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 내광사來光寺에서 소녀가 승려를 찾고 상주성相州城에서 노파가 재물을 탐하다
p.049
“어머니는 수나라 양제의 운하 공사에 부역으로 끌려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고구려 원정으로...”
누노메 조후는 “양제의 ‘양(煬)’이라는 글자는 ‘예를 버리고 민심을 멀리한다’, ‘하늘에 거역하고 민을 학대한다’라는 뜻의 시호로서, 악한 군주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수양제는 역사적으로 실정의 이미지, 폭군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데, 그러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러 사적에 실려 있는, 민중에 대한 과도한 부역이다.
먼저, 605년에 낙양(洛陽)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이 새로운 수도(장안을 서경西京이라 부르고, 낙양을 동경東京이라 했다) 조영을 위해 엄청난 수의 백성들이 동원되었는데, 두보(杜寶)의 『대업잡기(大業雜記)』에 따르면, 성벽공사에 70만, 토공감(土工監)의 상역(常役)에 80만, 목공・기와공・금공・석공 각 10여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其內諸殿基及諸墻院又役十餘萬人,直東都土工監,常役八十餘萬人;其木工、瓦工、金工、石工,又役十餘萬人).
그리고 같은 해(605년)에 화이허와 황허를 연결하는 통제거 공사를, 608년에 황허와 탁군을 연결하는 영제거 건설을, 610년에는 창장과 위항을 연결하는 강남하 공사를 시작했으니, 당시의 수나라는 온통 나라 전체가 공사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대운하 공사가 끝난 611년, 수양제는 고구려 원정을 준비, 612년부터 3년간 세 번에 걸친 고구려 원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뒷이야기는 알려진 바와 같다.
무리한 공사의 연속으로, 부역할 백성들이 부족, 결국 대운하 건설 당시에는 면제대상이었던 부인들까지 징발되었는데, 『요원전』에서 용아녀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사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p.058
“때마침 천축에서 오신 큰 스님께서 상주에 계시다고 하여 걸음을 옮기던 참이었습니다. (...) 가보리迦菩提 대사라고 하시는 천축 스님께서 이 근처 내광사來光寺에 와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르침을 청하고자 찾아뵙던 도중 이 산길로 접어들어...”
역사 속의 현장 스님은 형주를 지나, “상주에서 혜휴(慧休) 법사를 만나 의심나는 것을 질문했다(至相州,造休法師)”고 했는데, 『요원전』에서는 천축에서 온 가보리 대사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게다가 제6회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상주로 가는 길이었다고 했는데, 해가 바뀐 지금도 상주로 가는 길이다. 아마도 손오공과 현장, 그리고 천축을 연결시키기 위해 역사를 조금 비튼 것 같다.
천축에서 온 가보리 대사는 『서유기』에서 손오공에게 성과 이름을 내려주고 장생(長生)의 도리와 72가지 변화 술법, 그리고 한 번에 십만 팔천 리를 갈 수 있는 근두운(筋斗雲)을 타는 법을 가르친 수보리조사(須菩提祖師)에서 차용한 것 같은데, 재미있는 것은 수보리 조사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인도의 고승 수부티Subhūti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인도의 고승(Subhūti)이 동승신주의 도사(須菩提)에서 다시 인도의 승려(迦菩提)로 순환이 된 셈이다. 가보리 대사의 迦는 석가모니(釋迦牟尼, Shakyamuni)의 가에서 온 것이다. 그러니까 가보리 대사를 원 발음에 가깝게 부른다면 Kyabhūti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 중요한 것은 아니다. :)
실제로 현장 스님은 중국을 떠나기 전, 천축에서 온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현장이 장안에 도착했을 때, 인도에서 온 바라빈가라미트라(波羅頻迦羅蜜多羅)라는 고승이 불경을 강론하고 있어서 청강을 했는데, 바로 그 때의 강론이, 현장을 인도로 가게 한 어떤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p.061
“주지 스님, 소승이 계율을 깨고 그만 여체를 건드리고 말았나이다!!”
모로호시 선생의 장점이자 특징이라면, 이야기의 흐름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혹은 코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인데, 바로 이 상황에서, 폭주하듯 달려온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부여했다.
웃자고 한 말에 심각하게 대꾸를 하자면, 당시 정식 승려가 되기 위해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야 하는데, 이 구족계에 따라 비구승은 250가지 계율을 지켜야 하고, 비구니는 300여 가지의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하니, 그 중 여체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계율이 충분히 있을 만도 하다. 이 계율은 “불교 학문을 배우고 수행하는 것, 승려들의 일상생활과 단체생활, 개인적인 수행과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세세한 항목들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출가하지 않은 일반 거사(居士), 신도들에게는 오계(五戒)나 팔계(八戒)가 주어지는데, 자세한 것은 저팔계(豬八戒)가 등장할 때 다루기로 한다.
p.063
“뭐야, 이 절은 소림사少林寺 분원分院이라도 되나? 오냐오냐 말로 하려니 이런 꼴이라니깐!”
허난성[河南省] 의 정저우[鄭州] 쑹산[嵩山]에 위치한 소림사는, 우리에게 절이라기보다는 무술을 수련하는 도장(道場), 혹은 무협소설에서 무술의 분파(分派)로 여겨지는데, 무승(武僧)들로 유명하지만, 그나마 전해오던 무술들도 문화대혁명 때 완전히 파괴되어 계승이 끊겼다고 한다. (후에 절은 복원했고,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 중 유명한 이야기로는 620년, 이세민이 왕세충을 깨뜨리기 위해 낙양에서 힘겨운 전투를 벌일 때, 소림사에서 온 13인의 무승들이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620年唐太宗攻打洛陽,因得到少林寺13武僧生擒駐守轅州的王世充的侄子王仁則立下戰功後) 이들 승려들이 단순히 전투에 참여했는지, 아니면 무공을 사용한 고수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무튼 소림사에 대한 소문은 이때 퍼졌을 것이고, 무술을 하는 승려에 대한 이미지도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소림사는 현장 스님에게도 각별한 사찰이기도 한데, 후에 구법 여행을 마치고 귀국, 당태종을 만나서 올렸던 청원 중 하나가 ‘소림사로 가서 경전 번역 사업에 종사’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림사는, 508년, 북인도 출신의 승려 보데류지(菩提留支, Bodhiruci)가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대량으로 지니고 와 중국어로 불경을 번역한 곳이기도 하다.
p.067
“또 도적들이! 한패인가?!”
용아녀가 소림사 분원이라고 조롱했던 내광사가 도적들에게 약탈을 당하는 이 장면은 소림사가 홍건적들(고려를 침공한 그 홍건적들 맞다!)에게 약탈을 당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원나라 말기 홍건적의 난 중(1351~1366), 홍건적들이 소림사를 습격, 불상의 금박을 벗기고, 복장유물(腹藏遺物,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불경, 보물)을 찾기 위해 불상을 파괴하자 승려들이 다 도망가고, 홍건적의 난이 진압될 때까지 한 명도 못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소림사에서는 이 이야기를, 불목허니로 있던 긴나라왕(紧那罗王)이 불쏘시개 하나로 홍건적들을 다 때려잡았다는 이야기로 뻥을 쳤는데, 바로 이 긴나라왕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유명한 ‘소림사 주방장’의 이야기이다.
p.071
“그렇게 먼 데서 어찌 중원까지 오셨나요?”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 세상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일세.”
가보리 대사의 이 말은 현장이 천축으로 구법여행을 떠날 때 다졌던 마음가짐과 흡사하다. 가보리 대사가 불교의 발원지에서 제대로 배운 불법으로 중국의 중생들이 보리를 얻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현장은 제대로 불법을 배워 중국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먼 인도로 떠나는 것이다. 현장이 인도로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요원전』 3권에서 해당 이야기가 나올 때 자세히 다루는 것으로 한다.
p.072~074
가보리 대사와 통비공과의 싸움
통비공이 가보리 대사를 죽이려고 요술(妖術)을 부리는데, 가보리 대사는 불경인지 주문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외우고, 결국 통비공은 본 모습을 보이고 도망간다. 가보리 대사가 외운 것은 주문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3에서 주문을 외우는 승려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북인도 오장나국(烏仗那國, Uddiyana)의 승려들이 그러한데, “이들은 모두 대승을 익히고 있으며 선정에 잠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능히 글을 잘 외지만, 심오한 뜻을 깊이 궁구하지는 않는다. 계행이 맑고 깨끗하며 특히 금주(禁呪)에 능하다(並學大乘,寂定為業,善誦其文,未究深義,戒行清潔,特閑禁呪。)”고 적혀있다. 금주란 다라니(陀羅尼)로 ‘석가의 가르침의 정요(精要)로서 신비적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呪文)’을 뜻하는데, 『대당서역기』 전체를 통틀어, 그러니까 현장이 다녀 본 130여개국의 나라 중 다라니를 외고 있다고 기록한 곳은 이 나라뿐인 것으로 보아, 가보리 대사는 우디야나 출신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주문으로 요괴를 제압하는 것은 『서유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삼장법사가 14회에서 손오공을 컨트롤하기 위해 사용하는 긴고주(緊箍呪), 관세음보살이 18회 흑대왕・42회 홍해아를 제압할 때 쓴 금고주(金箍呪)・금고주(禁箍呪)가 있으며, 26회에서 인삼과나무를 살려낼 때 불경과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이런 것은 인도와 중국, 불교와 도교, 고대의 무술(巫術) 등이 서로 합쳐지고 걸러져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불교에는 구병시식(救病施食)이라는 의식이 있는데, 이른바 ‘귀신병’이라고 하는 빙의현상에 의한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종의 퇴마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귀신을 없애거나 쫓아내는 것이 아닌 음식을 주고 법문을 알려주어 귀신을 불법에 귀의시키기 위한 의식으로 법력(法力)이 높은 승려만이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담이지만, 예전 한국 공포 영화 〈망령의 곡〉에서, 마지막에 주지 스님의 불교 파워로 귀신을 물리치는 장면(특히 염주를 투척하니 귀신이 삼단 텀블링을 하며 괴로워하는 그런 괴이한 퇴마장면)은 〈엑소시스트(The Exorcist)〉의 퇴마장면이 참으로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저릿한 박력을 선사했던 기억이 난다.
p.076
“천축에 원신猿神이 있어, 지상에 재앙 된 자들로 하여금 투전승자鬪戰勝者로써 거듭나게 하리라 -”
뒤에 손오공과 용아녀가 해석한 것을 옮긴다면 “인도에 있는 원숭이 신이 지살의 운명을 지닌 자들을 천강의 운명으로 바꿔주리라.” 정도가 될 것이다. 제천대성 무지기에 따르면 지살과 천강 모두 난을 일으키도록 되어있지만, 백운동의 석벽에 기록된 것에 따르면 지살은 실패할 운명을, 천강은 성공할 운명을 지닌 것으로 되어있다.
정리해본다면, 무지기는 자신의 의지를 지닌 인간들, 제천대성의 칭호를 받은 이들이 난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원할 뿐이지, 그 난의 성공/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무지기의 의도를 아는 누군가가 무지기가 모르는 글자로 이런 비밀을 남겨 놓은 것이고, 이것을 확인하는, 지살성의 운명을 지닌 이들이 헛된 죽음을 겪지 않도록, 무지기가 내린 운명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도의 원숭이 신은 누굴 가리키는 것인가? 하누만(Hanumān)이라고 조심스럽게 확신해본다. 하누만은 인도의 많은 신들 중에서 지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신이다. 하누만에 대한 이야기는 『라마야나(Rāmāyaṇam)』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섬기는 라마(Rāmā)에 대한 헌신성, 충성심은 물론이고, 괴력과 민첩성 등으로 볼 때, 『서유기』의 손오공 역시 하누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된다. 『라마야나』에서 하누만은 모든 악의 파괴자이자 모든 고난의 추방자로, 라마의 모든 장애와 고난을 제거한다.
하누만, 라마, 시타, 라크쉬마나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면, 무지기로부터 제천대성의 칭호를 받은 손오공, 그리고 제천현녀의 칭호를 받은 용아녀 모두 지살의 운명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인도에 있는 원숭이 신이, 지살의 운명에 있는 자들을 투전승자가 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로써 손오공과 용아녀가 인도로 가게 될 명분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명쾌하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바로 저 ‘투전승자’라는 단어 때문인데, 이 단어는 명백히 『서유기』 100회에서 손오공이 석가여래에게 받는 칭호 ‘투전승불(鬪戰勝佛)’에서 차용한 단어로 ‘싸움을 하여 승리한 부처님’의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싸움은 외적인 치고받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치성하는 번뇌와 잡념과 망상을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천축에 있는 원숭이 신은 거대한 맥거핀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원숭이 신의 유무가 아니라 ‘천축에 가는’ 것이다.
p.080
“유흑달의 패배다... 예언대로야...”
“하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어... 홍해아도...”
“불과 수백 기로 겨우 달아났잖아. 틀렸어. 결국에는...”
아마도 지금 『요원전』에서 다루는 유흑달의 패배가 『자치통감』권190에 기록된 “(622년) 유흑달은 범원(范願) 등 200여 기병과 돌궐로 도망하여서 산동이 모두 평정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범원은 『요원전』제8회에서 죽는 것으로 나왔다. 아마도 홍해아가 범원의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돌궐로 간 유흑달은 622년 6월에 돌궐의 군사들과 정주(定州, 허베이성河北省 바오딩시保定市)를 약탈, 옛 장수들과 군사들을 규합한다. 하나 더 첨부하자면, “그해 10월 기유일(1일)에 제왕 이원길에게 산동에서 유흑달을 토벌”하라는 조서가 내렸지만, “이원길은 유흑달의 군사가 강하다는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나아가지 아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p.081
“자네를 멸하는 것은 사교의 신도, 운명도 아닐세... 자네 자신 안에 있는 것, 바로 자네의 마음이야... 지금 그대로 지내다간 자네는 필경 자신의 분신에 의해 파멸할 걸세...”
『요원전』 전체에 걸쳐 다루는, 하나의 몸속에 들어있는 마성(魔性)과 불법(佛法)의 동거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역시 고승은 고승이시다!) 굳이 마성이니 불법이니 할 필요 없이, 악심과 선심으로 표현해도 되겠다. 인간에게는 악심과 선심 두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이 두 마음 중 어느 하나 우위를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을 규정하고 표현한다. 악심과 선심 혹은 마성과 불법의 싸움 속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치성하는 번뇌와 잡념과 망상을 싸워 이기는 자가 바로 투전승자/투전승불이다. 나를 이기는 자가 나를 구원할 수 있고[小乘], 나를 구원한자가 대중을 구원할 수 있다[大乘]. 불교의 가르침은 나[自我]를 찾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이야기는 후에 ‘사마邪魔안의 부처佛陀, 부처佛陀안의 사마邪魔’라는 주제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