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13 (21)
        타이틀 Chckmate
        각본 Harley Peyton
        감독 Todd Holland
        방영일 1991
년 1월 19일 
 

 

 

1. 이야기  

DEA 요원 드니스 브라이슨과 데일 쿠퍼는 어니 나일스를 이용해 마약 거래 현장을 급습, 데일의 혐의를 벗기려 하지만 실패하고, 데일은 장 르노에게 인질로 잡힌다.  

앤디와 딕은 꼬마 니키의 비밀을 독자적으로 캐기 시작한다. 벤자민 혼은 점점 남북전쟁 놀이에 빠져들어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제임스 헐리는 에블린 마쉬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고, 급기야 살인을 저지를 결심을 한다.  

빅 에드 헐리와 노마 제닝스는 그들의 사랑을 견디지 못해 결국 선을 넘고 만다. 행크 제닝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빅 에드에게 주먹다짐을 하지만, 네이딘 헐리가 행크를 묵사발로 만든다.  

바비 브릭스는 벤자민 혼에게 얻은 직업을 핑계로 셜리를 떠난다. 그날 밤, 정전이 일어나고 리오 존슨이 깨어난다. 그리고 같은 시간, 데일의 전 파트너 윈덤 얼이 보안관 사무실에 끔찍한 메시지를 남긴다.  

 

 

 

2. 위선과 허위의 장치  

장 르노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데일 쿠퍼라는 인물에 집착을 했었다. 처음엔 그저 구실일 뿐이라 생각했으나, 그의 한결같은 집착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데일이 장의 인질로 잡히고 서로 대면하고 나서야 우리는 드디어 그 이유를 듣게 된다.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 <트윈 픽스>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다.  

쿠퍼: 내 죽음이 그렇게 의미가 있나?
르노: 내 동생들이 죽었어.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지.
쿠퍼: 난 베르나르를 딱 한 번 봤어. 자끄의 경우 역시, 난 그를 체포했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
르노: 하지만, 다 당신 탓이야, 쿠퍼 요원 나리.
쿠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르노: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트윈 픽스는 평범한 곳이었어. 내 동생들은 트럭 운전사들과 10대 아이들에게 마약을 팔고, 애꾸는 잭은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과 사업가들을 맞이했지. 조용한 사람들은 조용한 삶을 살았어. 그런데 한 예쁜 여자아이가 죽었지. 그리고 당신이 이곳에 왔어.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지. 내 동생 베르나르는 총에 맞고 숲 어딘가에 묻혀있어.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베게로 살아남은 내 동생을 질식사시켰지. 방화, 유괴. 계속되는 죽음과 파괴. 갑작스럽게. 이곳의 조용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조용한 삶을 살지 않아. 사람들의 평범한 꿈이 악몽이 되어 버렸거든. 그러니까 너만 죽어주면, 아마 모든 게 끝날 거야. 네가 여기 올 때 악몽을 몰고 왔을 테니까.   

 

데일은 이곳 트윈 픽스에 와서 대도시에선 느낄 수 없었던, 지금은 잊힌 미국적인 가치(품위, 명예, 존엄성 등)를 느꼈다. 하지만 이곳은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마을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가식과 허위, 위선으로 마을의 평화로움을 지키고 있었고 그것이 곧 질서가 되었다. 마을의 이런 기형적인 질서에 기생해 지내던 장은 이 질서의 무너짐에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 모든 원인을 데일 쿠퍼에게 돌리고 있다. 그는 마을의 시스템과 상관 없는 인물이 중심에 자리잡게 되면, 그 질서는 무너지기에 충분한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트윈 픽스의 가식과 위선을 모두 들추어내길 바라는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덮어버리길 원하는가. 조금은 다르지만, 김훈 작가도 이와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옮긴다.  

 

   본래 조악한 것일수록 당당한 외양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내가 사는 이 무인지경의 산골마을에서도 밤이면 강 건너 러브호텔의 불빛은 찬란하다. 러브호텔들은 그 조악한 건축양식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네덜란드풍의 풍차나 이슬람 양식의 돔 지붕, 디즈니랜드풍의 뾰족지붕과 어렸을 때 읽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술의 성이 국토의 구석구석에 창궐하였다.  

   이제 러브호텔에는 도농(都農)의 격차가 없다. 본래 욕망은 평등한 것이다. 전에 살던 서울의 외곽 신도시에도 러브호텔은 창궐했다. 러브호텔 사이사이에 교회가 수없이 들어섰다. 큰 사찰도 세워졌다. 러브호텔은 지붕의 외곽선에 네온사인을 둘렀다. 교회의 십자가도 네온사인이었고 사찰의 용마루 곡선도 네온사인이었다. 밤마다 그 거리는 성(聖)과 속(俗)이 뒤엉켜 번쩍거리며 욕망의 분화구와도 같은 세속도시의 장관을 이루었다.  

   그 신도시는 러브호텔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민들과 허가를 내준 행정기관 사이에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분노한 기독교인들은 ‘종말이 가까워왔다. 회개하라’는 현수막이 걸린 트럭을 저녁 무렵의 러브호텔 앞에 세워놓고 죄 많은 세상을 통탄했다.  

   그 신도시 주민들은 자꾸만 번져가는 러브호텔에 대한 도덕적 분노로 끓어올랐다.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 시장과 교육감은 속수무책으로 쩔쩔맸다. 시장은 시위대 앞에 나와서 "러브는 규제대상이 아니다. 행정력으로는 러브를 막을 수 없다"라고 절규했다. 좀 희화적이기는 하지만 시장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행정력뿐 아니라 군사력이나 경찰력을 동원해도 러브를 막을 수는 없다. 종교나 교육의 힘도 러브 앞에서는 무력해 보인다.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겁주어서 될 일도 아니다. 욕망에는 종말이 없고, 욕망에는 회개가 없다.  

   시장의 그 절규는 틀린 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람이란 뻔한 일을 대놓고 뻔하게 말해주면 약올라하게 마련이다. 그러자 행정력을 동원해서 러브호텔 주차장의 비닐커튼을 걷어내라는 분노의 함성이 일었다.  

   이것은 될 일이 아니다. 호텔 주차장 입구에서 자동차 번호판을 가려주는 이 비닐커튼은 그 신도시의 평화를 지켜주는 완충장치다. 이 커튼을 걷어내면 가정은 거덜 나고 불화는 증폭된다. 비닐커튼은 물론 위선과 허위의 장치다.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선일 때가 많다.  

   현행법에는 학교 울타리로부터 150미터 안에는 숙박업소를 허가해주지 않도록 되어 있다. 아이들이 150미터 안에서만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산지사방으로 다니면서 논다. 그러니 이 150미터 안에 무슨 유효한 도덕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나마 부질없는 장치라도 있어야 세상은 덜 민망하고 덜 쑥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비닐커튼이 부도덕하고 150미터 규정이 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다 똑같은 것이다. 세속도시에는 그 두 개가 다 필요하다.  

   아마도 선(善)이 악(惡)을 몰아내는 방식으로 세속도시의 러브를 몰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러브호텔들이 그 내부에서 세련된 익명성을 완성하듯이 그 건물 외양에도 그 같은 은밀성을 도입해서 점잖은 위선의 포즈를 갖는 일이 필요하다. 러브로 장사를 하려면 제발 좀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비닐커튼 시비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러브호텔을 애용하는 남녀들은 되도록 학교 근처 호텔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불륜을 하더라도 이만한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지금 러브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권장하지 않더라도 러브는 더욱 번창할 것이다.

데일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그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 트윈 픽스는 (말 그대로) 지옥이 된다. 이것은 시리즈 마지막 회에서 다룰 것이다.  

 

 

 

3. 러브  

<트윈 픽스>의 절반은 로라 파머(와 그를 죽인 범인)에 관한 이야기였고, 나머지 절반은 마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로라 파머의 살인 사건이 (표면적으로) 해결된 이후, <트윈 픽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중 이번 회에서는 그동안 벌렸던 사랑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흘러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회에서 언급하는 사랑은 모두 불륜이라는 점이다.  

 

  

3-1. 노마 제닝스 & 빅 에드 헐리  

에드: 먼저 얘기해.
노마: 알았어. 내가 잠들 때,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건 너야.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가장 먼저 내 맘에 떠오르는 것도 바로 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줄어들어서 결국에는 우리가 서로 떨어져 지낼 것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어.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괘념치 않아.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잖아, 에드. 그리고 우린 견뎌낼 거라 생각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동안 그토록 지키고 있던 선이 한 번에 무너진 것은 에드의 부인 네이딘의 기억상실과도 관련이 있다. 에드는 네이딘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 노마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네이딘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 때, 그의 죄의식은 옅어졌으며, 노마에게 그간 가두어놓았던 감정을 발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드는 노마의 남편 행크를 잊고 있었다.  

"오, 에드. 우리가 사랑 때문에 하는 짓 좀 보라지." 

 

 

3-2. 네이딘 헐리 & 마이크 넬슨  

네이딘: 마이크 넬슨, 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멋진 남자야! 난 널 진짜로 좋아할 수 있어, 네가 나랑 데이트만 한다면!   

네이딘은 10대의 규정지을 수 없는 생동감과 충동감으로 마이크에게 직접 행동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를 괴물 취급하며 피하기만 하던 마이크도 조금씩 심경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3-3. 제임스 헐리 & 에블린 마쉬  

제임스: 왜 남편이 때리는 대로 맞는 거죠?
에블린: 남편이 곧 떠날 거야. 난 네 도움이 필요해. 도와줄 거지?   


에블린은 자신의 매력을 한껏 이용해 순진한(로라의 말에 따르면 멍청한) 제임스를 농락한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계속 남편에 대한 암시를 준다. 게다가 에블린의 오빠 말콤도 계속 제임스를 자극한다. 결국 제임스는 이들에게 넘어가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점이 있었다. 에블린이 제임스를 정말로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 닳고 닳은 뻔한 이야기지만.  

 

 

3-4. 바비 브릭스 & 셜리 존슨  

바비: 넌 지금 벤 혼이 가장 신뢰하는 직원을 보고 있는 거야. “절호의 기회”라는 말이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이건 나한테 정말 큰 기회라고. 그리고 이건 리오 존슨을 거품 목욕 시키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야.
셜리: 그럼 나는? 난 뭐 할 일이 없는 것 같아?
바비: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은데.   

바비는 보험금을 타려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온갖 감언이설로 셜리를 꼬드겨 그 끔찍한 리오 존슨을 감옥 대신 집에서 간호하게 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나 적은 보험금에 실망한 바비는 셜리를 떼어 놓고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남편 리오나 애인 바비나 다 그나물에 그밥인 놈들만 만난 셜리는 기막힐 따름이다.  

  

3-5. 조시 패커드 & 해리 S. 트루먼  

트루먼: 당장 우리 집으로 옮겨요. 어서.
조시: 여기가 제가 머물 곳이에요.
트루먼: 모든 것을 내게 다 이야기한 후에도? 캐서린과 함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조시: 다른 선택이 없어요.
트루먼: 내가 당신을 보호하게 해줘요.
조시: 아직도 이해 못하겠어요? 난 여기가 안전해요. 그런 만큼 당신도 안전해지고요.
트루먼: 난 당신을 원해요. 좋건 나쁘건 내겐 상관없어요.   

조시가 굳이 온갖 모욕을 감수하며 캐서린의 집에 머무는 것은 트루먼 보안관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트루먼과 멀리 떨어지고, 캐서린과 같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나쁜 상황을 겪더라도 최소한 혼자만 당하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하지만, 캐서린은 이미 겹겹의 안전 막을 쳐놓은 상태다. 조시는 캐서린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3-6. 캐서린 마르텔 & 벤자민 혼  

캐서린: 사실이야. 난 여기 비웃으러 왔어. 당신은 날 속였어. 당신은 날 죽이려고도 했지. 그리고 난, 이와 같은 훌륭한 이유로 인해, 당신을 아주 깊숙이 묻어버리려 했지. 먼 훗날 미래의 아이들이 땅을 파서 당신의 유골을 전시하기 위해서. 그 밑엔 이렇게 쓰여 있겠지. "비열한 미국인 쥐새끼: 먹이를 주지 마시오. 믿지 마시오."
벤: 내 생각에도, 난 전혀 믿음이 가지 못한 놈이야.
캐서린: 집어치워.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게 준 그 모욕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여기에 왔어. 당신을 원하기 때문에.
벤: 농담이 지나치군.
캐서린: 난 당신을 원해, 벤. 그런 사실이 무섭긴 하지만,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 당신은... 내 몸을 깨어나게 하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캐서린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벤자민을 능욕함과 동시에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왔다. 정말 무서운 여자다.  

 

 

 

4. 기억할만한 지나침  

브릭스 소령과 관련 있는 공군의 ‘블루 북 프로젝트’는 UFO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트윈 픽스에서는 ‘하얀 오두막’과 관련이 있다. 트윈 픽스 인디언들의 전설에서 시작한 하얀 오두막은 정부가 개입된 거대한 사건으로 보인다. 비밀을 숨기는 자와 비밀을 풀려는 자의 이야기. 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드니스 브라이슨이 처음으로(!) 남장을 했다. 데이빗 듀코브니의 팬들은 이제야 감격의 눈물을 흘릴 듯 하다.   

 

윈덤 얼이 움직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과격한 방법을 사용해서. 시체의 신원은 외부 사람이다. 윈덤 얼이 앞으로 살해하는 사람은 모두 외지인들이다.  

 

 

 

5.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생각의 나무
- 『TWIN PEAKS #2.013』 스크립트, 7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