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 육건장은 심야에 우물로 숨어들고 삼태자는 지저에서 검을 휘두르다


p.186

*『중국의 과학과 문명』(J.니덤)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은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조지프 니덤(Noel Joseph Terence Montgomery Needham, 중국 이름은 李約瑟, 1900~1995)이 지은 중국과학사 연구서로 1955년 1권 『서론(Introductory Orientations)』이 발간된 이후 2008년까지 총 24권이 나온, 한마디로 엄청난 책이다. 니덤 생전까지는 총 16권이 출판됐으며, 니덤 사후에는 니덤연구소(Needham Research Institute, NRI)에서 니덤의 연구를 바탕으로 계속 집필을 하고 있다.

   니덤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총 7부로 구성했는데, 1부 『서론(Introductory Orientations)』, 2부 『과학사상사(History of Scientific Thought)』, 3부 『수학, 하늘과 땅의 과학(Mathematics and the Sciences of the Heavens and Earth)』까지는 단권으로 출간됐지만, 그 이후 4부 『물리학과 물리기술(Physics and Physical Technology)』, 5부 『화학과 화학기술(Chemistry and Chemical Technology)』, 6부 『생물학과 생물학기술(Biology and Biological Technology)』, 7부 『사회적 배경(The Social Background)』은 각 파트별로 책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2013년 12월 현재, 5부 Part 8 & 10, 6부 Part 4가 저술 중이며, 언제 완간이 될지는 알지 못한다.

   이 책이 워낙에 방대하고 깊은 내용을 다루는 것이라, 일반 독자들을 위한 축약본이 나왔는데, 한국에 소개된 니덤의 책들은 바로 이것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을유문화사와 까치글방에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절판됐으며, 지금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조지프 니덤의 연구를 로버트 템플(Robert Temple)이 축약하고 도판을 넣은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The Genius of China: 3,000 Years of Science, Discovery and Invention)』이 유일하다.



   사족으로, 니덤연구소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진흥사업단의 지원 하에 『한국의 과학과 문명』을 총 10권의 분량으로 낼 계획을 발표했는데(2013년 11월 7일), 이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사에서 출간한 비서구권 인문·과학 총서로는 두 번째라 한다.



p.197

“거령신! 거령신!”


   나타가 부르는 거령신(巨靈神)은 『서유기』에 등장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창세 신화에도 모습을 보이는 신이다.

   『서유기』4회에서 거령신은 옥황상제가 하사한 필마온(弼馬溫)이라는 벼슬이 품계에도 없는 하찮은 것임을 알고 무단이탈한 죄를 묻고자 출동한 탁탑 이천왕과 나타삼태자의 선봉장으로 나온다. 『요원전』 p.201에 등장하는 거령신의 모습은 바로 『서유기』에 등장한 거령신의 모습을 그대로 차용했다.

   “이천왕은 양지바르고 평탄한 들판에 영채를 세우기가 무섭게 먼저 선봉장 거령신을 출동시켜 첫 싸움을 걸게 하였다. 출전 명령을 받은 거령신은 갑옷 투구를 단단히 고체 매고 선화부(宣花斧) 큰 도끼를 휘두르며 곧장 수렴동으로 쳐들어갔다.(選平陽處安了營寨,傳令教巨靈神挑戰。巨靈神得令,結束整齊,掄著宣花斧,到了水簾洞外。)”

   중국 신화에서도 거령신을 발견할 수 있다. 위앤커는 『노사(路史)』, 『문선(文選)』, 『수경주(水經注)』 등에서 거령신에 대한 기록을 발견했는데, 그의 저서 『중국신화전설Ⅰ』 「개벽편(開闢篇)」에 실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비교적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다른 책에 기록되어 있는 거령(巨靈)이라는 천신에 관한 신화이다. 그는 원기(元氣)와 함께 태어났고 재주가 뛰어나 <산천을 만들어내고 강물을 흐르게 하였다>고 하니, 조물주의 자격을 갖고 있었다 하겠다. 그는 분수(汾水)의 하류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본래는 강물의 신으로 화산(華山)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 번 과시하였었다. 즉, 황하를 가로막고 있는 화산을 <손을 흔들고 발로 밀어내어 두 조각을 내서> 황하가 곧바로 화산을 지나갈 수 있게 하였으니, 그 후로는 돌아서 흐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금도 화산에는 거령이 산을 갈랐던 손과 발자국이 완연히 남아있다고 한다. 도가의 방사들은 아마도 이런 전설들에 의거해서 이 귀여운 강물의 신을 천지개벽의 조물주로 격상시켰을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의 소박한 신화는 이러한 조작과 수식을 거쳐 사라져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유년기를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거령신’이라는 이름을 듣고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한 거신병(巨神兵)이 아닐까.




p.205~206

거령신과 싸우는 손오공


   『요원전』에서 손오공은 거령신과의 싸움에서 도망치지만, 『서유기』에서는 그 반대다. “거령신은 도무지 원숭이 임금의 적수가 아니었다(巨靈神抵敵他不住).” 거령신과 손오공의 싸움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棒名如意,斧號宣花。他兩個乍相逢,不知深淺,斧和棒,左右交加。一個暗藏神妙,一個大口稱誇。使動法,噴雲曖霧;展開手,播土揚沙。天將神通就有道,猴王變化實無涯。棒舉卻如龍戲水,斧來猶似鳳穿花。巨靈名望傳天下,原來本事不如他:大聖輕輕掄鐵棒,著頭一下滿身麻。

   철봉 이름은 여의금고봉이요 도끼는 선화부,

   둘이서 덥석 맞붙으니 강약을 알 도리가 없고,

   도끼와 철봉이 좌우로 얼기설기 마주칠 따름이다.

   한편은 신묘한 계략을 몰래 감추고,

   또 한편은 큰소리 뻥뻥 쳐서 상대방을 놀라게 만든다.

   이쪽저쪽 술법을 부려 구름을 토해내고 안개를 삼켜가며

   있는 솜씨 없는 솜씨 한껏 뽐낸다.

   허공에는 흙먼지 뽀얗게 일고, 모래 바람이 소용돌이치는데,

   하늘의 장수 신통력에는 도력(道力)이 깃들고,

   원숭이 임금의 술법은 변화무쌍하다.

   철봉을 치켜드니 흡사 용이 물장난하듯,

   도끼날이 찍어드니 마치 봉황이 꽃떨기를 꿰뚫는 듯 절묘하기 짝이 없다.

   거령신의 명망이 천하에 두루 떨친다지만, 근본 실력은 애당초 적수가 못 돼.

   제천대성이 철봉을 가볍게 돌리니, 첫 수부터 온 몸뚱이가 저려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p.208~210에 걸쳐 묘사한 괴물 원숭이 육이(六耳, 소찬풍)와 거령신과의 사투를 보면, 어느 정도 원작인 『서유기』와 맞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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