근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방, 보호, 원상회복 등의 요소가 조화를 이룬 지속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288쪽)고 말한다. 일면 용감하고도 현실적인 발언이다. 이미 세계는 그렇게 돼 가고 있다. 다만 그것이 미국이나 어느 나라 정부 덕이 아니라 '시민들의 힘'이라는 점. 이 책의 저자 눈 앞에는 '시민'같은 존재는 전혀 없으니.


뒷부분에서 그는 '주권국가의 힘'이 약해지면서 무질서가 심화되는 시대에,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돼왔던 주권이라는 개념을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나 정부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정통성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이런 인식이 널리 지지받아야 한다"(240쪽)며 여기에 '주권적 의무(sovereign obligat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잘 와닿지는 않는다. 개념의 모호성도 그렇고, 그 개념을 어떻게 주권국가들에게 '의무화'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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