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 적장賊將은 원수를 갚지 못한 채 낙명落命하고 삼장三藏은 가르침을 얻지 못한 채 길을 떠나다


   삼장은 『경장(經藏)』, 『논장(論藏)』, 『율장(律藏)』의 세 가지 불교 경전을 이르는 말로, 경은 깨달은 자로서의 고타마 붓다의 말씀 또는 가르침, 논은 고타마 붓다 이후의 제자들이 경과 율에 대한 주석 등을, 율은 특히 계율에 대한 내용이다. 장(藏)은 산스크리트어로 piṭaka, 즏, ‘물건을 담는 바구니, 그릇, 창고’를 뜻하며, 고타마 붓다의 제자들이 고타마 붓다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가르침을 모아서 그 성격에 따라 세 가지 모음집으로 편성하여 ‘삼장(三藏, Tripitaka)’이라 불렀다.

   바로 이 삼장에 정통한 사람을 삼장비구(三藏比丘), 삼장성사(三藏聖師), 삼장법사(三藏法師)라고 불렀는데, 『서유기』가 워낙 유명해진 까닭에 고유 명사화된 느낌도 없지 않다. 여기 『요원전』에서 삼장은 당연히 현장을 가리킨다.



p.011~012

“이를 말이더냐! 단 하나뿐인 내 아우를 죽이고, 부하들은 물론 산채까지 모조리 앗아간 네놈을...! 내가 살려둘 성싶으냐!”

“나 또한 용아녀의 원수를 갚은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원수를 갚을 차례 아니냐! 얌전히 칼을 받아라!”


   『요원전』에서 금각대왕과 손오공의 결투는 총 세 번 이뤄지는데, 이는 『서유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원전』에서 금각과 손오공의 대화는 『서유기』에서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둘 다 두 번째 싸움에서 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요원전』에서는 두 번 모두 손오공이 먼저 싸움에서 피한 반면, 『서유기』에서는 두 번 모두 금각이 싸움에서 물러난다는 점이다.


惱壞潑妖王,怒發沖冠志。恨不過撾來囫圇吞,難解心頭氣。惡口罵猢猻:「你老大將人戲,傷我若干生,還來偷寶貝。這場決不容,定見存亡計。」大聖喝妖魔:「你好不知趣,徒弟要與老孫爭,累卵焉能擊石碎?」寶劍來,鐵棒去,兩家更不留仁義。一翻二復賭輸贏,三轉四回施武藝。蓋為取經僧,靈山參佛位。致令金火不相投,五行撥亂傷和氣;揚威耀武顯神通,走石飛沙弄本事。交鋒漸漸日將晡,魔頭力怯先迴避。

   어리석고 못된 마왕은 분노와 슬픔이 정수리 끝까지 치밀어 발악을 한다.

   교활한 원숭이 놈을 단숨에 움켜다가 한입에 씹어 삼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고, 가슴속 맺힌 원한을 풀어내기 어렵구나.

   독이 오른 입으로 원숭이에게 욕설을 퍼부으니,

   “이 악착같은 놈아! 어쩌자고 이렇듯이 사람을 농락하느냐! 내 부하들의 목숨을 그토록 많이 다쳐놓고, 이제 와서 보배까지 훔쳐가다니, 이번 싸움에서만큼은 내 결코 네놈을 용서하지 않으리. 반드시 생가 결판을 내고야 말 테다!”

   손대성도 뒤질세라 마왕에게 호통을 친다.

   “이 바보 천치 같은 녀석, 눈치코치도 모르느냐! 제자뻘도 못되는 놈이 이 손선생과 겨뤄보겠다니, 이야말로 ‘이란격석(以卵擊石)’, 달걀 던져 바위 깨뜨리려는 격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보검이 찔러들고 철봉이 마주쳐나가니, 쌍방은 피차간에 원수를 맺은 터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한 번 엎칠락, 두 번 뒤칠락, 저마다 승부에 목숨을 걸고, 세 번 뒹굴고 네 번째 돌아가며 무예 솜씨를 아낌없이 발휘한다.

   이 모두가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가는 스님을 위함이요, 영취산 뇌음사 부처님께 참배하고자 함인데, 금(金)과 화(火)가 서로 의기투합하지 못하고, 오행(五行)을 어지럽혀 화목한 기운을 다친다.

   위세를 드날리고 무예 솜씨 빛내며 온갖 신통력을 드러내니, 바위 더미 굴려 옮기고 모래먼지 흩날리며 있는 솜씨 없는 솜씨 한껏 부린다.

   칼끝과 철봉 자루 맞닥뜨리는 동안에 어느덧 날은 점점 어두워지니, 마왕은 힘에 부쳐 제가 먼저 몸을 피한다.



p.015

“이세적李世勣 장군께는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부상까지 입었으니 수하들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이세적의 원래 이름은 서세적(徐世勣)이다. 서세적은 이호(離狐, 산둥성山东省 허쩌시菏泽市) 출신으로, 수나라 말에 봉기한 군웅 중 한 명인 이밀(李密) 밑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이밀이 후에 왕세충과의 싸움에 밀려 당고조 이연에게 투항했을 때, 서세적은 이밀의 상황을 알지 못해 끝까지 저항을 하다가, 이밀의 항복 소식을 듣고 당에 투항했다. 당고조 이연은 서세적의 이야기를 듣고는 “서세적은 덕을 배반하지 않고 공로를 차지하려 들지 않으니 정말로 순수한 신하”라며 “이(李)라는 성을 내려주었다.” 그래서 그 후 이세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세적의 인생유전은 참으로 기막히다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데, 그 이야기는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특히 그의 정치 감각은 정말 절묘하다.), 우리가 이세적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666년 고구려 원정에서 평양성(平壤城)을 함락, 고구려를 멸망시킨 장수라는 점이다. 참고로 이세적은 돌궐도 멸망시켰다.



p.029

“은각아, 용서해다오! 네 원수가 눈앞에서 달아나는데도 속절없이 두고만 보다가 네 곁으로 가는 나를...!!”


   당군을 피해 도망치던 손오공이 금각의 절규를 듣고는 다시 돌아와 한 판 승부를 벌인다. 손오공이 그대로 도망갔더라면, 금각은 이세적에게 잡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각의 혼은 원한 가득한 망령이 되었을 것이고, 계속해서 손오공에게 붙었을 것이다. 그 망령의 나타남이 환상이라 할지라도, 손오공에게는 금각의 이 절규가 못내 가슴에 남았을 터,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승부를 거는 선택을 취했다. 둘의 싸움은 복수를 떠나서 ‘진짜 승부’를 보여주는데, 후에 이런 싸움은 홍해아와의 최후의 결투에서 한 번 더 반복된다.



p.035

금각의 죽음


   『요원전』에서 금각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서유기』에서는 다소 어이없게 죽는다. 손오공과 전투를 벌이는 금각대왕에게 저팔계와 사오정이 원군으로 가세하자, 조금씩 밀리는 틈을 타, 손오공은 꾀를 쓰는데, ‘자금 홍호로’를 열어 금각 뒤에 가서 금각대왕을 부르자, 상황을 모르는 금각대왕이 대답, 자금 홍호로로 빨려 들어가 죽게 되는, 다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

   더 힘 빠지는 사실은, 이렇게 요괴를 처치하고, 다섯 가지 보배를 얻은 손오공에게 난데없이 태상노군이 등장, 이 모든 것은 관세음보살이 ‘삼장법사 일행이 과연 이 난관을 헤치고 진정 서천으로 갈 뜻이 있는지를 시험’한 것이라며, 자신의 다섯 가지 보배를 돌려달라고 한 점이다. 금각은 태상노군의 금로(金爐)를 지키는 동자였고, 은각은 은로(銀爐)를 맡아보던 동자였다는 말과 함께, 죽은 줄 알았던 금각과 은각이 금빛・은빛 상투 달린 금각 동자, 은각 동자로 다시 재등장하니, 손오공을 비롯한 일행들의 그 허탈함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도(道)를 깨치는 것은 얼마나 기막히고 힘든 일인지를 『서유기』의 금각・은각 에피소드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다.



p.039

“그럼 지금 명주에 있는 건 이세민이란 말인가?”

“그래, 태자 이건성이 장안으로 돌아가기 무섭게 이번에는 이세민이 명주를 찾았다지... 이미 다 평정된 명주에 대관절 무슨 일인지...”


   역사의 빈틈을 파고들어 실제 역사는 바꾸지 않으면서, 그 주체만 살짝 바꿨다. 유흑달 토벌에 앞서 유흑달을 평정한 것은 태자 이건성이다. 그리고 유흑달은 명주에서 목이 베어 죽었다. 모로호시 선생은 이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둔 채, 이세민이 유흑달을 죽인 것으로 살짝 바꾸었다. 그래야 ‘유흑달-홍해아-이세민’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구축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이세민은 왕세충과의 전투에서 왕세충을 구원하러 온 두건덕을 생포, 장안으로 이송한 후 바로 장안 길바닥에서 참수했다. 이세민을 견제하려고 유흑달 토벌에 나섰던 이건성은 아마도 그처럼 신속했던 이세민을 의식해서, 유흑달을 장안으로 이송하지 않고 바로 죽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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