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 이빙은 다시 한 번 대성大聖을 상대하고 신군神君이 신쇄神鎖로 요원妖猿을 묶다


p.122~123

무지기의 이미지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창조한 무지기는 중국의 신화와 소설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 이미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퀴클롭스(Κύκλωψ, Kuklōps), 더 소급하자면, 호메로스(Ὅμηρος, Hómēros)의 『오뒷세이아(Ὀδύσσεια, Odýsseia)』 제9권에 등장하는 퀴클롭스 폴리페모스(Πολύφημος, Polyphēmos)의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특히 p.074에서 무지기의 첫 등장이 ‘동굴 속, 외눈박이 거인, 식인’의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하다.


벌떡 일어서더니 내 전우들에게 두 손을 내밀어 한꺼번에

두 명을 마치 강아지처럼 움켜쥐더니 땅바닥에 내리쳤소.

그러자 전우들의 골이 땅바닥에 흘러내려 대지를 적셨소.

그러더니 그자는 그들을 토막 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산속에 사는 사자처럼 내장이며 고기며

골수가 들어 있는 뼈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웠소.

- 천병희 역 『오뒷세이아』 제9권 288행~293행 -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퀴클롭스 상



요크셔 박물관의 퀴클롭스


   하지만,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머드멘』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요원전』의 무지기가 『머드멘』의 아엔과 동일한 캐릭터임을 알 수 있다. 『머드멘』에서 아엔은, 인류의 조상 키우나기에게 불을 주어 지혜를 갖게 했지만, 그 때문에 키우나기와 나미테를 숲에서 쫓겨나게 했다. 즉, 아엔은 성서의 뱀, 사탄 같은 존재다. 아엔은 파푸아 뉴기니의 원주민들의 삶, 즉 숲을 파괴하는 악한 존재이지만,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원주민들에게 카고(재물)을 내리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엔은 인류에게 풍요를 주는 대신 낙원에서 몰아내는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다. 『요원전』의 무지기 또한 민중에 대한 억압이 극한에 다다랐을 때 민중의 원통함 속으로 스며들어 그 원한을 바탕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악귀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란은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부른다. 이런 면에서 무지기의 존재 역시 이율배반적으로 볼 수 있다.

 

하야토, 나미코 & 아엔


코도와 & 아엔


   『머드멘』에서 아엔의 반대급부로 “위대한 가면(혹은 위대한 자)”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요원전』에서 무지기의 반대급부는 누가 될까? 불법(佛法)? 아니면 또 다른 원숭이 신[外道]?


   



p.126

“이 이빙에게 힘을 빌려주소서. 과거 우왕께서 무지기를 옭아매셨던 그 사슬로 요괴를 붙들 수 있도록 해주소서.”


   물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우왕(의 명을 받은 경진庚辰)이 무지기의 목에 큰 쇠사슬을 꼬았다(頸鎖大索)’는 고사가 있지만, 이랑진군에게도 그에 걸맞는 신화/전설/이야기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맥망관초본고본잡극(脉望館鈔本古今雜劇)』에 실려 있는 네 편의 희극 중 「이랑신쇄제천대성(二郞神鎖齊天大聖)」, 「관구이랑참건교(灌口二郞斬健蛟)」, 「이랑신사쇄마경(二郞神射鎖魔鏡)」 세 편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물속에 살던 요괴를 잡은 이랑신을 중심으로 서술됐다.



p.137

“상제上帝가 대성 어르신을 붙들고자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치고 있는 것 같구먼.”


   상제는 고천상성 대자인자 옥황대천존 현궁 고상제(高天上聖大慈仁者玉皇大天尊玄穹高上帝), 간단하게 줄여 옥황상제를 말한다. 도교의 신은 너무 많아 목록을 적는 것도, 위계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지만, 최고신의 위계는 확고부동하게 정해져있다. 도교의 신령 가운데 최고 지존은 ‘삼청(三淸)’의 세 천신(원시천존元始天尊, 영보천존靈寶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과 이들을 보필하는 ‘사제(四帝)’이다. 사제 중 가장 존귀하고 숭앙받는 이가 바로 옥황상제인데, 천도를 주재하고,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주재하는 최고 신령이다.


   천라지망이란 “하늘의 그물, 땅의 그물”이라는 뜻으로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경계망 또는 재액”을 비유할 쓰는 말이다. 『서유기』5회에서, 태백금성의 중재로 무단이탈의 죄도 사해주고 제천대성이란 그럴듯한 직함까지 얻은 손오공이, 서왕모(西王母)의 반도복숭아를 다 따먹고 태상노군(太上老君, 道德天尊)의 금단을 몽땅 훔쳐 먹은 후 반도대회에 쓸 술과 음식을 모조리 훔쳐 먹는 대형 사고를 치고 화과산으로 도망간 후, 상황을 보고받은 옥황상제가 노발대발 분노하며 손오공을 잡으라는 명을 내리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인데,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玉帝大惱。即差四大天王,協同李天王並哪吒太子,點二十八宿、九曜星官、十二元辰、五方揭諦、四值功曹、東西星斗、南北二神、五嶽四瀆、普天星相,共十萬天兵,布一十八架天羅地網下界,去花果山圍困,定捉獲那廝處治。

   옥황상제는 노발대발, 그 즉시 사대 천왕(四大天王)을 출동시켜 탁탑 이천왕과 나타 삼태자 부자를 돕게 하고 이십팔수(二十八宿), 구요성관(九曜星官), 십이 원신(十二元辰), 오방게체(五方揭諦), 사치공조(四值功曹), 동서성두(東西星斗), 남북이신(南北二神), 오악사독(五嶽四瀆), 보천성상(普天星相)을 지명하여, 도합 10만 천병(天兵)을 이끌고 하계로 내려가, 화과산을 천라지망 열여덟 틀로 물샐틈없이 포위해 놓고 그 요망한 원숭이 놈을 기어코 잡아 처단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詩曰:

天產猴王變化多,偷丹偷酒樂山窩。只因攪亂蟠桃會,十萬天兵布網羅。

   이런 시구가 또 있다.

   저절로 태어난 원숭이 임금 변화무쌍해,

   금단을 훔쳐 먹고 술을 훔쳐 제 소굴에서 즐기니,

   반도연회 큰 잔치를 어지럽힌 죄로, 십만 천병이 천라지망을 펼치는구나.



p. 145

“이런... 큰일이다. 저것은 우왕이 만들어 이랑진군에게 전해지던 박요쇄縛妖鎖아닌가!”


   『관지문정(灌志文征)』 권5 『이공자치수기(李公子治水記)』에 실린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빙과 매산칠성이 해마다 홍수를 일으켜 사람들을 괴롭히는 얼룡을 잡았을 때, 때마침 어린 손자를 얼룡의 제물로 바칠 뻔했던 노파를 만났는데, 그 노파가 쇠사슬을 전해주자 이랑이 그 쇠사슬로 얼룡을 묶어 복룡관 돌기둥 밑의 깊은 못에 가두어 그때부터 다시는 수해로 인한 우환이 없었다고 한다. (終复擒之于新津縣童子堰。方返至王婆岩,遇前日茅屋泣孫老嫗,持鐵鎖鏈來謝贈之。二郎即以此鎖鏈鎖孽龍,系之于伏龍觀石柱下水深潭中,后遂無水患。)

   위앤커는 “이야기를 전해 준 사람에 의하면 그 노부인은 바로 관음보살이었으며 스스로를 왕파(王婆)라 불렀다고” 했는데, 중국의 고대 신화와 도교와 불교가 서로 섞여있는 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예로 볼 수 있겠다.

   이 이야기는 『서유기』 47회~49회에 걸친 차지국(車遲國) 원회현(元會懸) 진가장(陳家莊)과 통천하(通天河)의 영감대왕(靈感大王)과의 이야기로 차용되기도 했다.



p.148

“이것은 통비通臂! 그런 재주를 부리는 걸 보니 역시 요물이었나!”


   드디어 등장한 통비공! 하지만,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으니, 통비공에 대한 이야기는 제7회로 미루기로 한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4회에 등장한 통비공은 캐릭터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일개 수상쩍은 노인네’에 불과했는데, ‘메인 스토리와 관계없는 지점(5회 초반)에서 슬쩍 움직이니 캐릭터가 확립’된 특이한 경우라고 후지타 카즈히로와(藤田和日郎)의 대담에서 밝힌 바 있다. 이 대담은 『요원전』7, 8권에 권말부록으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p.153

“어찌 보고 자시고, 싸움보다도 홍수 때문에 뭐 남아난 게 없네 그려. 원길이가 정말로 고아현을 격파했나?”


   『자치통감』권189와 권190을 보면, 621년 “12월 정묘일(15일)에 진왕 이세민과 제왕 이원길에게 명령을 내려 유흑달을 토벌”하라는 당고조의 조칙이 있었고, 622년 3월 “임진일(11일)에 유흑달은 고아현을 좌복야로 삼”았으며, 그 후 유흑달이 패배, 유흑달은 돌궐로 도망하고 하북은 평정되었다. 도망한 유흑달이 돌궐을 이끌고 산동을 노략질한 게 622년 “6월 신해일(1일)”이라고 적혀있으니, 『요원전』에서 손오공이 제천대성의 칭호를 받고 긴고아를 쓴 때와 무지기가 깨어나 다시 물속에 묶인 때와 고아현의 죽음은 622년 3~6월 사이의 홍수가 범람한 어느 날인 듯하다. 물론 역사와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라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

   고아현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서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유흑달이 죽을 때 고아현의 이름이 한 번 언급된다.

   『요원전』에서는 이세민이 이원길을 도우러 달려왔으나 홍수의 도움으로(요원의 도움으로) 도울 일이 없었다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역사에 기록된 것은 이와는 다르다. 『자치통감』권191을 보면, 624년, 이세민이 돌궐과의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이원길에게 자신과 함께 싸움에 임할 수 있는지(선봉에 나설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원길이 두려워하니, 이세민은 “네가 감히 나가지 못한다면 나는 마땅히 혼자서라도 가겠으니, 너는 여기에 남아서 이를 보아라.”라고 호통을 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물론 고종의 뒤를 잇는 이세민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곡필이 들어간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원길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이런 초월적 존재들의 전투(무지기-이빙)가 인간의 역사(이원길-고아현)에 영향을 주는 내용의 이야기를 『공자암흑전』「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다」편에서도 그린 적이 있는데, 공자[孔丘]와 양호(陽虎)의 싸움으로 치우(蚩尤)가 깨어나고 그로 인해 수극토(水克土)의 형국으로 홍수가 일어나 오(吳)나라와 제(齊)나라의 싸움에서 오나라가 승리를 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요원전』이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Ίλιάς, Iliad)』와 『오뒷세이아』의 자리에 놓이기를 희망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p.154

“오-공- 아무데도 없구나... 역시 죽었나...?”


   아쉽게도 신양선인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서유기』에서 수보리조사(須菩提祖師)와 거의 흡사하다. 수보리조사는 손오공에게 성과 이름을 내려주고 장생(長生)의 도리와 72가지 변화 술법, 그리고 한 번에 십만 팔천 리를 갈 수 있는 근두운(筋斗雲)을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1회와 2회에 걸쳐 등장한 이후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서유기』에서 수보리조사는 도가의 선인이지만, 원래는 인도의 고승 수부티Subhūti의 높임말로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하나로, 천성이 자비심이 많아 출가하여서도 늘 선행을 베풀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수보리조사가 손오공을 추방했을 때 “앞으로 네가 어떤 화란을 일으키고 흉악한 짓을 저지르더라도, 내 제자였다는 소리만큼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 만약 네놈의 입에서 일언반구라도 그런 말이 나왔다가는, 내 당장 알아차리고 가서 네놈의 원숭이 껍질을 몽땅 벗겨내고 뼈다귀를 바수어버릴뿐더러, 그 혼백을 십팔층 지옥에다 처박아 놓고 만겁(萬劫)의 세월이 지나더라도 두 번 다시 환생을 못 하게 만들어버릴 테다!” 하고 엄포를 놓지만, 손오공이 이 약조를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오공은 67회에서 타라장(駝羅莊)의 이노(李老)에게 자신이 수보리조사에게 도술을 배웠다는 것을 밝히지만, 아쉽게도(?) 수보리조사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 더 들자면, 『수호전(水滸傳)』의 왕진(王進)의 역할과도 비슷하다. 1회에서 태위 고구(高俅)의 미움을 받아 몰래 도망하는 왕진은 사가촌(史家村)에 들러 후에 양산박의 108두령 중 한 명이 되는 사진(史進)을 가르친다. 『수호전』의 초반은 고구가 왕진을 이끌어내고, 왕진이 사진을 이끌어내며, 사진이 노지심(魯智深)을 이끌어내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이들은 그 뒤에도 계속 등장하지만, 왕진은 이후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원전』에서도 신양선인은 손오공을 수렴동으로 끌어들이고 무지기를 만나게 한 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비롯해, 이빙과 제천대성의 죽음(?)을 목격한 후 제천대성의 칭호를 받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이후의 역할은 통비공이 맡았다.

   굳이 『수호전』을 언급하는 이유는, 『요원전』에 『수호전』의 인물들과 에피소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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