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 괴동怪童은 풍랑을 틈타 달아나고 맹아猛兒는 흉검凶劍을 휘두르다


p.239

“화과산에서 붙들린 대성이 어째서 황하에 있었지? 아니... 그보다, 그게 정말로 대성이었을까... 마치 또 다른... 그냥 일개 하등한 요괴 같았어...”


   『요원전』에서 무지기는 “불사신”이며 “어디에나 있”다고 했다. 황허에서 나타난 무지기가 한 개인의 원한으로 불려온 것으로 보아, 무지기는 실체가 없는 인간의 원혼이 만들어내는 원념 같은 것일지 모른다. 반면 화과산에 나타난 무지기는 그러한 개개인의 원념이 모여 집단성을 이루었을 때 나타났었다.



p.244

“당시 천하의 판도로 말할 것 같으면 열에 아홉은 거의 당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습니다만 고개도高開道, 서원랑徐円朗 등 아직도 당에 복속되지 않은 세력이 남아 있었지요. 그 중에서도 유흑달은 하북을 거점 삼아 당에게 마지막까지 완강히 저항한 군웅 중 마지막 한 사람이었답니다.”


서원랑徐円朗 → 서원랑徐圓朗 (역사 속 인물, 고유명사이니 통자 대신 본자를 써야, p.406 수말당초 군웅할거도의 徐円朗도 수정)


수말 군웅도


   하왕(夏王) 두건덕(竇建德)이 죽은 후, 두건덕의 남은 장수들은 난을 일으키기로 모의했다. 이들은 점을 봤는데, 유(劉)씨를 주군으로 삼는 게 길(吉)하다는 점괴로 유흑달(劉黑闥)을 주군으로 삼았다. 그 후 유흑달이 유현을 함락시키니 숨어있던 두건덕의 옛날 무리들이 점차 규합해서 반년 만에 두건덕의 옛날 영역을 회복하고 돌궐과 연합해 당을 압박했다. 이와 동시에 돌궐은 지속적으로 당을 침략하기 시작, 결국 고제 무덕 4년(621년) 12월 정묘일(15일)에 (이연은) 진왕 이세민과 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에게 명령을 내려서 유흑달을 토벌하게 했다.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9)

   『요원전』 화과산에서 무지기를 제압한 이빙(李冰)은 두건덕 휘하의 장수였다고 했고, 손오공과 같은 배를 탄(글자 그대로!) 홍해아는 ‘유흑달 진영에서는 제법 유명한 몸’이라고 했는데 유흑달 역시 두건덕 휘하의 장수였다. 오공의 마을 사람들을 깡그리 도륙한 이원길은 유흑달을 토벌하기 위해 왔다. 두건덕과 유흑달은 『요원전』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인물과 인물을 연결하는 고리인 셈이다.



p.245

“그러던 어느 날 밤에는 결국 한 무리의 도적떼가 쳐들어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는 두목의 여자로 끌고 가 버렸지. 어머니는 도중까지 나를 데리고 갔지만, 도적들이 거치적거린다면서... 나를 발가벗겨 나무에 매달아놓고는 그대로 가버리더군.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나를 구해준 것이 바로 유흑달 어르신이란 말씀이야.”


   홍해아의 가슴 아픈 옛 과거는 『서유기』40회에서 삼장법사와 그 제자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미혹에 빠뜨릴 때 사용한 방법과 그 묘사가 같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홍해아는 삼장법사의 고기를 먹기 위해 삼장법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드디어 삼장법사를 발견한 홍해아는 삼장을 낚아채려 하다가 그 주위에 있는 무시무시한 세 제자들 때문에 머뭇거린다. 홍해하는 삼장의 “착한 마음씨를 발동시켜 흘려놓고 기회를 엿보아 채뜨리(或者以善迷他,卻到得手)”기 위해 “으슥하게 후미진 산비탈로 들어가 몸뚱이 한 번 꿈틀하더니, 단숨에 일곱 살쯤 들어 보이는 장난꾸러기 어린애로 둔갑한 다음,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알몸뚱이가 되어 굵다란 밧줄로 제 팔다리를 꽁꽁 묶어 가지고 높다란 소나무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고래고래 악을 쓰기 시작했다.(去那山坡裡,搖身一變,變作七歲頑童,赤條條的身上無衣,將麻繩綑了手足,高吊在那松樹梢頭,口口聲聲只叫:)”


p.247

“장남 건성健成은 만만치 않은 인물이고 둘째 세민도 교활한 위인이지만, 셋째 원길은 하찮은 인간이라지.”


   형과 아우를 죽이고 황제가 된 이세민의 영향으로 분명 이건성과 이원길은 사료에서 폄하되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원길은 정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진순신은 그의 저서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中国の歴史)』에서 여러 사료에서 보이는, 마저 다 지우지 못해 남아있는 이건성의 공적에 대한 흔적들을 열거했었는데, 이원길의 경우에는 아예 그런 것도 없는 듯 했다. 이원길은 “무예가 남보다 뛰어난 청년이었으나 젊음을 믿고 난폭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참가한 전투 족족 패배했으며, 너무나 잘난 둘째 형 이세민에게 콤플렉스를 느꼈던모양이다. 『요원전』에서 묘사한 모습도 역사에 기록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치통감』권 187에 기록된 이원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옮겨본다.


이원길(李元吉)은 성격이 교만하고 사치하여, (...) 항상 두탄(竇誕)과 더불어 놀며 사냥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농작물을 유린하고 밟았다. 또 멋대로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풀어놓아 백성들의 물건을 빼앗게 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활을 쏘아 그들이 화살을 피하는 것을 보았다. 밤에는 부(府)의 문을 열어놓아 다른 방에서 간음(姦淫)하는 것을 드러냈다. (...) 이원길은 어리고 약하며 지금 해야 할 일을 익히지 못하였으니, (...) 진양에는 강한 군사가 수만이고 식량도 10년은 지탱할 곳이고 왕을 일으킨 터전인데 하루아침에 이를 버렸다.


   사족이지만, 『요원전』에서 묘사한 이원길의 캐릭터는 이학인(李學仁)・킹곤타(きんぐ ごんた, 王欣太)의『창천항로(蒼天航路)』에 나오는 원소(袁紹)의 셋째 아들, 원상(袁尙)과 매우 닮았다.



p.261

“이 늙은이의 이름은 통비공通臂公이라고 한다!”



   『요원전』에서 통비공은 손오공이 제천대성으로 자각하기를 위해 그 주변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주인공의 갑작스런 정체성 혼란과, 그 혼란을 타파하면서 존재로서의 자각을 일으키도록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구도를 『암흑신화(暗黒神話)』에서 타케시(武)와 타케우치(竹內), 『공자암흑전(孔子暗黒伝)』에서 하리하라(ハリハラ)와 개명수(開明獸)의 관계로 그린바 있다. (이 구도를 살짝 비틀어 버린 것으로는 「무면목無面目」에서 혼돈混沌과 동방삭東方朔・태백금성太白金星의 관계이다.)


      


   『서유기』에는 통비공이 등장하지 않지만, 통비공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통비원(通臂猿)가 등장한다. 1회에서 통비원은 죽음을 슬퍼하는 손오공에게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방법을 가르쳐준다. 통비원의 조언으로 손오공은 윤회의 그물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제천대성’의 칭호까지 얻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2회 이후에는 통비원후(通臂猿猴)라 하며 두 마리씩 등장을 하는데, 무기를 마련하려는 손오공에게 용궁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 사해용왕들에게 여의금고봉[如意棒]을 비롯해 신발, 갑옷, 투구를 얻게 한다.

   『서유기』58회를 보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네 마리 원숭이[四猴混世, 사후혼세]”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통비원후이다. 통비원후는 “일월을 잡고 온갖 산천을 압축시키며, 길흉화복을 판별하고 건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拿日月,縮千山,辨休咎,乾坤摩弄)”고 했다.

   물론 옮긴이 註에서도 설명했듯이 통비공은 『삼수평요전(三遂平妖傳)』의 통비원후 원공(通臂猿猴袁公)에서 영향을 받은 게 확실한데, 뒤에 『평요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천현녀와 백운동(白雲洞)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후지타 카즈히로와의 대담에서 통비공은 시라토 산페이(白土三平)의 “『닌자 무예장(忍者武芸帳)』에 나오는 무풍도인(無風道人)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얘기했다.



   하지만, 무예에 능통한 원숭이 이야기의 원류는 아무래도 『오월춘추(吳越春秋)』권9에 실린 원공(猿公)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范蠡對曰:「(...) 今聞越有處女,出於南林,國人稱善。願王請之,立可見。」越王乃使使聘之,問以劍戟之術。處女將北見於王,道逢一翁,自稱曰袁公。問於處女:「吾聞子善劍,願一見之。」女曰:「妾不敢有所隱,惟公試之。」於是袁公即杖箖箊竹,竹枝上頡橋,未墮地,女即捷末。袁公則飛上樹,變為白猿。遂別去。

범려(范蠡)가 아뢴다.

“(...) 지금 월(越)나라에 한 처녀가 있는데, 남림(南林)땅에 살며 백성들로부터 검술이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청컨대 왕께서 그녀를 부르셔서 한번 보셨으면 합니다.”

월나라 왕은 이에 사신을 보내 그녀를 초청하여 검술(劍術)을 보고자 했다. 처녀는 왕을 알현하러 오던 길에 원공(袁公)이라 자칭하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가 처녀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에 그대가 검에 능하다고 하는데 어디 한 번 보자꾸나.”

처녀가 말했다.

“이 몸은 감히 숨길 재주가 많지 않사오나, 공을 위해 한번 펼쳐 보이겠습니다.”

   이에 원공이 죽장으로 재빨리 그녀를 찔러 들어갔으나 그가 땅에 내려서기 전에 그녀는 날카롭게 세 번을 반격했다. 원공은 나무위로 뛰어 오르더니 하얀 원숭이로 변하여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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