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2001년 911테러가 일어닜을 때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막혔었던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당일인지 아니면 며칠 후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테러 여파로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가 MBC에서 결방이 됐었다. 그 때, 친구들 몇 명이 그깟 테러가 무슨 난리라고 박찬호 선발경기가 결방이 되냐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친구들을 비난했었는데, 그 친구(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럽다)들은, 우리랑 상관없는 저 먼나라 사람들 죽은 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오히려 날 비난했었다. 그 이후로 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다.


#2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멍하니 있다가 울컥하고 손가락을 깨물며 울음을 참는 것은,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안타가움일 것이다.


#3

내가 '죽음'이라는 관념을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은 '소설'에서 였다. 1987년 국민학교 5학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읽었던 때였다. 소설에서 여주인공 은주가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고 남주인공 봉구가 은주의 죽음 이후에 대해 짤막하게 서술한 부분이었다.


"이틀이 지났다. 봉구는 자기가 밥을 먹고 학교에 나오고 밤이면 잠을 잔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은주의 몸은 차디차게 식고 그것도 모자라 병원의 냉동실에 들어가 있는데 봉구는 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사람은 살기 위해 그 지난한 짓거리를 해야한다는 삶의 연속성에 대해 진저리를 쳤었던 것 같다. 죄책감에 슬픔에 분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감정이 순환된다 하더라고, 결국에 인간은 먹고 싸고 자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냉정히 말해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의 일인데도 이런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지독한 자기혐오에 부딪히며 이 지옥같은 엿새를 살아왔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 긴 나날들을 살아가야 할까...


#4-1

유년 시절의 기억 하나. 영화 <쿼바디스>를 보면 네로 황제가 자신이 방화한 로마를 보면서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4-2

유년 시절의 기억 둘. 영화 <황야의 독수리>를 보면 일본군 지휘관이 부하들이 부녀자들을 강간하는 장면을 보며 시를 읊는 장면이 나온다.


#4-3

그래서인지 사고 후 여러 공무원들의 무뇌아적인 행동들 중에서도 내게 있어서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킨 사람은 이번 사고를 보고 시를 읊은 김문수 경기도 지사이다. 역사적으로도 예술가적 심성이 높은 군주는 나라를 말아먹는 데 일가견을 보여주었는데, 김지사는 이번 기회에 은퇴하시고 차기 신춘문예나 노려보심이 국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5-1

내가 10대 였을 때 벌어졌던 대형 참사들.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가스 폭발 등...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꼰대새끼들이 국민들 다 죽이네!


#5-2

지금, 난 더 이상 분노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분노하던 꼬마는 어느새 꼰대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꼰대새끼가 꽃 같은 아이들을 다 죽이네! 난 이런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6

정말로 미안하다. 얘들아. 이렇게라도 사죄를 하고 싶었다. 어른들 말 잘 들어 사고를 당한 너희들. 그래서 더 면목이 없다. 정말로 미안하다...


#7

2001년에 박찬호 선발 등판 경기 중계가 취소되어 분노했던 너희들. 이번에는 또 무슨 프로가 결방되어 분노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아니겠지... 


"우리 인간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힘든 거 아는데, 괴물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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