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네 번째 시험관시술을 위해 강남 차병원에 다녀왔다. '강남 차병원 불임시술연구소'였던가... 근 1년 6개월이라는 기간에 걸쳐 역삼동에 위치한 병원에 다녔지만, 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달라진 것이라고는 9호선 공사로 인해 고갯길에 위치해있던 횡단보도가 제 자리로 환원된 것 정도? 그리고는 달라진 게 없다. 우리 부부는 아직 애가 없는, 뭐 그런 것.


   처음 시술을 할 때는 직장에 다니느라 아내가 어떤 시술을 받는지 몰랐었다. 뭐 어쩌다 한 번 나와 포르노를 틀어주는 작고 어두컴컴한 방에 들어가 수정을 위한 정액을 빼는, 그 정도의 수고,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시술에 실패하고, 두 번째 시술을 했던 올해 초에는 처음부터 함께 다녔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시험관 시술이라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우선 난포를 키우기 위해 배란 유도제를 맞았다. 하루에 두 번 -마치 당뇨병 환자처럼- 스스로 배주사를 직접 맞았다. 4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난포가 적절하게 커졌으면 난자를 빼내는 수술을 한다. 이 때 한 6개인가 나왔던 것 같다.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에 맞춰 남편인 나는 정자를 뽑았고, 그 뽑은 결과물들로 수정을 시켰다. 운이 좋으면 다 수정되는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3개가 수정이 됐었다. 4일 후, 3개의 수정란을 자궁에 집어 넣었다. 아내 말로는 마치 실뱀이 기어들어오는 듯한 불유쾌한 경험이었다고 했었다. 수정이 다 되면 세쌍둥이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는 알려진 바와 같다. 피검사를 통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데, 결과를 전해주는 간호사 선생의 목소리만으로도 임신 판정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이 때는 하이톤의 밝은 목소리를 들었다.


   그 이후 수정이 되기 위해 무려 6주간 매일 엉덩이 주사를 맞았는데, 나중에는 주사를 맞을 데가 없어서 굉장히 고생했었다. 그래도 병원에 가니 착상됐다고, 임신이라고 했었다. 이렇게도 애가 생기는구나. 가히 현대의학의 개가라 할 수 있구나.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좋아했었다. 그런데 10주차에 계류유산을 했다. 원인불명의 유산. 월급이 통장을 스치듯, 우리 아이도 그렇게 잠시 다녀갔다.


   7월 말에 3차 시술을 했다. 이번엔 그 결과를 아는데 짧았다. 이상하게도, 세 번째 시술 때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마음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무너진 것처럼 살고 있었으니까.


   딱 세 번만 하자고 아내하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내가 깼다. 그렇게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시술인데도, 굳이 한 번 더 하자고 했던 것은, 정부 지원이 세 번에서 네 번으로 바뀐 것도 있었지만(그래도 전체 진료비의 1/3수준이다...), 새로운 식구, 새끼 고양이 '양이'를 들인 것이 큰 이유가 됐다. 그 전까지의 아이가 추상적인 느낌이었다면, 양이를 통해, 이제 아이는 구체성을 띄게 되었다. 그래서 면목없이 아내에게 부탁을 했고, 아내는 고맙게도 이 힘든 일을 받아들였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내 욕심 혹은 내 욕망으로 누군가의 삶을 힘들게 할 줄은 정말로 몰랐었는데... 미안하고 고맙고. 술도 안마셨는데 그냥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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