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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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대학교 때 일이다. 당시 과 사무실에서 연로하신 조교와 나이든 후배와 함께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마침 동물원의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가 흘러나왔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중학생 때였었는데, 그 때를 떠오르면서 이 노래에 대한 품평을 하기 시작하자, 그들이 나를 멋모르는 어린아이의 실수를 감싸주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을 했다. "이 노래를 제대로 들으려면 최소 서른은 지나야지. 이 노래를 이해하기나 하니?"  

물론,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를 제대로 들으려면, 정말 서른이 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해서, 이 노래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짝사랑했던 여자도 있어야 하고, 그 여자가 결혼도 하고 애도 있어야 하며, 1/2호선 안에서 우연히 마주쳐야만 하는가? 모든 예술 작품에는 그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초등학교 때 처음 들었던, 절규하는 듯한 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의 울림이나, 스무 살,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앞으로 다가올 서른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느꼈던 그 때. 이런 일상의 결들을 꼭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하는 식으로 꼭 경험의 우위로 내세워야 하는 것일까? 그 때 대학교 때 일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난 경험을 맹신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랬던 내가, 김애란 작가와 그녀의 첫 장편인 『두근두근 내 인생』을, 그런 꼰대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인생에 대해 얼마나 알겠니?" 하는 재수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사실, 어느 작가나, 인생이나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더군다나 이제 (EU기준으로) 서른을 넘긴 작가가 첫 장편으로 이런 무거운 소재를 선택했음을 알게 됐을 때, 책장을 넘기면서 조마조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김애란은 이 무거운 주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멋지게 우회하며 나 같은 꼰대들을 "쓰러지게" 만들었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냥, "벅차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표현 같다.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을 가장 힘들게 보낸 어린 부모와, 가장 짧게 살았지만, 가장 오래 산 그 어린 부모의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둘러싼 세상의 저열한 욕망. 어쩌면 정말이지 끔찍할 수 있는 이야기를 김애란은 정말로, 애정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감싼다. 삶과 죽음, 외로움과 설렘, 실망과 우정.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만, 아름이는 김애란이라는 작가를 만나, 정말로 짧고도 긴 한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웃음을 쫓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슬프고 장렬하기 보다는, 너무나 가슴 벅차다.  

이전까지, 김애란의 단편들은 소재뿐인 작품들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나서, 그 생각을 버렸다. 그녀는 소재뿐인, 한계가 드러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담아내고, 자신이 창조한 세계와 인물들을 따스히 보듬을 줄 아는, 흔치 않은 작가다. 앞으로 살면서 그녀가 쏟아낼 수 많은 작품들을 미리 기대하니, 정말로 두근두근해진다. 그녀 때문에, "내 인생"은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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