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 Late Autum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김태용 감독의 <만추>는 유려한 데칼코마니처럼 보이는 영화지만, 실상은 정확이 두 부분으로 나눠진 영화다. 상처를 주는 남자(들)의 이야기와 상처를 받는 여자(들)의 이야기. 남자(들)과 여자(들)은 언뜻 소통이 되는 듯 보이지만, 자신(들)의 진심은 전해지지 못한다. 애나(탕웨이)와 옥자(김서라), 훈(현빈)과 왕징(김준성). 늦가을 바람에 날리는 마른 낙엽들처럼 그들은 그렇게 스쳐지나갈 뿐이다. 애나는 훈의 터무니 없는 약속을 믿은 것 같지 않다. 약속 장소에서 "오랜만이에요"라고 나직하게 내뱉는 그녀의 모습에서 살짝 짓는 웃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설렘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자조적인 웃음처럼 보인 것은 나만의 과민반응이었을까?     

 

2. 김태용 감독의 <만추>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두 주인공 간에 육체 관계가 없는 점이다. 이만희 감독의 원작은 보지 못했으니 제외하더라도,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과 김수용 감독의 <만추>에서의 섹스 신은 두 주인공 간에 급격한 진전을 이루게 하는 계기가 되는데, 김태용 감독은 이 중요한 설정을 과감히 버렸다. 김태용 감독은 애나와 훈의 관계에 어떤 강조나 방점을 찍는 것을 거부한 게 아닐까? 둘 사이의 섹스를 제외한 대신 김태용 감독은 그 둘 사이의 감정의 결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육체 관계가 아닌, 다른 소통의 방법으로. 

 

3. 전작 <가족의 탄생>과 비교해보면, 김태용 감독의 영화는 후반부에 폭발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 폭발력이 워낙 강렬해서 영화의 전반부가 거의 무효가 될 정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내가 잘못된 것이겠지만,) 마치 후반부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보고나서 잊혀지는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드는 것은 이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닐런지. 

 

4. 그저 좋은 기억만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너무 잔인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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