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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전쟁 (상) ㅣ 환상문학전집 25
닐 게이먼 지음, 장용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원제는 어메리칸 갓스, 즉 미국의 신들이다. 이것을 신들의 전쟁으로 번역한 것은 책의 내용을 감안하건대 오해의 소지가 많다.
황금가지의 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애초에 SF는 영화로는 볼 망정 책으로 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공포 문학도 싫어한다. 그래서 닐 게이먼의 '신들의 전쟁'은 처음 읽은 황금가지의 책이다.
왜 이 책을 보게 되었냐 하면 작가나 책에 대한 명성이 아니라 미국 드라마 때문이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가 올해 미국에서 방영되었고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제작자 중 한 명은 스타일리쉬했던 한니발의 드라마 버전을 만든 브라이언 풀러였다. 드라마 어메리칸 갓스도 한니발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유사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드라마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가진 않았지만 원작의 내용들이 가능한 많이 담겨있었다. 15년의 시차와 그에 따른 기술 발전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들로 원작과 차이가 생겼다. 그리고 캐릭터들의 비중도 차이가 있었다. 매드 스위니와 로라는 원작보다 훨씬 역할이 늘어났다. 원작 소설을 다 읽은 이후 가늠하건대 3 시즌 혹은 그 이상의 분량도 가능할 듯 싶다.
호평을 받은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 원작을 16년 늦게 읽어서인 원작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기는 힘들다. 일부는 여러 사람들이 제기하듯 번역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두 권의 두꺼운 책을 읽는 와중에 잘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소설의 아이디어 자체는 높이 사고 싶다. 제목과 같이 소설은 미국의 신들을 다룬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니까 이민자들이 믿던 신들이 그들을 따라 미국에 와서 살았고, 이민자들이 그 신들을 잊어버릴수록 그 신들의 힘이 약해져서 사회빈곤층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자살도 한다는 설정이다(토르는 1930년대에 권총자살했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주류인 개신교 집단이나 히스패닉의 가톨릭을 많이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이런 기독교의 신적 존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밖의 인간화된 세계 온갖 지역의 신들은 다 등장한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신들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오래된 신과 새로운 신들이 전쟁을 하려한다는 것이 소설의 큰 줄기다.
물론 세상의 모든 신들을 다 캐릭터로 만들어 소설을 백과사전으로 만들려는 작가의 무모한 시도는 없다. 몇 명의 신들이 핵심 캐릭터로 나온다. 오딘과 로키, 아프리카의 신 미스터 낸시, 이집트의 신들, 그리고 아마도 동유럽에서 온 것 같은 조르야 자매들과 체르노보그. 매드 스위니는 아일랜드의 레프리콘이다. 새로운 신들 중에는 드라마에서는 질리언 앤더슨이 연기한 미디어라는 캐릭터가 있고 그 외 미스터 월드나 소설에는 뚱뚱한 녀석 정도로 묘사된 아마 인터넷을 상징하는 듯한 소년도 있다.
주인공은 그림자, 즉 섀도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데(누가 자식 이름을 그림자라고 짓나!) 소설 후반부에 가면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소설에서는 처음에 흑인이 아닌 것처럼 나오다가 나중에는 흑인인 듯하게도 묘사가 되는데 드라마에서는 분명한 흑인이다. 이름과 피부색을 연결지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산업화, 정보화 이후 기계에 종속된다고까지 볼 수 있는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도 엿보이고, 만 몇 천 년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미국의 오랜 이민사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따지고보면 인디언조차도 미국의 원래 주인은 아닐 수 있다. 이 책의 철학이나 종교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보고 글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