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 용아녀는 방황 끝에 마魔를 잊고 손대성孫大聖은 신진철神珍鐵을 얻다
p.222
“그래, 제천대성... 대성이라면 원수를... 황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원수를...”
지금 손오공에게 말을 하는 자는 제6회에서 황하의 수신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한 자이다. 그는 원수를 갚았지만, 다시 오공에게 나타나 자신의 원수를, 억울함을 갚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제천대성의 힘을 끌어낸 손오공은 수많은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이 목격했던,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것이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실제 원념인지, 아니면 손오공의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환상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러한 원념들이 무지기가 존재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요원전』에 등장하는, 원숭이 몸에 사람 얼굴인 괴수/짐승들은 『산해경』에 그 원형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몇 개만 적어 본다.
① 부혜(鳧徯)는『산해경・서산경(西山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람의 머리를 한 수탉의 모습을 하고 있고, 검산(鈐山)의 서남쪽에 잇는 녹태산(鹿台山)에 산다고 한다. 부혜는 이 새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며 이 새가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② 영소(英招)는 『산해경・서산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모습은 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호랑이 무늬에 새의 날개가 있으며 온 천하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③ 육오(陸吾)는 『산해경・서산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모습은 호랑이의 몸에 아홉 개의 꼬리,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 발톱을 하고 있다고 한다.
④ 알유(猰貐)는 『산해경・북산경(北山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소와 비슷하지만, 붉은 몸에 사람의 얼굴에 말의 다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⑤ 합유(合窳)는 『산해경・동산경(東山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돼지와 비슷하지만 사람 얼굴에 꼬리가 붉고 몸에는 누런 털이 나 있다고 한다. 마치 애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낸다. 이 짐승은 아주 흉악해서 사람을 해치며 잡아먹기도 한다. 이것이 나타나면 홍수가 일어난다고 한다.
⑥ 능어(陵魚)는 『산해경・해내북경(海內北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람의 얼굴에 손과 발이 있고 물고기의 몸체로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모로호시 선생은 『제괴지이』「견토(犬土)」편에서 돼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과 사람의 몸에 돼지의 얼굴을 한 괴물이 등장했었는데, 익숙한 것들의 이상한 조합으로 기이한 공포를 이끌어냈었다.
p.240
“하지만 오공, 너는 달라, 너는 대성 본인에게 직접 칭호를 물려받았잖아... 너는 대성과 맞먹는 힘을... 아니, 대성 그 자체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난 그런 건 되지 않을 거야...”
“그래... 이대로 단 둘이 산 속에 숨어 사는 게 나을 지도... 모든 걸 버리고...”
자신의 여성을 억제하면서 살아온 용아녀는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장면에서, 여성에 대한 한계, 혹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 충분히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조금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명백히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을 끌어오고 있다. 『아녀영웅전』은 청(淸)나라 때 문강(文康)이 창작한 소설로 아녀자의 정과 영웅의 기개를 겸비한 하옥봉(何玉鳳)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옥봉은 영웅의 모습과 아녀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전반부에는 무협으로서의 영웅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고, 후반부에는 남자 주인공이자 남편인 안기(安驥)의 현모양처로서의 모습을 나타낸다. 좋게 말하면, 영웅과 여성의 모습을 녹아낸 이상적인 여성 영웅이요, 나쁘게 말하면, 얼마나 잘났든 남편에게 순종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바로 이 부분이 『아녀영웅전』의 핵심이고, 작가가 바라던 이상인 것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여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원전』에서 용아녀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였다. 손오공을 백운동으로 데려와 그의 천명을 알려주고, 제천대성의 힘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그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길을 알려준 역할. 이런 기능적인 역할을 위해서 일부러 선택한 캐릭터가 『아녀영웅전』의 하옥봉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했다. 그것도 너무나 가슴 저리게...
용아녀의 역할에 비판인 독자들이라면, 후에 등장할 지용부인(地湧夫人), 손이랑(巽二郞), 나찰녀를 참고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들 모두 각각 다른 의미로 여성성의 한계에 부딪힌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녀영웅전』은 2009년 지만지 출판사에서 출간됐었는데, 아쉽게도 완역이 아니라 발췌번역이다. 40회본 소설 중에서 고작 3회만 수록이 되어 있어서, 감히 이 책을 읽은 것이라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아녀영웅전』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터라, 어쩌면 내가 오독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저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무면목(無面目)」에서 무고지화(誣蠱之禍)를 일으켜 한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난대(혼돈混沌)가 애첩 여화와 산 속에서 숨어 사는 것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 결과는 비참했다.
p.246
“용아녀, 섣부른 짓을... 계곡의 영기가 잠깐 사라졌다고 해서 지금껏 쌓은 수행의 성과를 죄다 날릴 셈이냐...”
죄다 날릴 셈이냐... → 죄다 날린 것이냐...
p.051에서 진원대선이 말하길 “만일 네가 단 한 번이라도 사내와 몸을 섞게 된다면 수행 끝에 얻은 일신의 능력을 모조리 잃고 말 것”이라는 말로 보아, 남자와 동침을 하면 제천현녀의 힘을 다시는 사용 못하는 게 맞다. 통비공은 용아녀가 오공과 동침한 상황을 먼저 확인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섞인 말 보다는, 포기하는 한탄의 말을 해야 하는 게 맞다.
p.257
“대성, 네가 바라던 대로 봉을 뽑았다! 만족하느냐? 좋아, 어디 그렇게 천년만년 바위에 들러붙어 실실 웃어봐라! 이 봉을... 너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실컷 사용해줄 테니까!”
그리고 방금 전까지 제천대성과 지살성의 운명에 대해 회의하던 오공이 드디어 금고봉을 뽑았다. 아녀의 정을 지니던 자가 영웅의 기상을 뽐내려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