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정읍에 가서 다섯 번째 귀농귀촌 교육을 받았다. 이번 주는 교육 장소가 내장산 초입에 있는 정읍농경문화체험장으로 바뀌어 정읍역에서 내장산으로 가는 171번 버스를 탔다. 때는 바햐흐로 단풍이 절정을 맞이하는 음력 10월 7일. 버스는 등산객들을 가득 채우고 출발했다. 정읍에 주말마다 (다섯 번째로) 내려왔는데 내장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못내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근처에서나마 내장산의 내음을 맡을 수 있어... 조금 서글펐다고 해야하나 아쉬웠다고 해야하나. :)


   이번 주에도 여러 교육을 받았는데, 일요일 하루는 온종일 아로니아 식재 실습을 했다. 아로니아는 10월 20일에 텃밭 실습장에서 식재실습을 했고 11월 3일에 농장견학을 했기에 어쩌다보니 전북귀농학교에서 총 세번의 집중 교육을 받은 셈이 되었는데, 이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우선은 아로니아가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앞으로 충분히 전망있는(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작물이라는 점에서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목적 외에도, 이제 2기수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전북귀농귀촌학교'의 안정적인 운영비 확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교육으로 여러 효과를 기대하는 김준성 대표님의 모습에서 농사 짓는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농부는 한 걸음을 걸어도 열 걸음 후를 생각한다. 쌀이나 고추같은 안정적인 작물이 아닌 이상, 아로니아 같은 특수작물은 풍요로운 수확을 준비함과 동시에 유행이 끝날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은 비단 농부뿐 아니라, 자기 사업체를 가진 수많은 자영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1월 10일. 가을의 흔적을 남기고 성큼 다가온 겨울의 날씨 속에서 교육생들은 아로니아 식재를 했다. 약 600여 평의 빈 땅을 개간하며 비닐을 씌우고 묘목을 식재하는 일은, 혼자 힘으로 한다면 아마도 며칠을 걸렸을 테지만 20여명의 인력들이 붙으니 금새 끝이 났다. 게다가 두 번째 반복하는 일이다 보니, 전체 그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술의 숙련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많은 인원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었다.


   같이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던가? (적어도 나의 경우) 회사에서의 일은 점점 개인화 되어간다. 내 할 일은 내가, 네 할 일은 네가. 사고가 나면, 역추적해서 원인 제공자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저 큰 공정 중에 하나를 책임지는 부품에 불과하다. 나 하나만 잘하면 되는 시스템. 아니, 남을 신경쓸 수 없는 체계. 그런 생활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땀을 흘리는 일은 정말로 벅·찼·다. 향약이니 두레니 품앗이니, 각기 명칭도 다르고, 행한 주체도 다르고, 일어난 지방도 다르지만, 결국엔 다같이 일을 하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저 조선시대 단어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나에게 귀농이란, 잃어버렸던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에 사는 것도 도시에 사는 것과 같이 처절하다면, 그 처절함 속에서 그나마 인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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