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 오공은 항아리 속 천지를 들여다보고 이빙은 계곡에서 야인들을 사냥하다
p.076
“무지기無支奇... 그 이름은 이 노인네도 알고 있소. 먼 옛날 하夏를 개국했던 성국 우왕禹王께서 치수를 하실 깨 붙잡아 귀산龜山 아래 사슬로 꽁꽁 묶어 뒀다던 수괴水怪가 아니오? 『악독경』岳讀經이라 하는 책에서 본 적이 있소이다. 장강長江, 회수淮水의 물을 지배하며 온갖 들판의 넓이와 개울의 깊이에 통달했다던가...
무지기無支奇 → 무지기無支祁 (p.004의 無支奇도 수정)
무지기・이빙・손오공・통비공
무지기(無支祁)는 巫支祁・无支祁・巫支祗로 표기되는데, 『요원전』에서는 ‘기’자를 祁에서 奇로 바꾸었다. 『요원전』에는 차용한 캐릭터의 원래 이름을 살짝 바꾸는 경우가 가끔 보이는데, 그게 작가의 의도인지 아니면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서유기』 47회와 99회에 나오는 일칭금(一秤金)은 『요원전』 74회부터 96회까지 등장하는 일승금(一升金)으로 글자가 바뀌었는데, 각 작품에서 칭秤과 승升이라는 단어에 맞게 이름을 해석하므로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다.
무지기에 대한 기록은 『고악독경(古岳讀經)』제 8권에 나오는데, 『고악독경』은 『태평광기(太平廣記)』 권467 「이탕(李湯)」에 실려 있다.
禹理水,三至桐柏山,惊風走雷,石號木鳴,五伯擁川,天老肅兵,功不能興。禹怒,召集百靈,授命夔龍,桐柏等山君長稽首請命。禹因囚鴻蒙氏、章商氏、兜盧氏、梨婁氏,乃獲准渦水神,名無支祁。善應對言語,辨江准之淺深,原隰之遠近。形若猿猴,縮鼻高額,青軀白首,金目雪牙,頸伸百尺,力逾九象,搏擊騰踔疾奔,輕利倏忽,聞視不可久。禹授之童律不能制;授之烏木由,不能制;授之庚辰,能制。鴟脾桓胡、木魅水靈、山襖石怪,奔號聚繞,以數千載,庚辰以戟逐去。頸鎖大索,鼻穿金鈴,徒准陰龜山之足下,俾准水永安流注海也。
우(禹)가 홍수를 다스릴 때 세 번 동백산(桐柏山)에 이르렀는데,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며 돌이 부르짖고 나무가 울었으며 오백(五伯)이 시내를 끌어안고 천로(天老)가 병사들을 모아도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우가 노하여 천하의 여러 신들을 불러 모으고 기룡에게 명하여 동백 등의 산군들이 머리를 수그리고 명령을 청했다. 우가 홍몽씨(鴻蒙氏)・장상씨(章商氏)・두호씨(兜盧氏)・이루씨(梨婁氏)를 가뒀기 때문에, 곧 회수(准水)와 와수(渦水) 사이에서 요물을 잡았는데 이름이 무지기(無支祁)라고 했다. (이 요괴는) 말을 잘하고 장강의 흐름과 회수의 흐름 가운데의 얕고 깊음을 가려낼 줄 알며, 벌판과 습지의 가깝고 먼 것을 가릴 줄 알았다. 생긴 것은 원숭이와 같은데 코가 움츠러들었고 높은 이마에 몸빛은 푸르고 머리는 희며 금처럼 반짝이는 눈에 눈처럼 하얀 이를 가졌다. 목을 길게 빼 늘이면 그 길이가 백 자는 되는데 힘은 코끼리 아홉 마리를 합친 것보다 더 세며 동작이 매우 빨라 잠깐 사이에 번득이며 듣고 보이는 것이 오래 가지 못했다. 우가 무지기를 동률(童律)에게 맡겼으나 다스리지 못했고, 조목유(烏木由)에게 맡겼으나 다스리지 못했고, 경진(庚辰)에게 맡겼더니 다스릴 수 있었다. (경진이 일을 시작하자) 치비・환호・나무 도깨비・물의 정령・산의 요괴・돌 요괴들이 달려와 모여들기를 수천 년 동안이나 했는데 경진이 갈래진 창으로 쫓아냈다. (경진은 무지기의) 목에 굵은 사슬을 메고 코에는 금방울을 닳아 회수 북쪽의 구산(龜山) 기슭에서 항복시키니 회수를 좇아 영안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갔다.
『고악독경』은 당(唐)나라 사람 이공좌(李公佐)가 쓴 필기집(筆記集), 즉 소설이다. 그러므로 무지기는 신화나 전설로 구전되어온 존재가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꾼들이 만들어낸 허구인 존재이다. 위앤커(袁珂)는 『중국신화전설Ⅰ』에서 무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중국신화에 포함시켰으나, 각주에서 “이것은 소설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송원宋元시대에는 널리 민가에 유포되어 있었고 또 희극이나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것이므로 여기서도 간단히 서술해 보았”다고 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 또한 p.077~078에 걸쳐 『고악독경』에 관한 이야기를 “과연 이 이야기가 참인지 거짓인지...”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유기』에도 무지기가 언급되는 장면이 있는데, 66회에서 찾을 수 있다. 소뇌음사(小雷音寺)의 가짜 석가여래에게 붙잡힌 삼장법사와 두 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손오공이 우이산(旴貽山) 빈성(蠙城)에서 대성국사왕보살(大聖國師王菩薩)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대성국사왕보살이 이런 말을 한다.
奈時值初夏,正淮水泛漲之時。新收了水猿大聖,那廝遇水即興,恐我去後,他乘空生頑,無神可治。
요즈음 철기가 초여름이어서 회하에 홍수가 넘칠 때요, 또 근자에 수원대성(水猿大聖)을 새로이 항복시켰는데 그놈은 홍수철만 되면 기운을 뽐내니, 내가 이곳을 비운 틈을 타서 장난질을 치게 되면 그때는 어떤 신령도 그놈을 다스릴 길이 없을 것일세.
흥미로운 점은 무지기가 손오공의 원형이라는 점이다. 루신(魯迅)은 “손오공이 무지기의 고사를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했으며, 리우위첸(劉毓忱)은 손오공의 이미지가 계(啓)가 신령한 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와 무지기의 고사, 그리고 황제(黃帝)에게 반기를 든 치우(蚩尤)와 형천(形天)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니까 『요원전』의 제천대성 무지기, 『고악독경』의 무지기, 『서유기』의 제천대성 손오공, 수원대성 등은 서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무지기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은 관계로, 일단 끊고 4회에서 다시 한 번 하는 것으로 한다.
p. 077
“먼 옛날 황제黃帝께서 퇴치하셨던 기夔라는 외발 짐승이나 노夒라는 원숭이도 그와 비슷한 요물이라고 하더이다.”
① 『산해경・대황동경(大荒東經)』에 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東海中有流波山,入海七千里,其上有獸,狀如牛,蒼身而無角,一足。出入水則必風雨,其光如日月,其聲如雷,其名為夔,黃帝得之,以其皮為鼓,橛以雷獸之骨,聲聞五百里,以威天下。
동해(東海)의 가운데에 유파산(流波山)이 있는데, 바다로 7천 리 들어가 있다. 그 위에 어떤 짐승이 사는데, 생김새가 소와 비슷하고, 푸른색 몸에 뿔이 없으며, 다리는 하나이고, 물을 드나들면 곧 반드시 비바람이 몰아친다. 그 빛은 마치 해나 달처럼 밝으며, 그 소리는 우레와 같은데, 그 이름은 기(夔)라 한다. 황제(黃帝)가 그것을 잡아서, 그 가죽으로 북을 만들고, 뇌수의 뼈로 북채를 만드니, 그 소리가 5백 리 밖까지 들려, 천하를 떨게 했다.
『국어(國語)・노어(魯語)』에도 기에 대한 설명이 있다.
夔一足,越人謂之山繰,人面猴身能言。
기는 발이 하나이며, 월(越)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산조(山繰)라고 부르는데, 사람의 얼굴에 원숭이의 몸을 하고 있으며, 말을 할 줄 안다.
기(夔)
② 노(夒)라는 짐승은 그 어원이 기(夔)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설문해자(說文解字)』와 단옥재(段玉裁)의 주에 설명이 나와 있다.
貪獸也。一曰母猴,似人。
(기는) 탐욕스러운 짐승이다. 모후라고도 하는데 사람과 흡사하다.
貪獸也。一曰母猴, 謂夒一名母㺅。
(기는) 탐욕스러운 짐승이다. 모후라고도 하는데, 노를 모후(=기)라고 말한다.
③ ‘모로호시 선생은 무지기의 奇를 『산해경・서산경(西山經)・해내북경(海內北經)』에 ‘궁기(窮奇)’라는 짐승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夔)와 기(奇)는 전혀 다른 것임이 확실하다.
「西山經」: 曰邽山。其上有獸焉,其狀如牛,蝟毛,名曰窮奇。
규산(邽山)이라는 곳에는, 그 위에 어떤 짐승이 사는데, 그 생김새가 소와 비슷하고, 고슴도치 털로 덮여 있으며, 이름은 궁기(窮奇)라 한다.
궁기(窮奇)
「海內北經」: 窮奇狀如虎,有翼,食人從首始,所食被髮,在蜪犬北。
궁기(窮奇)는 생김새가 호랑이와 비슷하고, 날개가 있으며, 사람을 잡아먹을 때 머리부터 먹기 시작하는데, 잡아먹히는 사람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으며, 도견(蜪犬)의 북쪽에 있다.
궁기(窮奇)
* 기(夔)와 노(夒)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사다리님의 블로그(클릭)에서 확인 바랍니다.
p.082
“그자가 바로 네 어미의 남편이었던 손해라는 사내다.”
수양제의 1차 고구려 원정은 요하(遼河), 요동성(遼東城), 평양성(平壤城), 살수(薩水)에서 큰 전투가 있었는데 p082~083에 묘사된 그림으로 보아 손해는 요동성 전투에서 죽은 것으로 짐작된다. 요동성은 수문제와 수양제에 걸친 4번의 고구려 원정(598~614)에서 단 한 번도 침략을 불허한 무적의 요새였다.
p.092
“그자는 미후왕美猴王이다. 황건의 난 당시 제천대성의 칭호를 이어 싸우던 자였지.”
미후왕(美猴王)이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복지동천(福地洞天) 화과산 수렴동(花果山水簾洞)’을 찾아낸 후 원숭이들에게 왕으로 추대됐을 때 불린 이름이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들은 미후왕, 제천대성, 필마온, 손행자(孫行者) 등이 있는데 『요원전』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이 이름들을 각각의 캐릭터로 분산시키고 있다. 아마도 『요원전』의 마지막에서나 이들 이름들이 손오공으로 수렴될 것이라 예상하는데, 정말 끝은 볼 수 있을지 독자로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황건의 난(黃巾之亂)은 후한(後漢) 말기에 일어난 농민대반란이다. 황건의 난은 결국 진압되었지만, 이 난을 시작으로 인해 한제국은 결국 멸망하게 된다.
이 미후왕이라는 자가 누구인지는 도통 모르겠는데, 어쩌면 무지기가 손오공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일 수 있겠다. 무지기는 “말을 잘하(善應對言語)”기 때문이다.
p.100
“오공, 모자를 잊었구나. 그것까지 다 갖추지 않으면 제천대성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느니라. 자, 모자를 쓰고 어미의 원수를 갚도록 해라.”
오공이 머리에 쓴 것은 긴고아(緊箍兒)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의 욱하는 성격을 컨트롤하기 위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삼장법사에게 준 모자[僧帽] 안의 금테를 가리킨다. (더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8회에서 석가여래釋迦如來가 관세음보살에게 ‘경을 가지러 오는 사람에게 주라’고 준 불보佛寶 중 하나이다.) 손오공이 모자를 씀과 동시에 삼장이 긴고아주(緊箍兒呪)를 외우자, 머리를 죄여오는 고통에 모자를 죄 뜯어버려서 금테만 남았다. 관세음보살은 16회 흑풍대왕(黑風大王)에게는 금고아(禁箍兒)를 씌웠고, 42회 성영대왕(聖嬰大王) 홍해아(紅孩兒)에게 금고아(金箍兒)를 씌었다. 후에 손오공은 투전불승(鬪戰佛僧)이, 흑풍대왕은 수산대신(守山大神)이, 홍해아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됐는데, 모두 불가(佛家)와 관련됐으니, 긴고아는 불보임에 틀림없다.
『요원전』에서 긴고아는 제천대성 무지기의 힘을 끌어내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망자들의 원한을 들어야하기에,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것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