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 The housemai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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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김기영 감독의 61년 작 <하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리메이크라고 해야 한다면,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 역시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의 리메이크라 해야 할 것입니다. 임상수 감독은 원작의 기본 설정 -부잣집에 하녀가 들어와 그 집안을 파탄 낸다- 만을 가지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때 그 사람들(1970년대)>, <오래된 정원(1980년대)>, <바람난 가족(1990년대)>에 이은, 임상수 감독이 2000년대를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한 여인의 불안한 표정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먹고 담배피고 술마시고 노는 여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는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 돈을 내는 사람들과 돈을 받는 사람들. 임상수 감독은 현대 사회를 가감 없이 심드렁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순간, 갑자기 한 여인이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비명도 들리고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한 여인을 구경거리로 여깁니다. 너도나도 구경하려 애쓰고 감탄사도 들려옵니다. 자본주의의 한 복판에 자살한 여인의 죽음은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나중에는 희미한 핏자국과 하얀 실선으로 표시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구경꾼들 중에 은(전도연)도 있습니다. 은은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다가 하녀장 병식(윤여정)의 면접을 보고 저택의 가정부로 들어갑니다. 이제 영화는 현실에서 시작해서 알레고리로 점철된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녀가 들어간 대저택은 현실의 축소판입니다. 그녀는 그 안에서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한 일들을 당합니다. 심지어 목숨도 잃을 뻔 하지요. 그래도 그녀는 묵묵하게 웃으며 버팁니다. 주인들이 그러는 것은 다 이유가 있고, 자신이 제대로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은은 이 영화에서 완전히 바보로 나옵니다.  

아무리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원작과 별 관련이 없다 해도, 약간의 비교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기영 감독이 그린 <하녀>의 권력은 문화입니다. 여주인공들은 (부인을 포함해) 모두 노동자들입니다. 세 명의 노동자 여인들이 피아노로 대표되는 문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노동자 여인들은 돈을 벌수는 있지만, 교양을 돈으로 살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 안에서 무력한 남편은 세 여자들에게 이리 저리 휘둘릴 뿐입니다. 60년대에 (이층집과 피아노로 대표되는) 부유층은 노력하면 될 수 있는 계급이었습니다. 반면 임상수 감독이 그린 권력은 자본입니다. 지금의 모든 권력은 자본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저택의 주인 훈(이정재)은 (거대한) 자본을 차지하고 있기에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자본은 문화를 종속시키고 윤리를 뛰어 넘습니다. 물론 오만함과 자의식은 덤이지요. 그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답게 <하녀>는 시종일관 차갑습니다. 임상수 감독은 적을 정해놓고 공격하지 않고, 우리 모두를 조롱합니다. 영화는 클라이맥스가 없습니다. 카타르시스도 없습니다. 관객들은 1시간 50분 동안 대저택에 사는 부유층들의 기만과 위선을 조롱하고 동시에 '병신 같이' 당하고만 사는 은, 아더메치하지만 그래도 살아야하기에 이곳저곳에 박쥐처럼 붙는 병식을 조롱합니다(그녀는 바보에게 따귀도 맞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0분, "찍소리라도 내야겠"다는 은이의 복수는 너무나 참담합니다. 임상수 감독은 모든 계급을 시종일관 조롱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처음, 우리는 한 여자의 죽음을 구경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극장을 나서면, 우리는 영화를 잊어버리고 현실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임상수 감독은 우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들도 이 바보 같은 여자와 다를 게 없다고. 당하고만 살지 말고, 좀 깨달으라고. 

  

 

*덧붙임:  

배우 이야기를 뺄 수 없습니다. 전도연 씨야 워낙에 뛰어나니 별로 언급할 게 없습니다. 단, 워낙 답답한 역이라, 본인도 연기하는데 애를 먹었을 것 같습니다. 대신, 결말부에서 폭발하는 전도연 씨의 연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은 화면보다는 스크린에서 알아챌 수 있는 디테일한 모습이나 표정 때문에 깜짝 놀랐으니까요. 

이정재 씨는 정말 (아마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역을 만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만함과 자의식 과잉의 인물이면서도 젠틀함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정재 씨 이미지와 가장 맞는 것 같습니다. 서우 씨의 인공적인 외모와 아이 같은 이미지 또한 영화의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윤여정 씨는 김기영 감독의 71년 작 <화녀(하녀의 첫 번째 리메이크)>로 데뷔해 감계가 무량할 것 같습니다. 윤여정 씨가 맡은 병식 역은 71년의 하녀가 지금까지 하녀 생활을 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말 그대로 자본주의를 온 몸으로 견뎌온 인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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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시>의 표를 끊으며 <하녀>도 볼까 곁눈질 했는데 리뷰를 보니 보고 싶은 마음이 부쩍 생기네요^^

Tomek 2010-05-16 10:48   좋아요 0 | URL
호불호가 갈리지만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한 번 보시길 바라요. 아마도 2010년의 <박쥐> 같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