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드 기인(Edward Theodore "Ed" Gein)  

미국 위스콘신 주, 플레인필드. 위스콘신 주에 사는 사람들조차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플레인필드는 멀리 떨어진 고립된 곳이었으며, 인구도 600명에서 700명을 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메카시즘의 광풍과 청교도적인 엄격함이 미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던 1950년대, 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미국을 발칵 뒤집을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1957년 겨울, 마을 주민 프랭크 워든은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그는 어머니 베니스 워든이 운영하는 철물점에 들렀는데, 가게는 텅 비어 있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도둑맞은 것은 없었으며, 금고의 돈도 그대로 있었다. 프랭크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용의자로 에드 기인을 지목했다. 가게 장부위에, 에드 기인의 영수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드 기인의 집은 플레인필드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가끔 외출할 때는 마을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평범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무슨 일이 있겠느냐며 심드렁한 마음으로 기인을 찾아갔다. 그들이 찾아갔을 때 기인은 집에 없었고, 경찰들은 기인을 찾으러 집주변을 돌아다녔다. 바로 그 때, 한 경찰이 비명을 질러댔다. 집과 인접한 야외 부엌에서 베니스 워든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거꾸로 매달린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시체는 마치 사냥한 사슴을 정리하듯, 머리가 없고 배안의 내장도 모조리 정리된 상태였다.  

지원을 받고 도착한 병력이 기인의 집에서 발견한 것은, 사람 가죽으로 만든 의자, 피부로 만든 전등 갓, 여성의 입술로 장식한 차양, 여성의 상반신 가죽으로 만든 조끼 등이었으며, 벽에는 여성의 얼굴 가죽 9개가 걸려있었다. 경찰은 그가 인육을 먹은 흔적도 발견했다.  

조사 결과, 기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무덤을 파서 시체를 도굴했다고 한다. 그는 도굴한 시체로 실용적인 도구를 만들었으며, 밤마다 시체에서 잘라낸 가죽조끼를 입고 여성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어머니처럼 행동했다고 진술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사랑 때문이었다. 기인의 어머니 어거스타 제인은 지독한 광신자였는데, 그녀는 기인이 어렸을 때부터 성에 대한 혐오를 심어주었다. 이 세상은 모두 사악하며 여자들은 음탕하고 모든 성관계는 악마의 꾐이니, 바깥세상 특히 여자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을 부정했다. 성에 대한 왜곡된 상상과 욕망은 그를 한없이 괴롭게 만들었다. 어거스타는 기인을 학대하기도 했지만, 한없이 사랑하기도 했으며, 심약했던 기인은 그런 어머니에 대해 매우 모순된 감정을 지니고 자랐다. 기인에게 어머니는 신 같은 숭배의 대상이자 끔찍한 증오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기인은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었으며, 종국에는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무덤을 파서 죽은 어머니를 유린함과 동시에, 죽은 어머니의 시체에 기대어 살아온 것이다.  

 

 

2. 할리우드 (Hollywood) 

에드 기인의 사건은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는데, 특히 소설과 영화 쪽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할리우드는 에드 기인을 모티프로 한 영화를 꾸준히 제작했으며, 그 중 몇 편은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2-1. <싸이코(Psycho)>   

    

로버트 블로크의 소설 『싸이코』는 명백히 에드 기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어머니의 명에만 따르는 노먼 베이츠는 40세에 안경을 낀 소심한 남자로 묘사됐다. 그는 베이츠 모텔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의 사무실에는 박제된 동물들이 있다. 그는 모텔에서 조금 떨어진 저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직장에서 돈을 훔친 마리온이 베이츠 모텔에 투숙하면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는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우선 노먼 베이츠 역을 연약해 보이는 소년의 이미지를 지닌 안소니 퍼킨스에게 맡겼다. 어머니에게 집착하며 어머니에게 지배당하는 노먼 베이츠의 모습은 에드 기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싸이코>는 슬래셔 무비의 시초로 여겨지고 있으며(전율적인 샤워 살인 장면!), 히치콕 감독의 능수능란한 연출과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2-2. <텍사스 살인마(The Texas Chain Saw Massacre )>   

에드 기인의 사건은 1974년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살인마>에서 다시 한 번 다뤄진다. 어느 한적한 여름, 한 무리의 친구들이 여행을 하는 중 한 히치하이커를 태워준다. 그는 이상한 행동을 해서, 여행을 하는 친구들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뜨리게 한다. 히치하이커를 쫓아내고, 연료를 넣으러 주유소에 도착하지만, 주인에게 연료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연료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만, 일행은 한 명씩 사라진다. 알고 보니 히치하이커와 주유소 주인은 서로 가족 관계였으며, 사라진 친구들은 이들 가족들의 일용할 식사가 되고, 이 지옥 같은 광경을 주인공은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한다.   

 

토브 후퍼 감독이 그린 이상한 가족 이야기는 에드 기인의 사건에서 차용했다. 이들이 사는 텍사스의 고립된 저택, 인육 식사, 거의 박제된 거나 다름없는 할아버지, 희생자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쓴 도살자 등의 모티프는 모두 에드 기인의 이야기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에드 기인의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 접근과 속임수 없는 영화적 문법을 위해 끌어왔다면, 토브 후퍼 감독은 에드 기인의 이야기를 통해 절망과 무력감을 그려낸다. 이 무시무시한 살육의 공간은, 한 번 들어오면 절대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안에서의 공포는 순전히 이 시간을 견뎌내야하는 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베트남전으로 얼룩진 1970년대는 세상의 종말이었으며, 희망과 구원은 없었다. 토브 후퍼 감독은 에드 기인의 이야기에서 지옥을 봤고, 1970년대를 읽어냈다. 영화의 마지막, 허공을 가르는 전기톱 소리와 미쳐버린 여자의 히스테리컬한 웃음은 공포를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한다. 이게 바로 세상의 끝이라는 것처럼.   

 

이 영화는 그 후 쓰레기 같은 속편을 계속 선보이다가 마이클 베이의 제작으로 2003년 리메이크 됐다. 재미있는 것은 리메이크 작에서 처음으로 레더 페이스의 맨 얼굴이 공개되는데, 그의 얼굴은 가스통 루르가 『오페라의 유령』에서 묘사한 유령(에릭)과 흡사하다. 이 장면으로 리메이크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원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는 2006년에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0(The Texas Chainsaw Massacre: The Beginning)>이라는 프리퀼 속편을 내놓았는데, 이 영화는 원작의 영향을 받은 롭 좀비 감독의 <살인마 가족(House of 1000 Corpses)>을 답습한 기이한 영화다.  



 

 

2-3. 캐리(Carrie)  

    

스티븐 킹을 유명 작가로 만든, 그리고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커다란 인상을 남긴 <캐리>는 에드 기인이라기보다는 그의 어머니 어거스타 제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캐리(씨시 스페이식)는 어머니 마가레트 화이트(파이퍼 로리)와 단 둘이 산다. 마가레트는 기독교 이단의 광신자로 마을 주민들이 의도적으로 기피한다. 캐리는 학교에 다니긴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간섭으로 거의 고립된 생활을 한다. 그러다 캐리가 처음으로 초경을 하자, 어머니는 모든 성적인 행위는 죄악이라며 딸을 더욱 다잡는다. 캐리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캐리를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려는 수(에이미 어빙)의 노력이 기이하게 조합되어 캐리는 그날 밤 잊지 못할 수모를 당하고, 이성을 잃은 캐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파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학살한다.  

전적으로 에드 기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스티븐 킹은 캐리와 마가레트의 관계를 에드 기인과 어거스타의 관계에서 차용했다. 캐리에게 있어 어머니는 자신을 학대하는 악마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주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에 대한 욕구와 죄악은 그녀를 잔혹한 살인자(라기 보다는 심판자)로 만들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캐리를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캐리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마지막에 터뜨려버렸다. 때문에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는 파티장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죽는 것에 대해 그다지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살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그녀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따라가는 영화다. 어쩌면 캐리에게 수와 같은 친구가 더 있었더라면, 그날의 참사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에드 기인에게도 이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4.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많은 사람들이 스타알링과 한니발 렉터의 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는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은 연쇄살인범 버팔로 빌에 관한 이야기이다(하지만,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는 고작 영화에 17분을 출연하고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는 여자들을 납치해 죽인 후, 피부를 벗기는 연쇄살인범이다.  

버팔로 빌은 성전환수술을 받고 싶지만, 병원에서 거부당한다.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여자가 되려고 한다. 그는 여자들의 피부를 벗겨 옷을 만들어 입는다. 에드 기인도 시체들의 가죽으로 옷과 가면을 만들어 밤마다 입었다. 여성과의 성교를 금지 당했으나, 그 욕망만은 어찌할 수 없어서 이상한 형태로 구현되었다. 에드 기인의 그런 끔찍한 방법은 자신만의 욕구 해소의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버팔로 빌 역시 그런 인물로 영화에 묘사된다.   

 

조나단 드미 감독은 버팔로 빌을 그저 괴물로 그렸다. 그는 여자가 되고 싶은 위험한 변태로 그려졌으며, 약간은 전형적인 동성애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동성애자들에게 수많은 지탄을 받았다. 매끈한 상업 영화를 기획했던 조나단 드미 감독으로서는 당황스러운 반응이었으나, 그는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반성하고, 그 다음해 <필라델피아>를 만들어 속죄했다. 1990년대에 에드 기인의 이야기는 성정체성과 한 대상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냈다.  

  

 

3. 왜 에드 기인인가?   

미국에는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이 있다. 에드 기인의 살인은 애교쯤으로 느껴질 정도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목록들. 그런데 왜 유독 에드 기인에 대한 이야기는 공포와 구역질을 넘어 계속 재생산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에드 기인의 불쌍한 성장과정과 심약한 성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인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괴물들이다. 테드 번디와 존 웨인 게이시, 찰스 맨슨, 제프리 다머, 유영철을 우리는 결코 동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에드 기인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의 심약한 성격과 시체에 대한 과격한 행동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어떤 무의식의 심연을 건드리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무엇을 보려 했던 것일까? 이들 세 편의 영화가 그 해답을 찾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4. 그리고 후일담  

1957년 11월 체포된 후 에드 기인은 일련의 정신 감정을 받았다. 의사들은 그가 정신적으로 재판에 서기엔 부적합해 위스콘신의 주립 중앙 병원에 넣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10년 후 병원 당국은 기인이 끔찍한 범죄에 대한 재판에 설 수 있다고 발표했고 그의 사건이 재개 되었다. 그는 정신 이상으로 인한 버니스 워든의 살인에 유죄를 받았으며 영원히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다. 에드 기인은 병원 생활에 잘 적응했다. 간호사들은 그가 신사적이고 예의바르며 내성적인 모범 환자라 했다. 그는 병원에서 목수, 석수, 병원의 보조원 등의 일을 했으며, 세계 여행을 위해 저금을 했다고 한다.  

1974년, 에드 기인은 정상임을 주장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주립 정신 병원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1984년 7월 28일 그곳에서 호흡기 장애로 죽었다. 그의 시신은 플레인필드 공동묘지, 그의 어머니 옆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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