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 The Craz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브렉 에이즈너 감독의 <크레이지(The Crazies)>는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1973년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을 보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좀비 4부작에서 보이는 정치적 함의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도 그런 내용이 여럿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미국의 소읍인 오그덴 마시에 미군이 비밀리에 진행한 생화학 무기 '트릭시'가 유출되어 마을 사람들이 감염되기 시작합니다. 이 물질에 감염이 되면 인간으로의 자각이 조금씩 사라지고, 무조건적인 살인을 자행하게 되지요. 간단히 말해,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 대신에 인간을 죽이는 '좀비'들입니다. 브렉 에이즈너 감독이 그리는 이 좀비들은 21세기에 등장한 야생동물 같은 좀비가 아니라, 6~70년대 조지 로메로 감독이 그렸던 진중한 좀비들입니다. 이들은 급하게 뛰어다니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며 살인을 저지릅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마을을 잠식하고, 이유없는 살인이 계속 벌어지면서, 마을은 점점 공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이 때 군부대가 들어와 마을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 넣은 후 격리를 시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영화의 주인공인 보안관 데이빗 더튼(티모시 올리펀트), 의사 쥬디 더튼(라다 미첼) 부부가 헤어지게 됩니다. 쥬디는 트릭시에 감염된 환자들 사이에 격리되고, 데이빗은 정상인들 사이에 격리되어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할 준비를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있게 됩니다. 아내 혹은 남편 혹은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야기합니다. "정말 괜찮을까요?" 그러자 그들 중 한명이 대답을 합니다. "정부를 믿어야지 우리가 무슨 수가 있겠어?" 데이빗은 사람들의 그런 낙관을 믿지 않고, 아내를 구하러 갑니다. 

   전 이 대목이 정말 심금을 울렸습니다. 물론 이런 장면은 우리가 헐리우드에서 제작되는 무수한 영화에서 봐왔던 장면입니다. 하지만, 지금 천안함을 둘러싼 진실게임을 한 번 돌아보면, 데이빗의 행동은 그냥 웃고 넘길 수 없습니다. 실종자들의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빠른 구출과 진실규명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마치 영화에서처럼 무언가를 숨기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원인 제공자들은 사건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여 자신들의 존재를 망각시키게 하려는 것입니다. <크레이지>에서 군부대에 명령을 지시한 '몸통'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오그덴 마시에 남아있는 원주민들과 타자들은 서로 '죽이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상황은 정말 기막히게 말 그대로 '돌고 돌게' 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조금 삐걱거리지만, 각 시퀀스의 효과는 정말 뛰어납니다. 각각의 시퀀스의 공포 효과의 직조는 진중하지만 무시무시하고, 잔인하지 않지만 기발합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씬은 세차장 씬(가장 일상적인 장소와 소품으로 어떻게 이런 기발한 장면을 만들었는지!)과 주인공 더튼 부부의 집에서 벌어진 사투씬이었습니다. 영화의 결말 또한 희망적이면서도 암울한 면을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잘 만든 서스펜스-공포영화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도 즐기지 못하고 현실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입니다. 언제나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고 즐길 수 있게 될까요? '미치광이들' 사이에 둘러싸인 현실이 정말 암담합니다. 

 

 

*덧붙임: 

아무리 그래도 포스터는 너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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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10-04-0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포스터가 뭘 너무 했다는 말씀이신지요? 똑같이 배꼈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Seong 2010-04-04 18:54   좋아요 0 | URL
네. 전혀 다른 영화인데도 <미스트> 포스터를 그대로 차용했지요.