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046
제2회 - 화과산花果山에서 신선申仙이 이치를 논하고 수렴동水簾洞에서 요마妖魔가 모습을 드러내다
신선이 神仙이 아닌 申仙으로 적힌 것은 1화에 나온 신양선인申陽仙人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수렴동에 대한 설명은 뒤에서 다루기로 한다.
p.052
“아마도 야인이겠지. 녀석들의 소굴을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p.050~051에서 묘사한 야인들의 모습은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1983년에 발표한 「진수의 숲(鎮守の森)」에서 묘사한 두옥(頭屋, 만화에서는 인신공양을 위한 산 제물을 가리킴)의 모습과 비슷하다. 「진수의 숲」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산으로 도망치는데, 열매나 나물, 때로는 사냥으로 생명을 부지하다가 결국 인육을 먹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멧돼지나 사슴보다 사냥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인성은 점점 사라지고, 짐승 혹은 귀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간다.
뒤에 나오지만, 『요원전』에서 묘사한 야인들 또한 민란 혹은 압정을 피해 산으로 들어가 점점 야생으로 변한 존재들이다.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에서 묘사한 ‘야후(yahoo)’와 비슷한 존재들로 보인다.)
p.053
“사실 이유라기보다는 내 고집이지. 나는 예전에 하북에서 두건덕 장군을 섬겼단다... 그러다가 장군께서 패망하신 뒤로는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고 있었지. 이미 천하가 당의 것임은 자명해 보였어. 그렇다고 하여, 아니 그렇기에 더욱 더 이제 와서 당에게 머리를 조아릴 수는 없었단다.”
수나라 말기에 여러 군웅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 가장 ‘협(俠)’의 기치를 드높인 이는 두건덕(竇建德)이었다.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7의 기록을 보면, “나(두건덕)는 수의 백성이고 수는 우리의 군주이다. 지금 우문화급이 시역을 하였으므로 바로 나의 원수니, 내가 토벌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하며 양제를 죽인 우문화급을 쳤고, “성으로 들어가서 우문화급을 산 채로 잡아서 먼저 수의 소(簫)황후를 알현하였는데, 말하면서 모두 칭신(稱臣)하였으며 소복을 입고 양제에게 곡(哭)하면서 슬픔을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그는 하(夏)라는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었지만(황제를 칭한 것은 아니었다), 스러져가는 국가에 대해 끝까지 충성을 바친 유일한 군웅이기도 했다.
또한 “두건덕은 매번 싸워서 승리하고 성곽에서 이길 때마다 얻은 재물은 모두 장사(將士)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자신은 갖는 것이 없었다”는 기록과 “두건덕이 명주(洺州)에서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니 그 경계 안에서는 도적이 없었고, 상인과 여행객들이 들에서 잠을 잤다”는 기록으로 보아, 두건덕 주변에는 진심으로 따르는 장수와 백성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621년 당(唐)의 이세민이 왕세충과 사수(汜水)에서 일전을 벌일 때, 왕세충을 구원하러 온 두건덕을 사로잡자 이세민은 두건덕을 당의 수도 장안(長安) 길바닥에서 참수했다. 항복한 왕세충을 서인으로 삼고 촉(蜀에) 가서 살게 한 처사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일이다. 이세민은 당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두건덕이라는 인물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두건덕 휘하의 장수들과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당의 처사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에 (훗날 당 개국공신이 되는) 이세적(李世勣)이 두건덕에게 투항한 후 다시 당으로 투항했을 때, 인질로 잡혀 있던 이세적의 아비를 두건덕은 아무 조건 없이 풀어줬다. 또한 그는 이연과 연합했을 때 인질로 잡고 있던 이연의 누이 동안・장공주를 조건 없이 보내주었다. 그렇게 인의(仁義)로 상대를 대했는데도, 최소한 왕에 어울리는 죽음조차 허락해주지 않은 당을 이빙은 절대 따를 수 없었을 것이다.
p.056~059
확원들이 사는 화과산의 모습은 『제괴지이』「이계록(異界錄)」편에 나오는 현도(玄都)와 느낌은 비슷한데, 실상은 전혀 다르다. 현도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 이곳으로 빨려 들어온 인간은 잠시 동안 고치 같은 상태로 지냅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원래의 사람 같은 모습이 되어 고치에서 깨어나지만, 바깥세상의 인간들과는 다른 몸이 되지요. 그리고 잠시 동안 이 현도(玄都)에 살게 되는데 그 시기는 2~3년, 또는 10년 정도로 사람마다 다릅니다. (...) 그 후 현수(玄水)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살 수 있게 되어, 나중엔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속계(俗界)의 것들을 이것저것 몸으로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불순한 것들을 배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이계록」에서 현도의 존재들은 인간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면 순수함이라는 인간의 정수만이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요원전』에서 화과산의 존재들은 인간임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면 인간과 동물을 구별지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누가 이끄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현도는 현빈(玄牝)이 이끌지만, 화과산은 무지기(無支奇)가 이끌기 때문이다.
「이계록」의 이야기는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수신기(搜神記)』에서 큰 틀만 빌려왔을 뿐, 완전한 본인의 창작 작품이라 한다.
p.063~064
“오공,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어째서 수렴동으로 오지 않는고. 내 주인 대성大聖께서 기다리고 계시니라.”
자고 있던 오공에게 말을 건 것은 1회에 등장했던 주염(朱厭)이라는 짐승이다. 『산해경(山海經)・서산경(西山經)』에 기술되어 있듯이, 주염이 나타나면 큰 전쟁이 일어난다(見則大兵)고 했다. 요괴를 퇴치하러 화과산에 온 이빙, 오공을 부르는 제천대성(齊天大聖), 이제 『요원전』은 무언가 모를 불안함과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다.
p.069
“폭포수로 가려진 뒤편에 동굴이... 여기가 수렴동이라는 곳인가...”
‘복지동천(福地洞天) 화과산 수렴동(花果山水簾洞)’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화과산 폭포수 밑에서 찾은 동굴이다. 이 동굴을 찾음으로써 손오공은 원숭이들에게 미후왕(美猴王)으로 추대된다. 수렴동에 대한 설명은, 가짜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 58회에 자세히 나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이 수렴동이란 곳은 연못에서 용솟음쳐 흩날리는 샘물이 거꾸로 떨어지면서 폭포를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굴 입구를 가려, 멀리서 보면 마치 흰 무명천으로 만든 발을 드리워놓은 것처럼 보이고, 가까이 다가서서 보아도 그것은 역시 한줄기 수맥일 뿐, 처음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는 그 뒤쪽에 감추어진 출입구를 알아낼 길이 없었고, 그 때문에 수렴동(水簾洞), 곧 ‘물의 장막으로 가려진 동굴’이란 명칭이 붙었으며, 사화상은 그렇게 드나드는 출입구의 내력을 모른 까닭에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p.074
“내 이름은 제천대성齊天大聖이다.”
여기서는 ‘제천대성’이라는 명칭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제천대성이란 ‘하늘과 동등한 위대한 성인’이라는 뜻이다. 齊를 ‘같다’의 뜻으로 볼지, ‘다스리다’의 뜻으로 볼지 고민했었는데, Arthur Waley가 『Monkey』에서 ‘The Great Sage, Equal of Heaven’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같다’의 뜻이 맞는 것 같다.
『서유기』에서 ‘제천대성’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손오공이 자신의 신통력으로 용궁과 유명계에서 분탕질을 치자, 옥황상제(玉皇上帝)는 더 이상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손오공을 하늘로 불러들여 천마(天馬)를 돌보는 필마온(弼馬溫)이라는 벼슬을 준다. 후에 필마온이라는 품계가 하찮은 것을 알자 성을 내고 근무지를 무단이탈, 다시 화과산으로 돌아온다. 그 때 마침 찾아온 독각귀왕(獨角鬼王)이 “대왕처럼 놀라운 신통력을 지닌 분을 한낱 비천한 말먹이꾼에 임명하다니, ‘제천대성’이 되신다 한들 어떤 작자가 안 된다고 막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스스로 ‘제천대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훗날 태백금성(太白金星)의 중재로 옥황상제에게 ‘제천대성’이라는 벼슬을 정식으로 받지만, 그것은 손오공을 천궁에 잡아두기 위해 만든, 허울뿐인 유관무록(有官無祿)의 벼슬일 뿐이었다.
어찌됐든, 손오공은 이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자신의 여섯 '의형님들'께도 ‘대성’을 붙이라고 꼬드기는데, 첫째인 우마왕(牛魔王)은 하늘을 평정하는 ‘평천대성(平天大聖)’, 둘째 교마왕(蛟魔王)은 바다를 뒤엎는 ‘복해대성(覆海大聖)’, 셋째 붕마왕(鵬魔王)은 하늘을 휘젓는 ‘혼천대성(混天大聖)’, 넷째 사타왕(獅狔王)은 산을 옮겨놓을 수 있는 ‘이산대성(移山大聖)’, 다섯째 미후왕(獼猴王)은 바람을 꿰뚫는 ‘통풍대성(通風大聖)’, 여섯째 우융왕(〇狨王)은 신선을 몰아내는 ‘구신대성(驅神大聖)’이라고 서로 자화자찬하며 호칭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