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 평정산平頂山에서 아녀兒女가 무리를 꾸짖고 취의청聚義廳에서 영웅英雄이 봉을 휘두르다



p.299

“군사를 몰고 온 것은 이건성이었어. 아군은 각지에서 패하고 영제거永濟渠쪽으로 피했지. 이건성도 수비 병력을 남긴 뒤 추격에 나섰고.”

“동쪽으로? 그럼 명주는 어떻게 됐지?”


   『자치통감』권190을 보면, 당시 유흑달을 공격한 것은 세자 이건성이 아니라 둘째 이세민이다.

   “(622년) 진왕 이세민의 군사가 획가(獲嘉)에 도착하자 유흑달은 상주(相州)를 버리고 물러나서 명주(洺州)를 지켰다. (정월) 병신일(14일)에 이세민은 다시 상주를 빼앗고 명수(洺水)의 위쪽에 군영을 늘어놓고 그들을 압박하였다.” 획가는 현재 허난성[河南省, 하남성] 신샹시[新乡市, 신향시]이고, 상주는 허난성 허난성 안양시(安阳市)이며, 명주는 당시 유흑달의 도읍지로 현재 허베이성[河北省, 하북성] 한단시(邯郸市) 융녠현[永年县, 영년현]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건성도 유흑달 토벌에 참가했지만, 그것은 622년 말의 일이며, 당시 태자를 따르던 왕규와 위징이 태자에게 유세, 이세민을 견제하고, 공로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영제거는 수나라 양제 때인 608년에 최초로 개통된 운하이다. 길이는 2,000km 정도고, 북쪽 허베이성 친수이[沁水, 심수]를 황허[黃河]까지 끌어 합치고, 허난성 우즈현[武陟縣, 무척현] 부근의 황허에서 갈라져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톈진[天津, 천진] 부근에 이른다.




p.302

“여기 산적 두목은 형제 둘이서 졸개들을 이끌고 있는데... 원래는 조무래기 산적에 지나지 않던 녀석들이 전란을 틈타 세력을 넓히더니... 지금은 자기들 멋대로 금각대왕金角大王이라느니 은각대왕銀角大王이라느니 임금 행세를 하고 있지.”


   금각대왕과 은각대왕은 『서유기』33회~35회에 걸쳐 등장하는 요마(妖魔)들이다. 33회부터 등장하는 요마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삼장법사의 고기를 먹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 이유는 삼장법사의 고기를 먹으면 불로장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이후로 삼장을 빼앗으려는 자들과 삼장을 지켜야 하는 자들과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요마들은 특별한 술법이나 신통한 보배들로 삼장법사 일행의 혼을 빼놓는데, 금각과 은각의 경우는 자금 홍호로(紫金紅葫蘆)와 양지옥 정병(羊脂玉淨甁), 그리고 칠성검(七星劍)과 파초선(芭蕉扇), 황금승(幌金繩)이 있다. 특히 자금 홍호로와 양지옥 정병이 독특한데, 『서유기』에서 묘사한 두 보배의 특별함은 다음과 같다.

   “이 보배의 밑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아가리를 땅으로 향해 놓은 다음, 그놈의 이름을 불러서 응답하기만 하면 그대로 병 속에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그럼 즉시 태상노군의 ‘급급여율령봉칙’이라는 부적을 아가리에 붙여놓습니다. 그 상태로 한 시진 삼각이 지나면 그놈의 몸뚱이가 녹아서 고름이 되어버리고 만답니다. (把這寶貝的底兒朝天,口兒朝地,叫他一聲,他若應了,就裝在裡面;貼上一張『太上老君急急如律令奉敕』的帖子,他就一時三刻,化為膿了。)”



p.304

“나는 금각대왕의 제일가는 심복, 정세귀精細鬼 한당韓當이다. 단 둘이서 평정산을 찾다니 배짱이 두둑한 건가? 아니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찾아온 얼간이들인지 모르겠구나?!”


   『서유기』에서 은각은 손오공을 삼장 일행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태산압정(泰山壓頂)’의 술법을 사용, 손오공을 수미산(須彌山), 아미산(蛾眉山), 태산으로 찍어 눌러 버렸다. 그 후 깔끔한 뒤처리를 위해 자금 홍호로와 양지옥 정병을 사용해 손오공을 녹여 없애려는 계획을 짜고 두 부하를 지명하는 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정세귀다. 제일가는 심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수많은 부하들 중에서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서 호출됐을 텐데, 아쉽게도 손오공에게 완전히 속아 두 보배를 빼앗기고 만다.

   그래도 의리는 있어서, 손오공에게 속은 것을 깨달은 다른 요괴 영리충(伶俐蟲)이 달아나자고 하자, 정세귀는 “사실대로 얘기해서 변명이 통하면 목숨을 부지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맞아죽으면 그만”이라며 다시 소굴로 돌아간다.

   한당이라는 이름은 삼국 시대 오(吳)나라 장수인 한당과 같은데, 특히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한당은 황개(黃蓋), 정보(程普), 조무(祖茂)와 함께 사천왕급으로 등장하지만, 『요원전』에서는 그저 동명이인으로 취급하는 게 나을 것 같다.



p.305

“다 알고 왔다! 냉큼 너희 두목에게 전하거라! 오행산五行山의 용아녀가 금각・은각에게 볼일이 있노라고!”


   『서유기』에서 오행산은, 손오공이 천상에서 옥황상제의 자리를 요구하며 분탕질을 하고 있을 때 석가여래(釋迦如來)가 간단히 제압, 손바닥으로 눌러 만든 산이다. 석가여래의 다섯 손가락이 금・목・수・화・토의 봉우리가 잇따른 산악으로 변하여 손오공을 꼼짝 못하게 눌러버렸는데, 이 다섯 산봉우리를 이름하여 오행산이라고 한다.

   석가여래는 오행산을 떠나면서 그곳의 토지신을 불러 “그놈이 배고프다고 하거든 무쇠 알을 먹이고, 목마르다고 하거든 구리 녹인 물을 마시게 해주어라. (但他饑時,與他鐵丸子吃;渴時,與他溶化的銅汁飲。)”라고 했는데, 『업설 지장경(業說地藏經』제3품 관중생업연품(觀衆生業緣品)을 보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대한 설명 중 “생가죽으로 목을 조르고, 뜨거운 쇳물을 몸에 붓고, 배 고프면 쇠 구슬을 삼키게 하고, 목 마르면 쇳물 마시게 하기를 해가 다하고 겁이 다하여 한량 없는 나유타(那由他) 겁이 지나도록 고통이 잠시라도 끊일 사이가 없으므로”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손오공에게 있어 오행산은 무간지옥임에 다름없다.

   『요원전』에서 용아녀가 오행산에 있다는 것은 『서유기』의 손오공, 즉 제천대성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치임을 알 수 있다.



p.307

“그렇지, 파산호巴山虎! 네가 홀랑 벗겨버려라!”


   『서유기』에서 자금 홍호로와 양지옥 정병을 손오공에게 빼앗긴 은각은 자신의 곁에서 늘 시중을 드는 파산호와 의해룡(倚海龍)을 시켜서 압룡산(壓龍山) 압룡동(壓龍洞)에 사는 노모를 초청해 황금승을 빌려 손오공을 잡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들은 심부름 가는 길에, 손오공이 여의봉으로 이들의 뒤통수를 한 대씩 후려갈겨, 즉사하여 고기 떡이 되고 만다.



p.312

“여기는 지하 곳간이잖아!”


   『요원전』에서 은각과 부하들의 이 기막힌 속임수는 『서유기』의 자금 홍호로가 연상된다. 은각의 자금 홍호로는 이름에 응답하면 그대로 빨려들어가 빠져나올 수 없는 무시무시한 물건이다.



p.324

“어디 해볼 테냐, 은각! 제천현녀齊天玄女 용아녀를 얕보다간 매서운 맛을 보게 될 게다!!”


   비로소 제5회(p.179)에서 통비공이 말한 ‘현녀’는 제천현녀임이 밝혀졌다. 현녀와 통비공 그리고 백운동의 개념은 『평요전』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한데,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구천현녀를 제천현녀로 바꾸어 구천현녀와 원공의 관계를 제천현녀와 통비공 또는 제천현녀와 제천대성 무지기의 관계로 넓혀놓았다.

아무튼 용아녀가 자신을 제천현녀임을 밝힘으로써 왜 손오공을 위험에서 구해주고 같이 움직이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된 셈이다.



p.325

“하지만 용아녀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니 함정을 빠져나와서는 은고봉銀箍棒을 종황무진 휘둘러 산적들을 차례차례 때려눕히지 뭐겠습니까. 그러자 분통이 터진 은각! 쌍수도雙手刀를 꼬나들고 그 수라장 한복판에 뛰어들어 칼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더니...”


   용아녀가 사용하는 은고봉은 (당연하게도)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사용하는 여의금고봉과 관련이 있다. 자세한 것은 금고봉이 등장하는 제11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한다.

   은각이 쌍수도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요원전』에서 묘사한 것은 쌍수도가 아니라 국지창(菊池槍)에 가깝다. 국지창은 일본 남북조 시대에 규슈 일대에서 사용된 직창의 일종이다. 쌍수도의 원래 명칭은 장도(長刀)인데, 칼이 길어 두 손으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쌍수도라 불린다고 한다. 뭐 어떠한 작품을 그려도 일본과 연관을 시키는 모로호시 선생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쌍수도


국지창


   『서유기』에서 은각이 사용하는 것은 칠성보검(七星寶劍)이다. 은각이 손오공과의 전투에 임하기 전의 모습을 묘사한 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頭戴鳳盔欺臘雪,身披戰甲幌鑌鐵。

腰間帶是蟒龍觔,粉皮靴靿梅花摺。

顏如灌口活真君,貌比巨靈無二別。

七星寶劍手中擎,怒氣沖霄威烈烈。

   머리에는 봉황 장식 투구를 썼으니 그 빛깔이 섣달 보름 백설인가 속을 만하고, 몸에 걸친 전투용 갑옷은 빈철(鑌鐵)을 두드려 만들어 눈부시게 번쩍거린다.

   허리에 두른 것은 이무기의 힘줄로 엮은 망룡근(蟒龍觔)이요, 무두질한 가죽 장화에는 매화 꽃무늬로 테두리를 꾸몄다.

   얼굴 모습은 관강구에 살아 있는 현성 이랑진군을 빼어 닮았고, 생김새는 거령신(巨靈無)에 견주어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칠성보검을 손에 잡고 휘둘러가며, 노기 충천하여 내닫는 위엄이 늠름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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