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달리아 1 밀리언셀러 클럽 53
제임스 엘로이 지음, 이종인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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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엘로이의 1987년 작 『블랙 달리아(The Black Dahlia)』의 첫 장을 펼치면, 이 책을 그의 어머니께 바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십 대 때 강간당하고 무참히 살해되어 거리에 버려졌었다. 제임스 엘로이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20대 때까지 거의 '미친 사람'으로 살아갔다. 그리고 그는 작가가 되었고, 그의 어머니를 보내기 위한 '씻김굿'으로 이 소설을 썼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블랙 달리아'사건은 그의 어머니처럼, 끔찍히 살해되어 거리에 버려진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화자는 드와이트 블라이처트(일명 '버키'로 불림)다. 권투선수 출신의 경찰관인 버키는 역시 권투선수 출신의 리랜드 블랜처트와('리'로 불림)의 시합으로 서로 파트너가 된다. 리는 예전에 블러바드 시티즌스 은행털이 사건에 연루되었던 케이 레이크와 같이 동거하는 사인데, 케이의 말로는 서로 섹스를 하지 않는 사이라 한다. 케이는 버키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버키는 리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애써 그녀를 외면한다. 주니어 내시라는 흑인 유아 강간범에 대한 사건을 전담한 버키와 리는 어느날, 내시의 범행장소 근처에서 끔찍한 시체와 조우하게 된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블랙 달리아'사건이라 칭하고, 시민들은 이 끔찍한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버키, 리, 케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간다.  

   블랙 달리아의 신원은 엘리자베스 앤 쇼트로 밝혀진다. 그녀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시체는 상반신과 하반신 둘로 절단되어 있었으며, 안의 장기는 모두 적출된 상태였다.    

 

   
  상반신은 더욱 참혹했다. 양쪽 유방에는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수도 없이 나 있었다. 오른쪽 유방은 축 늘어져 몇 조각의 피부만 남은 채 간신히 붙어 있었고 왼쪽 유방은 유두 주위가 예리하게 베어져 있었다. 그 자상은 너무 깊어서 뼈가 다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가장 참혹한 것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차라리 보라색의 상처 덩어리라고 해야 더 적절했다. 코는 짓이겨저 푹 꺼져 있었고 입은 귀 있는 곳까지 양옆으로 찢겨 기괴한 미소를 만들고 있었는데, 마치 자신에게 가해진 이 참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주니어 내시 건을 맡고 있는 리는 상부에 거짓 보고를 하고 블랙 달리아 사건에 집착한다. 그가 이 사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렸을 적 리의 여동생 로리가 실종되어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이해한다고 말하지 마. 더 끔찍한 얘기를 해 줄 테니까. 어떤 타락한 놈이 내 여동생을 목 졸라 죽이고 시체를 토막 쳤어. 여동생이 죽어 가고 있을 때 나는 로리에 대해서 지저분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아버지가 로리는 공주처럼 대하고 나는 깡패 대하듯 했기 때문에 얼마나 여동생을 미워했는지 몰라.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의 그 여자 시체처럼 동생이 토막 나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기까지 했어. 그러면서 그때 사귀던 창녀 같은 년과 그 짓을 하고 그 여자 애 아빠의 술을 훔쳐 마시면서 그런 상상이 멋지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트렸던 거야. (...) 난 과거에 여동생에게 잘못한 것을 속죄하는 뜻에서라도 꼭 범인을 찾아내고 말겠어. 자네가 도와주든 말든 개의치 않아. 꼭 잡아내고 말 테야.    
   

 

   버키와 리가 수사를 진행하면서 엘리자베스 쇼트의 과거가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그녀의 아버지, 룸메이트, 영화사 직원, 군인들 등 여러사람들의 증언은 그녀가 문란한 성생활을 했다는 것과 스타를 꿈꾸며 헐리우드에서 몸을 굴리는'창녀'같은 여자였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녀는 룸메이트와 레즈비언 포르노를 찍었고, 임신 중독증에 걸렸으며, 꾸며낸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 천부적이었다.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그녀의 실체는 점점 더 모호해진다. 

   물론 그녀에게도 가슴아픈 과거가 있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동네 불량배들에게 강간을 당했으나, 해군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임신을 했을까 두려워 병원에 갔으나, 그녀는 난소에 혹이 있어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고, 자포자기한 채 살았다. 하지만 이 사실은 뉴스에 실리지 않았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거대한 스케일과, 끔찍한 사건, 그리고 점층적이고 숨쉴틈 없는 전개와 기막힌 반전의 연속으로 정말이지 정신없이 읽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느낀점은, 죽은 엘리자베스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녀는 살아있을 때 수 많은 남자들의 욕정을 채워주더니, 죽어서도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 야욕을 위해 이용당했다. 선거에 출마할 야심을 가진 검사관보 엘리스 로는 달리아 사건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언론 플레이를 한다. 경찰청에 몸을 담고 있는 프리츠, 조니 보겔 부자는 자신들의 지위를 위해 그녀에 대한 증거와 증인을 은닉한다. 가장 헌신적으로 수사에 참여한 리조차 그녀를 이용해 한 몫 챙겨 외국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주인공 버키는? 그는 그녀를 시간(屍姦)한다.

 

   
  당신은 기둥서방에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시체나 안고 사시지.   
   

 

   이 책은 '블랙 달리아'에 대한 책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의 주 내용은 '블랙 달리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블랙 달리아, 엘리자베스 쇼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망자는 말이 없듯이, 그녀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고리일 뿐이다. 우리는 1990년에 이와 흡사한 이야기를 TV에서 봤었다. 로라 파머. 『블랙 달리아』의 세계는 <트윈 픽스(Twin Peaks)>와 겹친다. 

   책은 소설만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지만, 영화적인 매력 또한 담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헐리우드의 배우가 되고 싶었던 여자이고, 이 시기는 헐리우드에 있는 거대한 간판 HOLLYWOOD LAND에서 LAND가 떨어진, 지금의 헐리우드가 완성된 시기이다. 꿈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악몽같은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둘러싼 끔찍한 악다구니들. 이 소설은 너무나 어둡고, 슬프다. 

   엘리자베스를 둘러싼 그 많던 욕망들은 결국 모든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모두들 목숨을 잃거나, 직업을 잃거나 가정을 잃거나, 평판을 잃었다. 엘리자베스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엘리자베스는 입이 찢어진 채로 죽었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 나오는 그윈플레인처럼, 그녀의 표정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리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그날 어디 있었는지 잘 알고 있어요, 마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죽었을 때 우리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듯이 말이에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서 그걸 고칠 수 있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희망을 갖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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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장의 수려한 실패작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4-17 10:08 
       <블랙 달리아>는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실패작입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이러한 평가는 불가피합니다. 물론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기는 합니다. 이 영화가 정말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의도한 최종 편집본인지, 아니면 스튜디오의 강권에 밀려 편집한 버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가편집본을 보고 원작자인 제임스 엘로이가 만족을 표했다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이 121분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최종 편집이 스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