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간 교육을 받았던 (구)산성초등학교에서.
이번 주말이면, 이제 정읍에 내려가는 것도 (공식적으로는) 마지막이 된다. 8주간의 귀농귀촌교육이 끝나는 시기, 그리고 연말이 다가오는 시기가 겹쳐서인지, 종강파티에 관한 들뜬 글들이 카톡 채팅방과 카페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수료식이 끝나면, 누군가는 교육에서 얻은 응원과 지식으로 계속 농사를 지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껴 다른 교육을 알아볼 것이며, 다른 누군가는 녹록치 않은 농촌 생활을 깨닫고 귀농을 포기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건 그 선택의 결정은 옳고 틀림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직 결정한 것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귀농포털을 만들어 귀농인들의 농산물 직거래 창구를 만들고 싶다. 농업인들과 소비자들을 직거래로 연결시키는 농촌 브로커(broker), 뭔가 접시 냄새가 나는 게 멋들어져 보인다. :)
이 농촌 브로커라는 발상은 내가 한 게 아니다. 교육 중 들었던 '지리산닷컴'의 '마을이장'이 이미 벌이고 있는 일이다. 지리산닷컴은 매일(은 아니고 그 자신의 표현대로 '가끔 생각날 때마다') 주변의 농부들을 편지 형태로 소개하고 그들의 농산물 직거래를 ‘연결’해준다. 이렇게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지만,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 그냥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진정한 브로커이다.
수수료가 없으면 어디서 수익을 내는지 궁금했는데, '지리산닷컴'이 수익을 내는 것은 펀드다. 일명 ‘맨땅에 펀드’라고 1,000개의 구좌를 개설, 펀드 투자금을 받아 농사를 짓고, 그 배당금을 농산물로 주는 형태이다. 올해에는 약 1억원을 굴려서 '남의 돈으로 잘 먹고 잘 놀았다'고 했지만,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달에 100만원 정도 월급을 받으며 일한다는 생각으로 운영을 했는데 녹록지 않다고 했으니까. 쉽지 않은 일이고 안쓰러워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농촌을 생각하는 '태도(attitude)'에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그는 농촌을 수익 대상이 아닌,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로 보는 것이다.
지리산닷컴은 구례를 중심으로 여러 농업인들을 직거래로 묶(을 수 있)었다. 지역을 중심으로하는 소모임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생긴다면 농촌은 훨씬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농촌 모습은 어떠한가. 생산자로서의 농민은 눈치만을 보며 산다. 돈을 빌릴 때에는 농협의 눈치를 봐야 하고,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때는 시군청의 눈치를 봐야 하며, 직거래로 물건을 팔 때는 소비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이 풀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리산닷컴은 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농사 짓는데 필요한 돈을 굽실거리면서 대출받은 게 아니라, 직접 당당하게 도시인들에게 받아왔으니까. 그 결과(수익)야 어떻든 간에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11월 초 밭에서 보았던 수박.
여름에 수박은 인기 상품이지만, 제철을 벗어난 수박은 그저 구경거리밖에 되지 못했다.
내가 꿈꾸는, 하고 싶은 일도 이와 비슷하다. 마음이 맞는 귀농인(혹은 농업인)들과 함께 지역내 소모임을 결성, 우리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라이브 중계 하듯, 글로 써서 알리는 것이다. 물론 결국에 최종 목표는 생산한 농산물 또는 가공식품을 파는 것이지만, 단순히 농산물을 파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골에서의 즐거운 생활’을 파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한 일상이 결국엔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에 대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규정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이유 없이 굽실거리는 것이 아닌, 생산자로서의 농민이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주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장기적으로는 직거래 농산물을 구매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넘어서 농촌과 도시를 연결할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네트워크가 되기를 꿈꾼다.
수익성을 기대할 수도 없고, 지나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임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하고 싶은 것은, 교육 동안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면, 조금 부족하게 사는 것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꿈이 없는 내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 꿈이 그냥 일장춘몽으로 끝날지, 진짜 현실이 될지는 결국 내게 달린 일이다. 어떻게 되든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일이 지금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있으니까.
11월 23일의 아침. 용이 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