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라이스 - Splic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영화 <스플라이스>는 인간이 창조한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약회사의 과학자 커플 클라이브(에드리언 브로디)와 엘사(사라 폴리)는 난치병 치료용 단백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종류의 생명체에서 DNA를 뽑아 결합(스플라이스)시킨 후 진저와 프레드라는 단백질 덩어리 생명체를 만들어내는데 성공을 합니다. 성공에 고무된 클라이브와 엘사는 인간의 DNA를 결합시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냅니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새로운 생명체를 이들 커플은 '드렌'이라는 이름을 짓고 마치 자식 같이 정성껏 키웁니다. 그러나 드렌이 자라면서 클라이브와 엘사 사이에 알 수 없는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고, 결국 이들은 드렌을 제거하기로 결정합니다. 

 

<스플라이스>는 4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이야기는 서로 섞여 있는 게 아니라 단선적으로 진행이 됩니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 턴을 하는 방식입니다. 다종의 유전자가 결합된 이야기답게, 영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결합시켜 진행합니다.  

첫 번째는 오만한 창조주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실험을 하면서 윤리 보다는 호기심에 더 관심을 둡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회사의 성공, 그리고 자신들의 성공입니다.  

두 번째는 아이를 거부하는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입니다. 엘사는 아이를 낳기를 거부합니다. 과학자로서 모든 상황을 통제해온 그녀에게 아이는 감당 못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닌 (말을 잘 듣는) 애완동물입니다. 드렌이 보통의 포유류 같이 기본적인 지능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있어서 축복으로 여겨집니다.  

세 번째는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드렌은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세 성인의 육체에 버금가는 성장을 합니다. 하지만 급격한 신체의 변화와 유아에 가까운 지능은 종종 드렌이 분노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 역시 사춘기를 맞이했을 때, 아이에서 어른으로의 과도기를 겪을 때, 알 수 없는 분노와 흥분을 겪었듯이 드렌 역시 이런 감정을 겪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클라이브와 엘사가 평상시에 하는 대화를 들어보면 절반이 욕입니다. 이들은 입에 "Fuck!"를 달고 삽니다. 물론 직장에서는 안 그러지요. 집에서,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이들은 서로 헐뜯고 비난합니다. 결국 집안 꼴은 엉망이 되고, 드렌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쉽게 말해 아동학대죠. 하지만 클라이브와 엘사는 드렌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드렌은 인간이나 자식이 아닌, 만들어진 괴물일 뿐이니까요. 결국 이런 오해와 몰이해는 네 번째 이야기에서 커다란 비극을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굉장히 어정쩡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비슷한 소재인 <스피시즈>와 같은 장르적인 쾌감도 없을뿐더러, 상당히 불쾌한 느낌만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영화의 중심은 새로이 창조된 생명체 드렌이지만, 드렌은 엘사의 말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존재로 나옵니다.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멋진 비주얼을 가진 독특한 생명체로서만 존재기에 관객들은 감정에 기대어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야기의 톤이 바뀌는 바람에 캐릭터의 일관성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클라이브와 엘사의 행동은 각 이야기 안에서는 납득할만한 행동을 하지만, 전체로서의 이야기로 보자면,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인물들로 보입니다. 이것은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이야기 구조입니다. <스플라이스>는 4부작 미니시리즈를 거칠게 편집해 극장에서 상영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부정적인 평으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쓴 것은 드렌이라는 크리처(혹은 신인류) 때문입니다. 조류, 어류, 파충류, 갑각류 등의 특징이 살아 있는 드렌의 모습은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특히 영화의 중반부와 마지막에 보이는 드렌의 날개는 황홀함과 공포를 함께 불러일으키는, 숨을 멎게 하는 명장면입니다. 하지만, 비주얼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스플라이스>는 분명 더 밀고 나갈 수 있는 영화였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가능성이 가능성으로만 머무르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아쉬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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